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한국시간) 벌어진 대회 4라운드에서 욘 람은 3타차 선두를 지키며 16번 홀(파3)에서 티샷이 그린을 넘어가 러프에 빠졌다. 볼이 떨어진 러프가 길어 그린 뒤쪽에 꽂힌 핀에 붙이기가 만만치 않았다. 아마추어의 경우 이럴 상황이면 더블보기도 나올 판이었다. 람이 살짝 띄워 보낸 볼은 핀 앞에 떨어져 거짓말처럼 컵 속으로 사라졌다. 칩샷 버디였다. 선두 경쟁을 하던 파머마저 박수를 치며 축하할 만큼 멋진 샷이었다. 람은 4타차 리드를 잡았고, 더는 추격할 동력을 잃어버린 파머는 17번 홀(파4) 보기로 주저앉았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고 반전이 있었다. 룰 및 대회 담당 슬러거 화이트 부회장이 람이 16번 홀 칩샷을 하기 전에 웨지 헤드로 볼 뒤쪽 잔디를 여러 번 누르는 과정에서 볼이 움직였다고 확인했다. 이 장면은 리플레이된 TV 화면에 또렷하게 잡혔다. 2벌타가 부과되면서 최종적으로 제출한 스코어카드에 16번 홀 성적은 버디가 아닌 보기였다.
하지만 람이 우승한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5타차 우승이 아닌 3타차 우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람은 "공이 움직인 줄 몰랐다"면서 "그랬다면 벌타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담담하게 인정했다. 화이트 부회장은 규칙 9.4에 근거를 두면서 "선수가 움직이지 않은 공을 움직였고, 다시 원위치 하지 않았다. 그래서 2벌타를 부과했다. 이것이 핵심이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람과 같은 세계 정상급 골퍼도 자신도 모르게 2벌타를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TV 화면이 없었다면 아무도 볼이 움직이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욘 람이 2벌타를 정중하게 받아들인 것은 높이 살만하다.
변함없는 얘기이지만 룰을 많이 알면 알수록 골프에 대해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 골프는 스포츠 중에서 자신에게 스스로 페널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프로 토너먼트에는 관계자들이 직접 나서서 위반 사항을 적발하고 규칙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때에 따라서는 모르고 지나치다가 이번처럼 뒤늦게 발견해 부과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선수들에게는 경기 규칙을 알고 따라야 할 책임도 선수에게 있다.
2벌타 기준은 고의이거나 모르거나간에 규칙을 위반했을 때 부과된다. 남의 볼이나 샷을 방해하거나 볼 위치에 변화를 준다거나, 해저드나 벙커 등에서 클럽을 내려놓든지 하면 2벌타를 받는다. 서로 짜고 규칙 적용을 하지 않아도 2벌타를 받으며, 클럽 14개를 넘어도 2벌타이다. 골프 룰을 가만히 살펴보면 죄의 정도에 따라 벌도 늘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적 상황에 따라 룰도 바뀔 수 있지만 정해진 룰은 존중해야 한다.
골프는 신사 스포츠인만큼 철저히 룰에 따라 운동을 해야 즐겁고 행복한 라운드를 할 수 있다. 혼자 하는 개인운동이지만 남을 배려하며 룰을 잘 지켜 나갈 때 골프의 가치는 높아진다. 공정하게 룰을 지킬 때 결과도 공정해진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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