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유치환(1908~1967)은 대표시 ‘깃발’에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라고 적었다. 골퍼들은 그린위의 깃발을 향해 둔탁한 소리를 내는 샷을 계속 날려야 한다. 골퍼들에게 깃발은 최종 점수를 올리는 지향점을 위한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깃발은 더 유용하게 쓰인다. 대물접촉을 피하기 위해 깃발을 꽂은 채 플레이를 하는 새로운 골프 문화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모두 그린에 올라가면 대체로 깃발이 날리는 깃대를 뽑고 퍼트를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깃대를 그대로 놔둔 채 경기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골퍼들의 생존법이다.
'깃대(Flagstick)', 일명 '핀(Pin)'으로 불리기도 하는 것을 왜 그린에 세웠을까. 분명 다른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데 깃대를 설치한 것은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다른 색깔의 깃발을 세워야 했던 이유 말이다. 깃대 역사의 흔적은 골프 발상지인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류스 올드 코스에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골프 초기 코스처럼 오늘날에도 올드 코스 9번홀은 클럽하우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첫 번째 9개홀은 여전히 '아웃'홀이다. 이 홀들을 모두 돌아야 '인'으로 되돌아간다. 클럽하우스 근처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9개 홀이 두 개의 원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가 되어서였다. 현재의 세인트앤드류스는 18홀 가운데 단독 그린은 1번, 9번, 17번, 18번홀, 불과 4홀 뿐으로 나머지는 모두 하나의 그린에 아웃과 인 2개의 홀을 공유하는 레이아웃으로 되어 있는 것도 그 자취이다.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코스에서 하나의 그린에 2개 홀을 공유하게 된 것은 다른 색깔의 깃발을 꽂은 기원으로 설명한다. 올드 코스는 원래 하키 스틱 라인 형태에 지형에 홀을 배치했다. 파4 미들홀은 항상 두 번 플레이했다. 1764년, 골퍼들은 처음 4개 홀을 2개씩으로 합쳐서 18홀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실제로는 10홀 중 8홀을 두 번 플레이해, 한 번은 아웃, 한 번은 인으로 운영했다. 1836년까지 5번홀 '오크로스 그린'이 2개의 구멍을 냈고, 1855년 도 앤더슨이 7번홀에 더블 그린을 만들었지만, 1857년에야 앨런 로버트슨이 8개의 미들홀에 더블 그린을 만들어 제대로 18홀 라운드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 상황에서 각 홀 그린을 구별해야하는 문제가 생겼다. 1857년 5월 빨간색과 흰색의 깃발을 사용, 홀을 구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아웃코스 홀에는 백색 깃발이, 인코스 홀에는 빨간 깃발이 걸렸다. 이러한 혁신은 1856-57년 영국왕립골프협회(R&A) 휴 라이온 플레이페어 경에 의해 이루어졌다. 올드 코스는 18번홀만은 전반 9개홀과 똑같은 색깔인 하얀색 깃발을 걸어 경기가 끝났음을 표시한다. 올드코스는 경기 진행을 코스에서의 마모를 관리하기 위해 매주 시계 방향 또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번갈아 가며 바꿨다. 깃대는 이럴 때마다 골퍼들에게 매우 유용하게 보였을 것이다.
지금은 세계 어느 골프장에서나 색색의 깃발을 사용한다. 깃대 깃발에 일정한 논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앞쪽, 가운데 쪽, 뒤쪽 등 그린을 3등분해 빨간색, 흰색, 파란색 등의 깃발을 내걸고 있지만 일정하지는 않다. 골프 규정에는 깃대를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온전히 플레이어의 권한으로 규정하는데, 2019년전까지는 그린에서 퍼팅을 할 때 깃대가 놓여 있는 상태에서 공이 깃대를 맞고 들어가며 2벌타를 받게 되었으나 이제는 깃대를 두고도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개정이 되기도 했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