젠지 e스포츠는 전신인 삼성 갤럭시 시절부터 가을 시즌만 되면 강해졌다. 2014년 삼성 갤럭시 화이트가 2위 결정전에서 SK텔레콤 T1을 3대0으로 격파하면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 진출했고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가을에 강한 팀의 첫 발을 내디뎠다. 2015년 리빌딩 기간을 거쳐 2016년 새로운 멤버로 롤드컵에 진출했을 때 삼성 갤럭시는 한국 대표 선발전을 통과했고 2017년 우승을 차지할 때에도 한국 대표 선발전 1위 자격으로 롤드컵에 나갔다.
2018년 젠지 e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처음 가을을 맞았을 때에도 스프링과 서머 모두 최종 순위에서 5위를 기록했던 젠지는 한국 대표 선발전 가장 낮은 단계부터 시작해 SK텔레콤, 그리핀, 킹존을 연파하면서 롤드컵에 출전했다.
'가을 젠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난 3년 동안 보여줬지만 2019년에는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스프링과 서머 모두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챔피언십 포인트를 하나도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안했던 허리
젠지는 서머를 앞두고 가장 많은 선수들을 보강했다. 스프링에서 6인 로스터를 구축했던 젠지는 주전 미드 라이너였던 '플라이' 송용준이 흔들리자 톱 라이너로 등재됐던 '로치' 김강희를 미드 라이너로 보내는 등 응급 처방을 시도해야 했다.
스프링에서 불안 요소로 작용했던 미드 라이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젠지는 ES 샤크스의 미드 라이너였던 '쿠잔' 이성혁을 영입했고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종목에서 명성을 날렸던 '리치' 이재원을 종목 변경시키면서 로스터에 올려 놓았다.
또 락스 타이거즈와 한화생명e스포츠에서 정글러로 활약했던 '성환' 윤성환을 영입하면서 정글러 포지션에서도 '피넛' 한왕호의 부담을 덜어주려 했다.
3명의 미드 라이너를 등록시킨 젠지는 메타에 따라 세 명을 두루 기용했다. 1라운드는 '쿠잔' 이성혁이 대부분 소화했다. 아지르, 리산드라 등을 주로 사용한 이성혁은 세트 기준으로 9승10패를 기록했고 1라운드 막바지에 '플라이' 송용준에게 바통을 넘겼다.
송용준은 다른 팀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패턴을 보여줬다. 북미에서 유행하던 럭스를 사용하면서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줬고 다른 팀에서 전혀 쓰지 않았던 베이가로 4전 전승을 달렸다. 벨코즈에다 에코까지 꺼냈던 송용준은 특이한 챔피언을 사용하면서도 세트 기준 12승6패라는 좋은 성과를 냈다.
◇젠지 미드 라이너별 서머 성적(세트별)
'쿠잔' 이성혁 9승10패 47.4% 4.83
'플라이' 송용준 12승6패 66.7% 4.83
'리치' 이재원 2승3패 40% 1.4
'로치' 김강희 1승1패 50% 5.5
서머 막바지인 9주차에 젠지는 '리치' 이재원에게 기회를 줬다. 9일 그리핀과의 1세트에서 송용준이 나섰다가 패하자 이재원을 기용했고 아트록스로 좋은 플레이를 펼치자 3세트도 맡겼지만 레넥톤으로 1킬도 따내지 못하고 패했다. 11일 아프리카 프릭스와의 대결에서 주전으로 출전한 이재원은 1세트에서 키아나로 암살자의 진면목을 보여줬지만 아칼리, 아트록스로 임한 2, 3세트를 모두 패했다.
포스트 시즌 진출이 걸린 18일 담원 게이밍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젠지는 도박수를 던졌다. 송용준이 나선 1세트에서 패하자 스프링과 마찬가지로 '로치' 김강희를 미드 라이너로 기용한 것. 2세트에서 아트록스로 노데스 플레이를 펼친 김강희는 3세트에서도 아트록스로 임했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스프링에서 발목을 잡았던 미드 라이너의 부실함을 보강하고자 인력 충원을 시도한 젠지는 서머에서도 확고부동한 주전 미드 라이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말았다.
◆돋보였던 '라이프'의 활약
젠지는 2019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롤드컵 우승을 경험한 서포터 '코어장전' 조용인과 결별했고 신예 '라이프' 김정민을 영입했다. 스프링에서는 후보 선수도 없었기에 전 경기를 뛰는 동안 김정민은 '룰러' 박재혁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서머에서 김정민은 스프링과는 완벽하게 다른 선수가 되어 돌아왔다. 박재혁과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라인전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능력이 올라갔고 특이한 챔피언까지 잘 다루면서 밴픽 과정에서 상대 팀을 혼란시키는 능력도 키웠다.
인상적인 장면은 그리핀과의 1라운드 대결이었다. 1세트에 볼리베어를 꺼내들면서 이슈를 만들었던 김정민은 실제 플레이 과정에서도 '바이퍼' 박도현의 카이사를 뒤로 넘기면서 첫 킬에 기여하는 등 팀 승리를 이끌었다. 또 담원 게이밍과의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 2세트에서 자르반 4세를 꺼내 들면서 과감하게 치고 들어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김정민의 성장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스프링에서 44세트를 뛰었던 김정민은 팀 성적과 같은 16승28패, 36.4%의 승률에 그쳤다. 서포터의 핵심 덕목인 세트별 어시스트에서도 5.75에 머물렀고 KDA(킬과 어시스트를 더한 뒤 데스로 나눈 수치)에서도 2.51로 저조했다.
이번 서머에서 김정민은 모든 부문에서 성적이 업그레이드됐다. 24승20패로 54.5%의 승률을 기록했고 세트당 어시스트는 6.18로 스프링보다 0.43이나 상승했다. KDA에 있어서도 5.03으로 두 배 가까이 올라갔다.
김정민의 성장은 롤드컵 우승 원거리 딜러 박재혁과 함께 젠지의 후반 운영에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