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주에서 로열로더로 우뚝 선 T1 '칸나' 김창동
2019년 T1의 톱 라이너 자리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난 해 두 번의 우승에 기여했던 '칸' 김동하의 빈자리는 영입과 아카데미 팀 승격으로 채워졌고 막 LCK 무대를 밟은 유망주 '칸나' 김창동에게는 의문 부호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김창동은 '기대 이상'이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해 보일 만큼 LCK 스프링 누구도 예상 못한 활약을 펼쳤다. 시즌 내내 신인답지 않은 안정감을 뽐낸데 이어 김창동은 플레이오프에서는 공격성까지 발휘하며 로열로더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직접 따냈다.
김창동은 한화생명e스포츠와의 2세트 경기에서 LCK 데뷔전을 치렀다. 비록 경기는 패배했지만 안정적인 라인전과 교전 능력으로 실력을 입증한 김창동은 주전 톱 라이너로 출전했고 오른 6연승에 기여했다. 특히 젠지 e스포츠-드래곤X로 이어지는 강팀과의 2연전에서 김창동은 주눅 들지 않는 플레이로 신예의 패기를 보여줬고 드래곤X와의 3세트, 후반 드래곤 교전에서 레넥톤으로 점멸로 진입해 자야를 잘라내는 슈퍼 플레이를 펼치며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김창동의 안정성을 엿볼 수 있는 지표는 데스 수다. 정규시즌 김창동은 게임 당 평균 1.33데스만을 기록했는데 이는 톱 라이너들 중 가장 적은 수치일 뿐 아니라 모든 포지션에서도 네 번째로 좋은 기록이다. 적은 데스로 인해 김창동은 K/DA(킬과 어시스트를 더한 후 데스로 나눈 수치) 6.17로 전체 5위에 올랐다.
챔피언 폭도 넓어 가장 많이 사용한 오른을 비롯해 소라카, 카르마 등의 변수 픽이나 제이스, 루시안과 같은 공격적인 픽도 거리낌 없이 꺼내 들었다. 다양한 챔피언으로 게임 내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김창동은 T1의 상단에 고민 대신 안정감을 가지고 왔고 T1은 14승4패의 성적으로 정규시즌을 2위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포스트시즌은 김창동이 스프링 스플릿에서 써내려간 반전 드라마의 하이라이트였다. 김창동은 플레이오프 2라운드 드래곤X의 톱 라이너 '도란' 최현준을 연이어 솔로 킬 내며 상단 균형을 무너뜨렸다. 결승전에서 김창동은 오른으로 젠지의 톱 라이너 '라스칼' 김광희의 제이스를 압도하며 팀의 아홉 번째 우승을 견인했다. 로열 로더 자리에 오른 순간 뜨거운 눈물을 흘린 김창동은 데뷔 시즌 자신을 향해 쏟아진 물음표를 느낌표로 완벽히 바꾸는 데 성공했다.
◆평가 뒤집은 드래곤X '도란' 최현준
드래곤X의 톱 라이너 '도란' 최현준의 스프링 스플릿 출발은 최악이었다. 징계로 경기에 출전조차 하지 못하며 벤치에서 팀의 승리를 지켜봐야했다. 징계가 끝난 후 치러진 경기에서도 기복 있는 플레이를 보였다. 라인전 단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특유의 공격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공격성이 독이 돼 허무하게 끊기며 기세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최현준은 2라운드 기량을 폭발시키며 길었던 '경험치 이벤트' 값을 해냈다.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다 잘리는 경우가 드물었고 상단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한 후 팀 교전에 기여했다. LCK 톱 라이너 중 세 번째로 높은 팀 cs 비중인 24.9%를 기록하는 최현준은 팀 자원 투자를 캐리력으로 바꿔내며 팀 내에서 미드 라이너 '쵸비' 정지훈과 서포터 '케리아' 류민석 다음으로 높은 POG 포인트를 기록했다. 최현준은 시즌 종료 후 LCK 서드 팀으로 선정되며 자신의 성장을 증명했다.
실력에서의 성장뿐 아니라 경기에서 보여준 최현준의 담대한 모습도 화제를 모았다. 최현준은 플레이오프 2라운드 진출이 걸린 담원 게이밍과의 맞대결 5세트에서 과감하게 리스크가 큰 챔피언인 이렐리아를 꺼냈다. 최현준은 이렐리아로 5킬0데스11어시스트, 안정적으로 교전에 기여하며 팀의 우세를 지켰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LCK 데뷔 순간부터 '소드' 최성원이라는 든든한 톱 라이너와 비교됐던 최현준은 유독 플레이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평가가 널을 뛰는 선수였다. 최현준은 스스로 자신을 향한 평가를 뒤바꾸며 '감동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드래곤X의 이번 시즌 여정은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멈췄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간 신예들이 서머 시즌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을지 팬들의 기대를 모으기 충분했다.
◆APK의 반전 이끈 '하이브리드' 이우진
시즌 시작 전, APK 프린스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100명 중 99명은 냉정하게 "다시 챌린저스로 강등될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핀이나 담원 게이밍, 샌드박스 게이밍이 모두 LCK로 빠져나간 챌린저스에 대한 기대는 높지 않았고 APK가 승강전에서 보여준 경기력 역시 LCK에서 살아남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이 대다수였다.
시즌 초반 APK는 이런 예상에 부응하듯 독특한 톱 라이너 '익수' 전익수를 제외하고는 별 다른 특징을 보여주지 못하며 무기력하게 패배했지만 2라운드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APK는 강팀을 상대할 때나 약팀을 상대할 때나, 유리할 때나 불리할 때나 물러서지 않고 교전에 나서며 화끈한 경기를 펼쳤고 이는 운영에 지친 LCK 팬들에게 재미를 선사했을 뿐 아니라 실제 팀 성적 상승으로도 이어졌다. APK는 2라운드 LCK 첫 연승과 함께 4승을 더하며 최종 7위로 승강전을 피했다.
APK만의 화끈한 팀컬러를 만든 것은 팀의 확고한 방향 설정과 전반적인 경기력 향상이었지만 공격력에 방점을 찍은 것은 원거리 딜러 '하이브리드' 이우진이었다. 1라운드까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원거리 딜러였던 이우진은 2라운드 기량이 만개했다. 라인전이나 게임 초반 단계에서부터 상대 하단을 무너뜨리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교전에서 뿜어대는 무지막지한 화력과 킬 결정력으로 승패를 떠나 활약을 펼쳤다.
이우진의 활약은 수치로도 드러났다. 이우진은 2라운드 분당 대미지와 팀 내 대미지 비중, 골드 당 대미지 모두 1위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화력과 '가성비'를 뽐냈다. 또한 2라운드에서만 세 번의 펜타 킬을 기록하며 차세대 딜링 머신의 위용을 뽐냈고 하반기 팀 내 POG를 독식하며 900포인트로 5위에 올랐다. 이우진은 스프링 정규시즌 게임 당 4.89킬로 가장 많은 킬을 기록했고 분당 616대미지를 기록하며 1위에 올랐다.
◆아쉬움 남긴 정글러들, '타잔' 이승용과 '온플릭' 김장겸
모든 반전이 좋은 의미의 반전은 아니었다. 몇몇 선수들은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팬들의 기대에 엇나가기도 했고 특히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난 정글에서 이는 더욱 두드러졌다.
'타잔' 이승용은 2018년 완벽한 LCK 데뷔 시즌을 보내며 '정글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선수였지만 2020년 첫 시즌은 힘겨웠다. 정글 경험치의 변화로 성장 후 라인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승용의 플레이가 무너졌고 성장은 성장대로 밀리고 그 사이 라인도 터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했다. 그리핀의 팀 내부에 변화가 있었음을 감안해도 최고의 정글러 중 한 명으로 꼽히던 이승용의 부진은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직전 시즌인 2019 서머와 비교했을 때 이승용의 2020 스프링 성적은 크게 떨어졌다. 2019 서머 6.21로 정글러 중 가장 높았던 이승용의 K/DA는 2020 스프링 3.08로 크게 줄었고 데스 수도 57에서 91로 크게 늘어났다. 10분 경험치 차이는 244에서 -56으로 바뀌어 초반 정글링에서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정글러의 부진, 약해진 라인전과 함께 그리핀의 드래곤 획득률은 58%에서 37%로, 첫 드래곤 획득률 역시 55%에서 37%로 떨어졌다.
팀의 핵심인 정글러의 폼 하락은 성적 하락으로 직결됐다. 그리핀은 스프링 정규시즌 최하위를 기록하며 승강전으로 내려갔고 승강전에서도 내리 2패를 당하며 챌린저스로 강등됐다. 그리핀은 2018 서머 승격 후 써내려간 승격팀 신화의 막을 쓸쓸하게 내리게 됐다.
그리핀만큼 스프링 시즌 예상치 못한 부진에 빠진 팀은 샌드박스 게이밍이었다. 특히 샌드박스는 핵심 선수들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2019 KeSPA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완성된 전력을 뽐냈다는 점에서 이런 추락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샌드박스는 팀 전체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줬고 2019시즌 날카로운 공격력을 뽐냈던 '온플릭' 김장겸도 부진의 휩싸이며 팀을 구해내지 못했다. 시즌 첫 경기 APK를 상대로 렉사이를 꺼내 자신의 강점인 공격성을 살려 POG를 독식했지만 이후 경기에서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고 강타 싸움에서 패하며 오브젝트 교전에서 무너지기도 했다.
김장겸 역시 K/DA가 2019 서머 3.33에서 2020 스프링 2.67로 하위권으로 떨어졌다. POG 포인트는 2019 서머 팀 내 2위, 전체 공동 3위인 800포인트를 기록했지만 2020 스프링에는 300포인트로 25위에 그쳐 줄어든 캐리 능력을 방증했다. 샌드박스는 승강전에서 첫 경기 패배 후 안정적으로 팀을 다잡으며 생존에 성공했지만 2019년 선두 다툼을 벌였던 팀의 추락은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김현유 기자 hyou0611@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