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박스 게이밍이 영입한 야콥 멥디 감독은 2018년 한국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서 바이탤리티를 이끌고 참가했다. 16강에서 3승3패에 머무르면서 탈락했지만 젠지 e스포츠를 두 번이나 잡아냈고 로얄 네버 기브업도 한 차례 꺾으면서 화제를 모았다.
멥디 감독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떨어졌지만 남아 있는 유럽 팀들은 다른 지역 팀들을 상대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라면서 "다른 지역 팀들의 것을 똑같이 하거나 따라가지 말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져라"라는 말로 유럽 팀을 응원했다. 멥디 감독의 조언 덕분인지 프나틱은 결승에 올라갔고 G2 e스포츠는 4강까지 진출했다.
멥디 감독은 샌드박스 게이밍의 지휘봉을 잡은 뒤 공개된 영상 인터뷰에서 2016년 스플라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2016년 스프링에서 하위권에 머무르면서 승강전까지 치러아했던 스플라이스는 멥디 감독이 팀을 맡은 이후 서머에서 2위로 뛰어 올랐고 지역 대표 선발전을 통과하며 롤드컵에 진출했다.
멥디 감독은 "샌드박스 게이밍이 올해 스프링에서 경험한 일들이 반등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혁신이라는 단어를 항상 떠올리면서 새로운 플레이를 만들어가는 팀으로 만들고 싶고 샌드박스 게이밍은 충분히 역량을 갖고 있는 팀"이라고 전했다.
스승의 날에 젠지 e스포츠와 결별한 최우범 감독은 하루 뒤인 16일 자신의 SNS에 한 장의 사진을 올리면서 팀을 떠나는 소회를 적었다. 삼성전자 칸 소속 스타크래프트 선수로 인연을 맺은 최 감독은 "18년 동안 몸 담았던 팀을 떠난다고 밝혀서 놀랐을 팬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라고 죄송하다는 뜻을 전했다.
최 감독은 "선수단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데 팀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팬들의 응원이 필요하다"라며 "개인적으로도 20년 가까이 e스포츠 현장에서 일했기에 당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겠다"라고 밝혔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인 최우범 감독은 특이한 플레이를 자주 보여주면서 한 때 '삼수범'이라고 불렸고 '~~했삼'으로 마무리되는 '삼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014년 삼성 갤럭시 화이트와 블루가 롤드컵 4강에 동반 진출하고 화이트가 우승할 때 코치를 맡았던 최우범은 감독과 코치, 선수들이 모두 팀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남아 팀을 재건했고 불과 2년 만에 다시 롤드컵 결승에 올려 놓았다. 2016년에는 우승에 실패했지만 2017년 중국에서 열린 롤드컵에서 SK텔레콤 T1을 3대0으로 격파하면서 세계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젠지가 삼성 갤럭시 LoL 팀을 인수한 첫 해인 2018년에도 롤드컵에 진출했던 최우범 감독은 16강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아쉬움을 남겼고 2020년 스프링에서 젠지라는 이름으로는 처음으로 LCK 결승에 올라갔지만 T1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최 감독이 SNS에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스프링 결승전 완패의 책임을 지고 팀을 떠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 갤럭시 시절부터 젠지 e스포츠까지 7~8년 동안 LoL 팀을 이끌어온 최우범 감독에게는 감사의 뜻을 전하고 LCK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라는 도전에 나서는 야콥 멥디 감독에게는 좋은 성과가 따르길 기대한다.
야콥 멥디 감독의 LCK 입성과 롤드컵 우승 경험이 있는 최우범 감독의 하차는 공통점이 있다. 샌드박스 게이밍이나 젠지 e스포츠, 나아가 LCK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LCK는 롤드컵과 MSI 등에서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면서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7년을 끝으로 2년 이상 1위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2018년과 2019년 롤드컵 우승은 중국이 차지했고 2019년 MSI는 유럽이 가져가는 등 한국이 지키려 했던 챔피언 벨트는 다른 지역의 허리춤에 걸려 있다.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가 2021년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완비하겠다고 밝히면서 팀들은 새로운 모습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인만으로 구성된 코칭 스태프를 고수하기 보다는 혁신과 변화를 통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지도자를 뜻하는 코치(Coach)라는 말은 말이 끄는 마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출발지에서 정해진 목적지를 가기 위해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국 스포츠에서 코치는 단순히 기능을 끌어 올려서 성과를 개선시키는 사람 뿐만 아니라 교육적, 정신적으로도 선수들을 이끌어야 한다. 그렇기에 운동시키는 부모들은 감독, 코치라는 직함 뒤에 선생님을 붙인다.
삼성 갤럭시와 젠지를 훌륭한 팀으로 이끌어준 최우범이라는 '감독 선생님'은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충분하게 휴식을 취한 뒤 새로운 팀에서 지도자로서, 스승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한다.
LCK 최초의 외국인 감독인 야콥 멥디 감독에게는 유럽 스타일이 한국에서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 보여주길 바란다. 글로벌화를 추구하고 있는 샌드박스 게이밍과 LCK가 '외국인 선생님'을 만났을 때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더욱 풍성한 콘텐츠를 갖춘 리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