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코로나19로 3개월여만에 재개된 KLPGA 챔피언십에서 투어 데뷔 첫 우승을 차지한 박현경(20)도 프로골퍼 출신인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1999년 한국프로골프(KPGA) 2부투어에서 우승했지만 1부 우승 경험은 없다. 박현경은 이 대회에서 처녀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뤄냈다.
한국여자골프에서 아버지는 특별한 존재이다. 대부분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처음 골프를 접했고 아버지의 영향으로 프로골퍼가 된 이가 많다. 이런 한국적인 여자골프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등장한 용어가 이른바 ‘골프 아빠(Golf Daddy)’이다. 이 말은 사실상 한국이 원조이다. 한국을 겨냥해 생긴 말이라는 것이다. 미국, 영국의 골프 백과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개인주의 성향이 높은 서양에 비해 가족주의 전통이 강한 한국의 골프 문화에서 나온 현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자녀의 성공을 위해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를 칭하는 말로 ‘타이거맘(Tiger Mom)’, ‘헬리콥터 맘(Helicopter Mom)’ 등 어머니와 관련한 용어들은 있지만 아버지를 등장시킨 말은 일상화하지 않았다.
골프 대디라는 말이 본격 등장한 것은 1998년 박세리가 처음으로 US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였다. 싱글핸디 골퍼였던 박세리 아버지 박준철씨는 우승이 확정되자 기쁨에 겨워 그린위로 뛰어가 딸을 번쩍 들어 올렸다. 한국형 골프 대디의 출현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박준철씨는 딸에게 처음 골프채를 쥐어주고 스윙을 가르쳐 주었다. 외국 언론에서는 이러한 박준철씨를 '골프 대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박세리는 성적이 안 좋을 때면 다른 스윙코치보다 아빠에게 스윙을 점검 받고 컨디션을 회복할 정도로 아빠의 의존도가 높았다.
박세리 이후 김미현, 한희원, 배경은 등이 아빠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LPGA와 KLPGA 대회를 석권했다. 한국 골프 대디의 위력을 실력으로 입증해보인 것이다. 골프 대디들은 딸의 골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어린 나이에 프로가 되면 아버지들은 매니저 겸 운전기사, 스윙코치는 물론이고 생업을 포기하고 캐디까지 맡는 경우도 있었다. 김미현 같은 경우는 아버지가 미국 투어 대회를 위해 전역을 돌며 차에서 밥도 같이 먹고 동고동락을 하기도 했다. 골프 대디는 간혹 딸과 다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딸의 유명세를 앞세워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해 구설수에 오르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박현경처럼 가슴 뭉클한 스토리가 더 많다. 아빠가 딸의 성공을 위해 희끗희끗한 머리를 날리며 희생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숙연함마저 느끼게한다. 한국의 골프 대디는 따뜻한 부성의 상징이 되면서 한국여자골프의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중요한 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 언론계 선배가 이 글을 보고 의견을 보내왔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모 일간지 스포츠 데스크였던 선배는 당시 골프담당 기자와 논의해 이 말을 국내 언론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선배는 1990년대 중반 미국 연수 당시 '사커 맘(Soccer Mom) 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는 데 착안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이다. 클린턴이 부시를 누르고 대통령이 될 당시 미국에서도 축구가 새롭게 인기를 끌면서 방과후나 주말에 축구 연습장이나 경기장에 아들, 딸을 자동차로 태워주는 극성 젋은 엄마들의 표를 많이 얻어 승리했다는 정치 사회학적 분석이 유행했다고 한다. 당초 '골프 대드(Golf Dad)'로 하려다가 '골프 대디(Golf Daddy)'가 어감이 좋다는 스포츠부원들의 반응이 많아 골프 대디로 결정했다는 얘기이다. 사실 '마미(Mommy)'와 '대디(Daddy)는 유치원 이하 수준 아이들의 용어. '맘(Mom)'과 '대드(Dad)'는 초등학교이상 수준의 호칭이어서 '대디(Daddy)'라고 하기가 좀 꺼려졌던 기억이 있었다고.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