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씨는 아너라는 말을 듣고 골프는 경기력 이외에 명예를 소중히 하는 운동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너라는 말은 영어로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골프에서 가장 먼저 티샷을 하는 이에게 이 말을 씀으로써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1번홀 티잉 그라운드에서 젓가락 길이의 쇠막대를 홈통에서 뽑아서 아너를 선정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네 개의 쇠막대마다 밑부분에 홈이 파져 있는데 파진 홈 수에 따라 티샷 순서를 정했다. 한 개가 있으면 첫 번째 아너가 되는 것이며 두 개면 두 번째, 세 개면 세 번째 식으로 순서를 결정했다. 세컨 샷 순서도 흥미로웠다. 각 네 명이 드라이버를 친 후 볼이 멈춘 자리에서 그린까지 거리가 가장 먼 사람부터 볼을 쳤다. 이른바 ‘어프로치(Approach)’였다. 말 그래도 홀 근처로 공을 보내는 것인데 그린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부터 순서대로 샷을 했다. 그린에 올라가서도 순서대로 ‘퍼팅(Putting)’을 했다. 홀에서 가장 먼 이부터 퍼팅 순서를 이어 나갔다. 2번홀 부터는 가장 잘 친 이가 아너가 돼 먼저 티샷을 했고, 그 다음으로 잘 친 이가 다음 순서로 티샷을 했다. 어떤 홀에서 동반자 중 한 명이 티잉 그라운드에서 스코어카드를 확인하더니 ‘캐리 아너(Carry Honor)’라며 B씨에게 티샷을 먼저 하라고 말했다. 전 홀에서 네 명의 스코어가 똑같아 전 홀순서대로 티샷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 때 캐리 아너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원래 원어는 ‘캐리드 아너(Carried Honor)’이다.
K싸는 ‘캐리드 아너’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서로 똑같은 점수를 기록했을 때 앞 선 홀의 순서를 적용해 티샷을 하는 것을 보고 골프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예절을 우선시하는 ‘신사의 운동’이라는 것을 캐리드 아너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연습장에서 골프를 어떻게 하면 잘 칠까만 생각하고 많은 샷 연습을 했다. 필드를 나가서 잘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반자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서로 지킬 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캐리드 아너는 골프 용어 가운데서 골프 매너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K씨는 말했다.
캐리드 아너는 골프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게 하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쟁하는 삶 속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결과를 보였더라도 앞 뒤의 순서는 분명 있다. 앞 서서 출발을 했거나 좀 뒤에 출발했거나 이전 상황은 다를 수 있다. 다양한 삶 속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당위성에서 자유 민주사회는 발전할 수 있었다. 골프가 영국에서 만들어져 미국을 거쳐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적인 종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정신을 기반으로 해서였다.
K씨가 캐리드 아너라는 말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정신적인 가치가 아니었을 까 생각한다.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남을 배려하며 존경하는 문화를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