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 수개월 전의 일이다. 내가 일했던 모 스포츠 신문사와 자매 결연관계였던 일본 모 스포츠신문사 기자가 서울올림픽 사전 준비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찾아왔다. 일본 기자와 명함을 주고 받았을 때 명함에 적혀있는 낯선 직책이 눈에 들어왔다. 스포츠 취재부서 이름이 운동부로 적혀 있었다. 당시 국내 신문과 방송 등은 모두 체육부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같은 의미를 두고 우리와 일본은 다른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포츠 용어에 대해 많은 궁금증이 생겨났다. ‘체육과 운동의 차이는 무엇일까’, ‘스포츠를 한국과 일본에서는 왜 체육과 운동으로 표기하는가’ 등 본질적인 문제에서부터 ‘영어 'baseball'을 왜 '야구'라고 번역했을까’, ‘골프 '앨버트로스'가 한자말로 ’신천옹(信天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등 스포츠 종목에 걸쳐서 다양한 의문이 들었다.
스포츠 명칭은 대부분 서양으로부터 들여와서 사용되고 있다. 구한말 개화기에 일본과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 대부분이다. 일본어 한자어로 만든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영어, 불어 등 서양 언어 발음을 우리 식대로 표기하거나 한자어로 번역된 것을 받아들인 것도 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빚어진 결과였다. 사실 스포츠 용어에는 우리가 겪은 역사와 시대적 사고와 생각이 담겨 있다.
1994년 일본인으로서는 가와바다 야스나리(1968년)에 이어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은 아시아에 있으면서 서양을 지향한다”고 수상 인터뷰에서 말했다. 개화기 일본은 서양의 학문이나 사상, 제도, 지식 체계 등을 모방하고 흡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쏟아져 들어오는 생소한 개념과 전문용어들을 어떻게 번역하여 보급할 것인가 하는 것은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였다. 문제는 단순히 단어의 번역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번역하고자 하는 개념이나 현상 자체가 일본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계몽가이자 교육가인 니시 아마네와 후쿠자와 유키치는 서양 철학을 일본에 소개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등 문학가 등은 문학적인 감수성을 통해 스포츠를 새로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매개물로 삼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번역어로 채택된 한자어는 우리에게는 번역어가 아닌 그저 한자로 된 일본어였을 따름이다. 당시에 그런 어휘들은 같은 한자문화권인 우리에게는 번역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다. 진지한 고민이나 내면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본으로부터 해방 된 이후 ‘한국적’으로 왜곡과 변질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많은 스포츠 대회를 만났다. 하지만 스포츠 용어의 존재와 의미를 제대로 살펴본 기억은 없다. 평소 무심코 지나치며 잘 몰랐던 스포츠 용어의 어원과 유래와 속뜻을 제대로 알아보는 것은 인간 세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 속에 과거 인간의 삶의 모습과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말 이전에 생각이 있고 말 이후엔 행동이 따른다고 한다. 어떻게 스포츠 용어가 만들어졌고, 스포츠 용어가 탄생한 뒤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모든 스포츠 경기가 취소되며 보고 즐길 것이 제대로 없다. 앞으로 ‘스포츠 용어 산책’을 통해 각종 스포츠 용어에 담긴 세상을 보며 코로나를 떨쳐내며 편안한 일상을 되찾기를 바란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