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4월의 어느 쾌청한 날 오후에 나는 도쿄 신주쿠 메이지진구(明治神宮) 구장에 야구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그해의 센트럴리그 개막전으로,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히로시마 카프의 대전이었습니다. 야구란 역시 야구장에 가서 봐야 하는 것이지요, 진짜로 그렇습니다. 방망이가 공에 맞는 상쾌한 소리가 진구 구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띄엄띄엄 박수 소리가 주위에서 일었습니다. 나는 그때 아무런 맥락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그때의 감각을 나는 아직도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하늘에서 뭔가가 하늘하늘 내려왔고 그것을 두 손으로 멋지게 받아낸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어째서 그것이 때마침 내 손안에 떨어졌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아무튼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뭐라고 해야할까,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영어에 ‘epiphany’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번역하면 ‘본질의 돌연한 현현’ ‘직감적인 진실 파악’이라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라는 느낌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날 오후에 내 신상에 일어났습니다. 그 일을 경계로 내 인생의 양상이 확 바뀐 것입니다. 데이브 힐턴이 톱타자로 진구 구장에서 아름답고 날카로운 2루타를 날린 그 순간에.”
일본에서 야구는 문학가들과 아주 인연이 깊다. 1860년대 이후 메이지 시대, 서양에서 들어온 ‘베이스볼(baseball)이 ‘야구(野球)’라는 말로 치환된 것은 문학가들의 역할이 컸다. 베이스볼이 뭔지 잘 몰랐던 일본의 문학인들은 이를 어떻게 일본어로 옮겨야 할 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 현대문학의 낭만주의 작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등은 ‘서양의 괴물’ 베이스볼을 표현력 있는 단어로 만들었다. 문화적인 낭만을 담고 있으면서 운동의 성격을 잘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지식인들이었던 이들의 생각이었다. ‘야구’는 한문으로 ‘들’을 의미하는 ‘야 (野)’와 공을 표현하는 ‘구(球)’를 합성해 ‘들에서 공을 갖고 하는 종목’이라는 뜻이다. 거친 운동의 세계를 감성적인 언어로 잘 포장했던 것이다. 문학가들은 ‘야구’라는 용어를 통해 문학인들의 섬세한 정서와 함께 본질적인 운동의 야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일본 도쿄의 대표적인 공원인 우에노 공원에 마사오카 시키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시비에는 마사오카의 대표적인 하이쿠(俳句) ‘春風やまりを投げたき草の原’가 새겨져 있다. 우리 말로는 ‘봄 바람, 공을 던지고 싶은 풀밭’이라는 뜻이다. 바로 야구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메이지 시대의 낭만주의 문학을 이끌었던 마사오카는 1888년 ‘니혼’ 신문에 쓴 ‘베이스볼’이라는 글 속에서 야구 술어를 번역했다. 그가 직접 일본 한자어로 번역한 타자, 주자, 직구, 사구 등은 오늘날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쓰이고 있다.야구라는 용어는 그의 필명 ‘마사오카 노보루’에서 ‘노보루’의 일본어 발음 ‘노(野)’와 ‘보루(ball의 일본식 발음)를 절묘하게 묶어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일본 야구 초창기, 선수로서 활약했던 마사오카는 고향인 시코쿠 마쓰야마에 야구를 전파하고 그 묘미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 마사오카의 야구 전파에 영향을 받아 시코쿠의 여러 도시들은 이후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많은 선수들을 배출해 ’야구의 고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마사오카의 절친한 친구 나쓰메 소세키는 그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자신의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야구를 서양 문화의 대표적인 요소의 하나로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과 같이 정신적인 영역을 중시하는 동양국가이면서도 중국은 일본과 다른 정서를 갖고 있었다. 야구를 ‘봉구(捧球)’라고 표기하는데 ‘막대기 봉’과 ‘공 구’가 합쳐진 말이다. 막대기로 공을 치는 경기라는 뜻이다. 지적인 낭만을 느낄 수 없고, 눈에 보이는대로 이름을 붙였다.
국내에는 1905년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가 황성기독청년회 회원들로 구성된 YMCA야구단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야구가 들어왔다. 그 당시에는 야구를 ‘타구(打球’)라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봉구’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였다. 일본에 합병된 이후 일본인들이 만든 ‘야구’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됐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