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2019 서머 결승전에서 SK텔레콤 T1은 그리핀을 상대로 3대1로 승리하면서 LCK 8회 우승을 달성했다. 또 LCK에서 유례가 없었던 포스트 시즌 와일드 카드전부터 결승전까지 싹쓸이 승리를 따낸 것도 새로운 기록이다.
SK텔레콤이 대기록을 세우는 중심에는 미드 라이너 '페이커' 이상혁이 자리하고 있다. 2013년 SK텔레콤이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을 만들 때부터 주전으로 활약한 이상혁은 2013년 서머에서 처음으로 LCK 우승을 달성한 이후 지금까지도 주전 미드 라이너 자리를 지켜오고 있으며 올해 LCK 스프링과 서머를 연달아 제패하면서 팀의 8번째 우승에 모두 관여했다.
스타크래프트:리마스터로 진행된 아프리카TV 스타크래프트 리그(이하 ASL) 시즌8에서도 대기록이 작성됐다. 1일 열린 ASL 시즌8 결승에서 '최종병기' 이영호가 프로토스 장윤철을 상대로 4대0으로 완승을 거두면서 정상에 올랐다.
2007년 데뷔한 이영호는 2008년 박카스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송병구를 3대0으로 꺾으면서 처음으로 개인 리그 정상에 올랐고 2010년에 열린 스타리그와 MSL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했으며 2011년 ABC마트 MSL에서 우승하면서 스타리그와 MSL 모두 3회 우승을 달성했다. 2017년 아프리카TV가 ASL이라는 이름으로 스타1 대회를 개최하자 이영호는 시즌2와 시즌3, 시즌4까지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3개의 메이저 개인 리그에서 모두 3회 우승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ASL 시즌6에서 ASL 4회 우승, 통산 개인 리그 10회 우승에 도전했던 이영호는 김정우에게 막히면서 기록을 세우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장윤철을 완파하면서 단일 대회 첫 4회 우승, 통산 10회 우승을 달성했다.
이상혁은 단순히 국내 대회에서만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다. 2013년 열린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 팀으로서는 최초로 롤드컵 정상에 올랐고 이후 2015년과 2016년에는 롤드컵 사상 첫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이라는 단기 대회에서도 2016년과 2017년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전세계 최고의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로 인정 받았다.
상대적으로 국제 대회가 적은 스타1 종목이긴 하지만 이영호도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적이 있다. 2010년 월드 사이버 게임즈(이하 WCG) 그랜드 파이널에서 이영호는 4강에서 이제동을, 결승에서 김구현을 연파하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영호는 만 12년째, 이상혁은 만 7년째 국내외에서 최고의 자리를 꾸준히 지켜오면서 스타1과 LoL의 아이콘으로 입지를 굳혔다. 최고가 되기 위해 경쟁을 펼치는 프로의 세계이기에 다른 선수, 다른 팀들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지위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승부욕이다.
10회 우승을 달성한 이영호는 인터뷰에서 "10년 넘도록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승부욕 덕분인 것 같다"라면서 "지면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이기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계속 연습하고 전략을 연구했다"라고 비결을 밝혔다. 실제로 이영호는 선수 시절 오른팔이 아파 병원을 찾았고 요골 신경 포착 증후군 판정을 받아 수술을 받기도 했다.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재활을 통해 이겨낸 이영호는 kt 롤스터의 에이스로 활동했다. 통증을 안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던 이영호는 2015년 공식 은퇴를 선언했고 2016년부터 ASL에 참가하면서 세 시즌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통증을 참으며 대회에 나섰던 이영호는 시즌7에 불참 선언하면서 통증 관리에 나섰고 시즌8에서 오른팔 부상을 딛고 정상에 올랐다.
이상혁의 승부욕도 이영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대단하다. 2017년 롤드컵 결승전에서 삼성 갤럭시에게 패하면서 롤드컵에서 처음으로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 이상혁은 경기장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했고 눈물을 흘렸다. 이 장면은 전세계 팬들에게 공감을 얻었고 2019년 LCK 스프링 결승전에서 승리하고 난 뒤에는 "2018년에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라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이상혁과 이영호는 희한하게도 우승 이후 인터뷰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 LCK 서머 우승을 확정지은 뒤 이상혁은 "롤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한 지 꽤 됐기에 꼭 정상에 다시 오르고 싶다"라면서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참가하는 대회마다 우승을 목표로 뛰고 있다"라고 말했고 이영호는 "ASL이 8회를 맞이하는 동안 내가 4번 우승했는데 우승 확률 50%라는 기록을 이어가고 싶다"라면서 "오른팔 부상으로 인해 앞으로 몇 대회를 더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오는 대회마다 정상에 오르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고 목표를 밝혔다.
종목은 다르지만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영호와 이상혁은 참 많이 닮았다. 출전하는 경기마다 이기겠다는 강한 승부욕을 내비치면서 최선을 다하고 목표를 달성한 이후 곧바로 다른 목표를 설정하는 모습이 닮았다. 높은 승률을 유지하면서도 항상 승리에 목말라 하고 또 다시 목표를 위해 정진하는 자세는 완벽하게 똑같다.
현역임에도 엄청난 업적을 달성한 선수들에게 붙여주는 별명인 '리빙 레전드(살아있는 전설)'이라는 호칭을 이영호와 이상혁에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