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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박사 기자의 스포츠 용어 산책 50] ‘잠정구(Provisional ball)’에서 ‘잠정’은 어떻게 만들어진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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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 자욱한 코스에서는 잠정구를 칠 일이 많아질 수 있다. 사진은 14일 제주 엘리시안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KLPGA투어 S-OIL 챔피언십 3라운드 모습. [KLPGA 제공]
안개 자욱한 코스에서는 잠정구를 칠 일이 많아질 수 있다. 사진은 14일 제주 엘리시안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KLPGA투어 S-OIL 챔피언십 3라운드 모습. [KLPGA 제공]
여자프로골프 3년차 윤서현(20)은 13일 제주 엘리시안 컨트리클럽에서 벌어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OIL 챔피언십 2라운드 1번홀에서 시작하자마자 샷 난조를 보이며 잠정구를 3개나 쳤다. 첫 티샷이 페어웨이 중간 왼쪽 카트 도로 맞고 잡목 속으로 들어갔다. 앞 쪽에서 볼 위치를 확인해주는 마커가 사인을 보냈다. 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신호였다.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샷도 왼쪽으로 말리면서 숲 속으로 날아갔다. 정 안된다 싶었던지 네 번째 샷은 드라이버 대신 3번 우드를 잡고 샷을 했다. 이 샷은 페어웨이 한 가운데로 날아갔다. 잠정구를 여러 개 친 윤서현은 마커와 함께 첫 번째 티샷한 볼을 어렵게 찾았다. 뒷조에서 유현주 등이 10여분간이나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골프 규칙에 따르면 '잠정구(Provisional ball)'는 타구가 워터해저드(water hazard) 이외에서 분실 또는 아웃오브바운즈(out of bounds)될 염려가 있는 경우, 그 결과를 확인하기 전에 잠정적으로 치는 공을 말한다. 원래 볼이 숲속으로 날아가면 때렸던 곳으로 돌아가서 다른 공을 새로 쳐야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서 치면 시간이 지연될 뿐 아니라 친 골퍼 기분도 영 안좋을 것이다. 그래서 숲으로 간 공을 찾기 위해 티 구역을 떠나기 전, 동반자에게 '잠정구'를 선언하고 볼을 다시 친다. 만약 먼저 친 공을 찾지 못할 경우, 잠정구가 플레이볼이 된다. 하지만 원래 볼을 찾는다면, 벌칙 없이 잠정구를 집어들면 된다. 골프가 신사 스포츠라는 일면을 잠정구 용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골프 용어는 대체적으로 영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잠정구는 드물게 한자어를 그대로 사용한 게 좀 궁금하지 않을까 싶다. 초보자에게 잠정구는 아마 다른 용어보다는 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잠정구는 중국, 일본, 한국에서 모두 사용하는 한자어이다. 아마도 1800년대 후반 골프가 미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왔던 것으로 추정해 볼 때 일본에서 만들어 진 일본식 한자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 잠정이란 한자는 어떤 의미일까. '잠깐 잠(暫)'은 '벨 참(斬)과 '날 일(日)'이 합성된 한자어이다. 날을 베어서 작게 만든 시간이 잠깐이라는 의미이다. 벨 참에서 의미하듯이 도끼로 머리를 자르거나 사지를 절단하는 형벌인 '참수(斬首, 머리를 베는 것)'를 하던 옛날 왕조시대에 잠시 형벌을 멈추고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상당히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단어였다.

아마도 일본 메이지 유신, 사무라이 문화가 지배하던 무렵에 후쿠자와 유키치 등 사무라이 출신 문사들이 영어를 번역하면서 골프 클럽이 '칼'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착안해, 'Provisional ball'의 'Provisional'을 '잠정'으로 해석한 것인 듯하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면 '잠정'이라는 단어는 딱 1번 나온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의 개입이 점차 심해지던 1894년, 고종 31년 7월20일 갑오 5번째 기사로 ''조일 잠정 합동 조관(朝日暫定合同條款)'이 작성되었다'는 대목이다. 잠정이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수입된 것임을 엿보게 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시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뜻하는 영어를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로 표기했다. 여기서 'Provisional'은 잠정보다는 임시라는 의미로 사용했던 것이다. 물론 잠정, 임시는 같은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감상 'Provisional'을 '임시'라는 의미로 썼던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법하다. 일본식 한자어인 '잠정'이 무력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문자는 해당 국가나 집단의 정신문화를 반영하는 사회적 약속이다. 특정 용어는 오래동안 사람들이 사용하면 그대로 굳어진다. 만약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하면 상당한 소통의 단절이 올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 어원과 유래 등을 제대로 알려고 하는 노력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굳어졌다고 그냥 방치만 하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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