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이라는 숫자는 사람에게도 큰 의미를 갖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걸음마를 떼고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을 마칠 때 10살이 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고 대학에 입학하면 거의 20살이 되지요. 21살은 성년으로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한참 고민하고 어떤 길을 걸을지 결정하는 시기입니다. 내 꿈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걸어야 하는지 탐색하는 때입니다. 적성에 따라, 전공에 따라 어울리는 직업 또는 행보를 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는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고 기반을 닦기 시작하는 시기죠.
한국의 e스포츠도 향후의 방향을 고민할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e스포츠라는 씨앗이 심어진 토양은 척박했지만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싹을 틔웠고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 중심에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있었고 선수들, 지도자들의 노력에다 기업 게임단이라는 한국 스포츠가 갖고 있는 득특한 시스템이 접목되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국 e스포츠라는 나무를 풍성하게 만든 이파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입니다. 2011년부터 한국 서비스를 시작했고 '롤챔스'라는 이름으로 2012년부터 리그를 열면서 한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e스포츠 강국임을 재확인시켰습니다. LoL이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의 e스포츠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대기업이 팀을 만드는 구조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만 e스포츠 전문 기업들이 생겨나면서 벤처 캐피털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2019년은 한국의 e스포츠가 성장하기 위해 큰 아픔을 겪었던 해입니다. 한국에서 e스포츠 벤처로 승승장구하던 그리핀(스틸에잇)이 불공정 계약을 체결한 것이 폭로되면서 업계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리핀의 계약서 뿐만 아니라 한국e스포츠협회가 수 년 전에 만들어 놓은 표준 계약서까지 미진하다는 내용이 공개되면서 시스템 정비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습니다.
내적으로는 계약서 파문이 일어나는 동안 외적으로는 중국과 북미, 유럽으로부터 e스포츠에 대한 헤게모니를 내놓으라는 무언의 압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서 한국이 5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범접할 수 없는 최강국이라는 입지를 다졌지만 2018년과 2019년 중국에 연달아 우승컵을 내주면서 세계 최강의 위상에 금이 갔습니다.
텐센트를 앞세운 중국은 다양한 게임을 통해 글로벌 e스포츠 종목을 가진 게임 강국이 되기 위해 치고 나가고 있고 북미와 유럽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프로게임단의 자본화와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선수 육성 노하우를 배워간 이들은 대규모 자본을 유치하면서 앞다퉈 선수와 코칭 스태프를 영입하고 기업화를 이뤄가고 있습니다.
한국 e스포츠에게 2020년은 향후 10년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019년에 불거진 불공정 계약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계약과 처우 등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재발 방지 노력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선수들은 팬들을 만나는 최전방이자 한국 e스포츠가 갖고 있는 최고의 자산입니다. 이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고 게임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만 한국 e스포츠의 경쟁력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게임단은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준비해야 합니다. LoL을 기준으로 대부분의 메이저 지역은 프랜차이즈를 도입하면서 e스포츠만으로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생태계 구축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한국도 조만간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기에 게임단들은 이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일부 게임단들은 벌써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젠지 e스포츠가 선수들과 장기 계약을 맺은 것이나 SK텔레콤과 컴캐스트가 엄청난 투자금을 들이면서 T1이라는 e스포츠 벤처를 시도한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게임단들은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갓 성년이 된 21살은 하고 싶은 것이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잠재력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만 허투루 시간을 보내면 안된다는 주위의 말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합니다.
21돌을 맞은 한국 e스포츠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입니다.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없다고 조급증을 낼 수도 있습니다.
20년 동안 한국 e스포츠는 더 빨리, 더 많이, 더 멀리 뛰려고만 하지는 않았나 돌아봅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꼼꼼하게 방지책을 만들고 치밀하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짤 시기입니다. 올해 세우는 계획은 1년짜리가 아니라 2030년까지 이어갈 '십년지대계'여야 합니다.
많은 걱정을 담았습니다만 2020년 12월 31일에는 이 칼럼이 모두 '기우'였음이 밝혀지길 바랍니다.
졸필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하며 2020년 건강하시고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