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에서 최고의 배터리로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대 전반 해태 왕조를 이끌었던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과 ‘노지심’ 장채근을 꼽을 수 있다. 선동열은 강속구, 제구력, 변화구 등 ‘투수 삼박자’를 완벽하게 갖춘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투수였으며, 장채근은 선동열과 함께 해태의 ‘안방 마님’으로 활약했던 포수였다. 둘은 1991년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를 시리즈 전적 4승무패로 꺾고 해태가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장채근은 당시 한국시리즈 MVP를 품에 안았다.
그럼 도대체 ‘배터리’란 말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언뜻 보기에 배터리와 야구는 맞는 말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통상 배터리라 하면 전기가 필요할 때 쓰는 전지의 의미로 사용하는게 일반적이다. 배터리는 분명히 전기, 전자 산업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그런데 야구용어로도 쓰이게 된 것은 야구를 대중화시킨 미국의 남북전쟁으로 인해 탄생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야구의 통일된 규칙을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미국 야구의 아버지’ 헨리 채드윅은 기자출신으로 1860년대 ‘배터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 당시 남북전쟁에서 사용중이던 포병대 배터리(포대)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 9명의 타자들이 공격을 하기 전에 투수와 포수가 화력을 구성해 상대를 두들겨 부순다는 뜻에서 영어 단어 ‘batter'에서 착안을 했다. 이후 배터리는 투수와 포수의 결합을 의미하는 단어로 진화됐다고 한다.
다른 어원도 있다. TV나 라디오 등의 정보매체가 없던 시대에 야구의 모든 기록은 전보로 타전되었다. 그 때 메시지를 주고받는 전신의 송수신자가 배터리(전지)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배터리가 투수와 포수를 묶어서 부르는 말로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두 기원설 중에는 아무래도 남북전쟁설이 더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한국과 일본에선 영어 원어 발음 그대로 배터리라는 말로 사용한다.
보통 투수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포수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수십년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976년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립스의 포수 밥분은 그 시절 최고의 포수였다. 하지만 투수 스티브 칼튼의 요청으로 팀 매카버로 교체됐는데 칼튼-맥카버 배터리는 최고의 콤비로 활약했다. 2014년 7월 샌프란스시코 자이언츠의 투수 매디슨 범가너와 포수 버스터 포시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벡스와의 경기에서 둘이 나란히 만루홈런을 기록해 MLB 사상 첫 그랜드슬램을 기록한 배터리가 됐다.
메이저리그에선 부자 배터리와 형제 배터리가 탄생하기도 했다. 1941년 캔자스시티의 프랭크 던컨 주니어와 그의 아들 프랭크 던컨 3세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부자 배터리였다. 1942년과 1943년 MLB 올스타전에서 모두 내셔널리그 선발 배터리를 형성한 모트와 워커 쿠퍼 형제가 있었다. 둘은 1942년, 1943년, 1944년 월드시리즈에서도 배터리로 출전했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