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에서 한 라운드는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대해 미국의 한 골프잡지가 통계를 낸 적이 있다. ‘퍼팅 43%, 드라이버를 비롯한 우드플레이 25%, 치핑 13%, 쇼트 아이언 7%, 미들아이언 4%, 롱아이언 3%, 트러블 샷 5%’ 로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골프 스코어는 퍼팅이 좌우하고 있음을 뜻한다. 당연히 홀에 집중해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불교 용어에 ‘108번뇌’라는 말이 있다. 번뇌(煩惱)는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의미한다. 불교의 탄생지 인도에서 108이란 ‘큰 수‘를 상징한다. ‘108번뇌‘란 많은 번뇌라는 뜻이다. 골퍼들이 공을 집어넣기 위해 항상 고민해야 하는 홀의 직경이 108mm라는 사실은 의미 심장하다. 불교 문화의 한국, 일본 등 동양인들에게는 특히나 그렇다. ’4.25‘라는 숫자보다 ’108‘이라는 숫자에 골프 고수들이 쉽게 익숙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 표준 골프장 퍼팅 그린에서 홀의 크기를 나타내는 숫자는 ‘108mm’가 아닌 ‘4.25인치’이다. 그럼 4.25인치 홀은 언제 표준화가 됐을까. 보편적인 골프 용어는 골프의 성지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류스 로열 골프클럽에서 시작됐다. 22홀이었던 골프를 18홀로 줄여 오늘날 전 세계 18홀 경기를 표준화 한 곳이 세인트 앤드류스 로열 골프클럽이다. 하지만 홀 크기 표준화는 세인트 앤드류스와 '골프 발상지'를 놓고 다투는 머셀버러 골프클럽에서 나왔다고 한다. 머셀버러는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 도심에서 동쪽으로 8km 떨어져 있는 포스만 연안의 항구도시로 북쪽의 세인트 앤드류스와는 멀리 있다.
홀 직경이 표준화한 것은 1800년대 들어서 ‘홀 커터(Hole-cutter)’라는 기계가 등장하면서였다. 그 이전까지는 표준화된 홀 사이즈가 없었고 링크스 코스마다 다양한 크기로 홀이 만들어졌다. 1829년 로열 머셀버러 골프클럽은 최초로 홀 커터기를 1파운드에 구입했다고 한다. 당시의 홀 커터기는 머셀버러 골프클럽 하우스에 지금도 전시돼 있다.
하지만 혁명적인 홀 표준화는 보급이 되는데 시간이 걸렸다. 골프 용어 사전에는 1858년 신문 기사를 인용, 6인치 사이즈가 스코틀랜드와 영국 링크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할정도로 홀 크기 편차가 여전했음을 보여주었다.
공식적인 4.25인치 표준화 적용은 1891년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클럽에서 처음으로 공표하면서 이루어졌다. 머셀버러 골프클럽에 오래된 홀 커터가 전시되고 있지만 4.25인치설이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4.25인치 홀이 공식적으로 적용되기는 했지만 반드시 따라야할 강제 규정은 아니었다. 1930년대 전설적인 레전드 골퍼 진 사라젠은 훨씬 큰 8인치 홀을 찬성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잭 니클라우스는 특별한 이벤트에서 8인치 홀 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골프용품사 테일러메이드는 세르히오 가르시아 등 프로 골퍼들을 초청, 2014년 15인치 홀 플레이를 후원했다.
현재 세계 대부분의 골프장 퍼팅 그린은 4.25인치 홀 크기로 만들어져 있다. 18홀 정규코스가 한 개밖에 없는 북한의 평양골프장은 김정은의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홀인원을 무려 11회나 하는 등 18홀에서 34언더파 38타를 쳤다는 곳이다. 그린에 공을 올리면 홀인원이 되는 ‘깔때기 홀’로 그린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얘기이다. 높은 수준의 골프는 홀 크기만 변화시키면 어떤 곳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는 4.25인치, 108mm 크기의 홀을 전 세계 골퍼들은 가장 좋아한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