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은 파3홀에서 후속팀에게 손을 들어 티샷을 하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앞 팀이 밀려 있을 경우 원활한 라운드를 위해 다음 팀이 오면 공을 쳐도 좋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일부 골퍼들에게 사인이라는 말은 에티켓을 연상시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진다. 뒷 팀에게 양보를 하는 미덕을 발휘했다는 의미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퍼팅 그린에 먼저 올라간 골퍼들은 공에 마크를 하고난 뒤 그린 뒤의 프린지로 물러선 다음 티잉 그라운드에 있는 뒷 팀에게 ‘쳐도 좋다’는 의미로 손짓을 한다. 티샷을 모두 마치면 사인을 준 이들은 마크한 그린위의 공으로 마무리를 한다. 사인을 주는 것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이다. 이 경우에는 조건이 있다. 반드시 파3홀이어야 하고 뒷 팀이 티잉그라운드에 있고 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또 퍼팅 그린에 있는 골퍼들이 퍼팅을 하더라도 다음 홀에서 대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럴 경우가 충족되어 있어야 사인이 성립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이론일 뿐이다.
보통 골프장측에서 더 많은 골퍼를 수용하기 위해 진행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해 사인을 실행하는 경우가 많다. 앞뒤팀 캐디들이 서로 골프장측의 상황을 전달받으며 골퍼들에게 사인을 주도록 한다. 골퍼들이 인심좋게 뒷팀을 배려해 사인을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인을 줬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티샷한 공이 날아와 프린지 뒤에 있던 골퍼들에게 잘못하면 부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왕왕 대기중이던 골퍼들이 부상을 당하기도 함으로 주의해야 한다.
사인은 주로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만 적용한다. 프로골프대회에서는 사인이란 것이 없다. 사인시스템을 운영하면 ‘어느 곳에 떨어뜨리면 좋을지’ 등 코스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줘 선수들이 플레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몇 번 클럽을 사용했는지 캐디가 얘기해줘도 벌타를 매기며 엄격하게 ‘어드바이스’ 금지조항을 채택하고 있는 프로골프대회에서 사인을 준다는 것은 불공정행위로 볼 수 밖에 없다.
사인의 정확한 영어식 표현은 ‘웨이브(Wave)’ 또는 ‘웨이브 업(Wave Up)’이다. 웨이브는 물결, 파도라는 의미와 함께 ‘손을 흔들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멀리 티잉그라운드에 있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쳐도 좋다는 뜻으로 웨이브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인이라는 말보다 좀 더 구체적인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웨이브라는 말이 일본을 거치며 사인이 된 것은 아마도 야구 용어에서 사인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된 것에서 착안된 것이 아닌가 싶다. 메이지 개화기 시절, 야구가 먼저 보급된 일본에서 복잡하고 미묘한 야구의 세계를 잘 보여줬던 단어로 사인을 꼽을만 하다. 감독과 선수들이 경기 중 소통을 위해 사인을 주고 받는 모습이 매우 이색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손 동작, 몸 동작 등으로 투수와 포수, 감독과 선수들끼리 사인을 하는 광경은 일본인들에게는 새로운 문화로 비쳐질만 하다.
정신과 혼을 강조하는 일본 문화에서 손을 흔들어대는 웨이브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는 것보다 야구에서 보여준 사인이라는 단어에 더 흥미가 끌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인이라는 단어가 뭔가 신비로우면서도 일본인 성향에 잘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귀족이나 돈있는 유한계급 들이 즐긴 골프 용어로 웨이브보다 사인이 정착된 이유로 본다.
이미 한국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수십년 동안 써왔던 사인이라는 단어를 지금와서 고쳐 사용하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외국인들과 같이 라운드를 할 때는 가급적 사인보다는 웨이브라는 말을 쓸 것을 권한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이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