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는 아너라는 말을 듣고 골프는 경기력 이외에 명예를 소중히 하는 운동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너라는 말은 영어로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골프에서 가장 먼저 티샷을 하는 이에게 이 말을 씀으로써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1번홀 티잉 그라운드에서 젓가락 길이의 쇠막대를 홈통에서 뽑아서 아너를 선정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네 개의 쇠막대마다 밑부분에 홈이 파져 있는데 파진 홈 수에 따라 티샷 순서를 정했다. 한 개가 있으면 첫 번째 아너가 되는 것이며 두 개면 두 번째, 세 개면 세 번째 식으로 순서를 결정했다. 세컨 샷 순서도 흥미로웠다. 각 네 명이 드라이버를 친 후 볼이 멈춘 자리에서 그린까지 거리가 가장 먼 사람부터 볼을 쳤다. 이른바 ‘어프로치(Approach)’였다. 말 그래도 홀 근처로 공을 보내는 것인데 그린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부터 순서대로 샷을 했다. 그린에 올라가서도 순서대로 ‘퍼팅(Putting)’을 했다. 홀에서 가장 먼 이부터 퍼팅 순서를 이어 나갔다. 2번홀 부터는 가장 잘 친 이가 아너가 돼 먼저 티샷을 했고, 그 다음으로 잘 친 이가 다음 순서로 티샷을 했다. 어떤 홀에서 동반자 중 한 명이 티잉 그라운드에서 스코어카드를 확인하더니 ‘캐리 아너(Carry Honor)’라며 B씨에게 티샷을 먼저 하라고 말했다. 전 홀에서 네 명의 스코어가 똑같아 전 홀순서대로 티샷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 때 캐리 아너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원래 원어는 ‘캐리드 아너(Carried Honor)’이다.
‘캐리’는 볼이 클럽에서 떠나 비행을 하다가 처음에 떨어진 지면까지의 거리를 말한다.(본 코너 105회 ‘’캐리(Carry)는 ‘비거리’와 어떻게 다른가‘ 참조). 캐리는 원래 ’움직이다‘, ’나르다‘라는 동사형의 뜻이 있다. 캐리드 아너는 ’움직인 아너‘라는 의미로 전 홀에서 아너를 그대로 옮겨왔다는 것을 말한다.
K싸는 ‘캐리드 아너’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서로 똑같은 점수를 기록했을 때 앞 선 홀의 순서를 적용해 티샷을 하는 것을 보고 골프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예절을 우선시하는 ‘신사의 운동’이라는 것을 캐리드 아너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연습장에서 골프를 어떻게 하면 잘 칠까만 생각하고 많은 샷 연습을 했다. 필드를 나가서 잘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반자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서로 지킬 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캐리드 아너는 골프 용어 가운데서 골프 매너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K씨는 말했다.
캐리드 아너는 골프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게 하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쟁하는 삶 속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결과를 보였더라도 앞 뒤의 순서는 분명 있다. 앞 서서 출발을 했거나 좀 뒤에 출발했거나 이전 상황은 다를 수 있다. 다양한 삶 속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당위성에서 자유 민주사회는 발전할 수 있었다. 골프가 영국에서 만들어져 미국을 거쳐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적인 종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정신을 기반으로 해서였다.
K씨가 캐리드 아너라는 말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정신적인 가치가 아니었을 까 생각한다.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남을 배려하며 존경하는 문화를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