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2년 영국왕립골프협회(R&A) 골프 규칙에 명시된 바에 따르면 상대보다 한 타 더 많이 친 상태이면 ‘오드(The Odd)’, 상대가 다음 스트로크에서 다시 같은 타수가 되면 ‘라이크(Like)’로 표기했다고 한다. 이미 200여년 전에도 매치 플레이에 관한 룰이 공식적으로 운영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골프 발상지 스코틀랜드에서는 아직도 매치 플레이 중계방송 때 홀에서 비기게 되면 “라이크 애즈 위 라이(Like as we lie)’라고 말한다고 한다.
현재 매치 플레이는 한 홀 한 홀을 ‘업(Up)’, ‘다운(Down)’, ‘올 스퀘어(All Square)’라고 판정을 한다. 이기면 업, 지면 다운, 비기면 올 스퀘어라는 뜻이다. 기본적인 매치플레이 용어로 대부분 이 정도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중계방송을 보다보면 ‘도미(Dormie)’라는 용어를 접하곤 아리송하다는 이들이 많다. 처음 들으면 물고기 ‘도미’와 같은 이름이 왜 거기서 나왔는가며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 지 착각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도미’는 매치 플레이에서 최종 승부가 결정된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이길 홀의 수가 나머지 홀의 수와 동수가 되었을 경우, 이긴 홀의 수를 첫 머리에 붙여 특정 숫자 뒤에 ‘업 도미’라고 말한다. 예를들어 3&2로 승부가 났다면 ‘쓰리업’을 이기고 남은 홀이 2홀이라는 뜻이다. 5&4면 5개홀을 이기고 4홀을 남겨놓았다는 것이다.
원래 ‘도미’는 잠을 뜻하는 ‘Dorm’이 접두사격으로 붙어서 ‘누워서 편히 쉰다’는 어원을 갖고 있다. 프랑스어 ‘Dormir’에서 유래된 것으로 남은 홀을 모두 자도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Dormitory’가 ‘기숙사’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도 잠과 관련된 말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고대 영어, 즉 앵글로색슨어는 프랑스족의 일파인 노르만인들이 정복을 하며 상류 계급으로 자리잡으면서 프랑스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골프 용어에는 ‘도미’ 뿐 아니라 ‘캐, ’디(Caddie)’, ‘트로피(Trophy)’ 등 여러 개가 있다. (본 코너 30회차 ‘ ’캐디‘는 어디에서 온 말일까’ 참조)
대부분의 주말 골퍼들은 보통 스트로크 플레이를 한다. 하지만 초보골퍼들은 간단한 내기 방식으로 일종의 매치플레이 방식인 ‘뽑기’를 좋아한다. 스트로크 플레이보다는 서로의 핸디캡도 배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치플레이는 스윙이 불안하거나 스트로크플레이에 자신이 없는 하이 핸디캡 골퍼들이 자신의 플레이도 점검하며 다소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초보 골퍼들이 잘 치는 고수 골퍼들을 쫓아가며 스트로크 플레이를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매치플레이를 하면 적당히 호흡을 조정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만의 골프를 즐길 수 있다. 매홀 긴장감 높은 퍼팅을 하지 않고 상대로부터 양보를 받을 수도 있다. 홀마다 일정한 내기를 걸고 하는 스킨스 게임도 일종의 매치플레이로 초보 골퍼들이 좋아하는 방식이다.
‘도미’라는 말은 유래상으로도 아주 재미있는 말이라는 생각이다. 더 이상 경기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이긴 자의 입장에서 진 상대를 기분 나쁘지 않게 배려해서 만든 말이 아닐 까 싶다. 골프에서 상대와의 실력 차이를 고려해가며 때로는 앞서 나가다가다가 뒤를 돌아보는 상황이 됐을 때 ‘도미’라는 말을 기억해보면 그 의미가 더 느껴질 법하다. 경기를 하다보면 잘 보이지 않던 상대의 모습을 찬찬히 보면서 서로를 위하는 미덕을 갖게되지 않을까 싶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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