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한 담원 게이밍은 16승2패라는 좋은 성과를 내면서 세트 득실 +29로, 2015년 서머에 SK텔레콤 T1이 세운 최다 세트 득실 기록과 타이를 이루면서 모든 지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15승3패로 정규 시즌 2위에 오른 DRX는 지난달 30일 열린 젠지 e스포츠와의 플레이오프 3라운드에서 1대2로 밀렸으나 4, 5세트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역전, 우승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다.
2019년 LCK에 승격한 담원 게이밍은 그 해 한국 대표 선발전을 통해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한 경험은 있지만 LCK 결승전은 한 번도 치러보지 못했기에 이번이 첫 결승전이다.
킹존 드래곤X의 명맥을 잇고 있는 DRX는 2017년 서머와 2018년 스프링에서 연달아 우승한 이래 다섯 시즌 만에 다시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김대호 감독과 '쵸비' 정지훈은 그리핀 시절인 2018년 서머부터 2019년 서머까지 세 번 연속 결승에 오른 바 있고 '도란' 최현준 또한 2019년 서머 결승에 주전으로 참가한 경험이 있다.
데일리e스포츠는 창단 이래 처음으로 LCK 우승에 도전하는 담원 게이밍과 2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리는 DRX의 결승전을 앞두고 포지션별 모스트 챔피언과 플레이 스타일을 분석했다.
◆톱 : 카밀의 황태자들
담원의 톱 라이너 '너구리' 장히권은 서머 정규 시즌에서 스타일 변신을 통해 많은 칭찬을 받은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스프링까지만 하더라도 과도하게 공격성을 드러내며 상대를 포탑 쪽으로 밀어붙이는 것에만 신경을 썼던 장하권은 뒤를 파고드는 상대의 플레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로 인해 장하권은 KDA가 가장 좋지 않은 톱 라이너로 꼽혔고 "'너구리'는 자꾸 죽는데 팀은 어찌어찌 이기네요"라는 묘한 코멘트를 자주 들어야 했다.
이번 서머 들어 장하권은 플레이 스타일을 완전히 바꿨다. 무력을 강조하기 보다는 안정성을 끌어 올리면서 변신을 시도한 것. 무작정 라인을 밀면서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TPO(때, 장소, 상황)에 맞게 플레이하면서 생존력을 끌어 올리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장하권을 노리는 전략을 들고 나온 상대팀은 공략 지점을 잃었고 이를 통해 담원은 다른 라인에서 이득을 챙기면서 손쉽게 경기를 풀어갔다.
장하권이 서머 시즌에 많이 사용한 챔피언은 제이스(8회), 카밀(7회), 레넥톤(6회)이다. 생존기가 없지만 라인전을 주도하기 좋은 제이스로는 승률 100%를 유지하고 몰락한 왕의 검을 들고 사이드 라인을 압박하는 능력이 좋은 레넥톤으로도 전승을 이어가고 있다. LCK에 첫 선을 보일 때부터 카밀을 잘 다뤘던 장하권은 이번 시즌 1패를 당하긴 했지만 85.7%의 승률을 기록했다.
DRX의 톱 라이너 '도란' 최현준은 장하권만큼이나 기복이 있는 선수다. 잘할 때에는 엄청난 플레이들을 보여주지만 한 번 죽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특히 DRX가 패할 때 패턴을 보면 최현준이 5데스 이상 당할 때가 많다. 특정 경기에서 몰아 죽을 때가 많아서 그런지 동료들의 KDA가 4를 넘어고 있지만 최현준은 2.8에 머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현준은 카밀, 케넨, 카르마로 이번 시즌 8할 이상의 승률을 올렸다. 카밀을 가장 많이 사용한 최현준은 7승2패로 준수한 성과를 냈고 시그니처 챔피언이라 할 수 있는 케넨으로는 5승1패를 기록했다. 특이한 점은 최현준이 카르마를 자주 플레이했다는 사실이다. 공격적인 챔피언을 선호하는 최현준은 톱 카르마를 통해 팀 플레이에 도움을 주면서 4승1패, 승률 80%를 달성했다. 이는 서포터인 '케리아' 류민석이 카르마로 2전 2패를 했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한다.
◆정글러 : 릴리아 놓고 신경전?
담원 게이밍의 '캐니언' 김건부와 DRX의 '표식' 홍창현은 정글러들 가운데 AP 챔피언을 잘 다루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대표적인 AP 챔피언인 니달리를 이번 시즌 자주 꺼냈고 최근에 출시된 릴리아 또한 거침 없이 사용하면서 전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김건부가 가장 많이 선택한 챔피언은 트런들이다. 라인 개입 과정에서 얼음 기둥으로 상대를 밀쳐내면서 킬을 자주 만들어낸 김건부는 완벽한 타이밍에 진압을 쓰면서 7승1패의 좋은 성과를 냈다.
정글러들 중에 AP 챔피언을 가장 잘 다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건부는 니달리를 7번 사용해 모두 승리했다. 프로 선수들은 대부분 창을 잘 피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김건부의 니달리가 쓴 창은 유도 미사일처럼 적중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홍창현은 리 신을 11번이나 꺼내면서 가장 많이 사용했고 승률은 72.7%이다. 그 다음으로 많이 쓴 챔피언이 니달리와 볼리베어로 5번씩, 선택했다. 니달리 승률은 80%이지만 볼리베어는 100%의 승률을 자랑하고 있다.
홍창현은 이 챔피언들보다는 최근에 출시된 릴리아를 자주 꺼내면서 재미를 보고 있다. LCK에서 릴리아를 가장 먼저 사용한 홍창현은 한화생명e스포츠와의 1, 2세트 모두 꺼내면서 모두 승리했다. 16일 설해원 프린스를 상대로 2대1로 이길 때 승리한 두 세트에서 릴리아를 가져간 홍창현은 장로 드래곤을 스틸하면서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포스트 시즌에서도 홍창현은 젠지 e스포츠와의 1, 5세트에서 각각 9개의 어시스트를 달성하면서 팀 승리에 기여했다.
김건부도 릴리아를 잘 다룬다. 정규 시즌에서 두 차례 릴리아를 가져간 김건부는 릴리아가 갖고 있는 특성을 잘 활용하면서 대규모 교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바 있다. 결승전에서는 릴리아를 서로 가져가기 위한 신경전으로 불꽃을 튀는 것을 넘어 불이 날 수도 있다.
◆미드 : 건곤일척 벌이는 두 천재
해설자들에게 이번 결승전에서 가장 기대되는 매치업을 물었을 때 모두 미드 라이너 대결을 펼칠 정도로 우승컵의 향배를 가릴 수 있는 대결이다.
자존심 대결이다. 담원의 '쇼메이커' 허수는 이번 서머에서 영 플레이어, 올 LCK 퍼스트팀, 정규 MVP까지 싹 쓸어 담으면서 3관왕을 차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허수의 최종 KDA는 무려 16에 달하고 펜타킬도 한 차례 만들어냈다. 정규 시즌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수가 가장 많이 다룬 챔피언은 10번 사용한 조이다. 허수의 조이는 쿨쿨방울 적중률이 매우 높다. 장애물을 만나면 사거리가 길어지는 쿨쿨방울의 특성을 활용해 벽 너머에서 맞혀 상대를 재운 뒤 통통별로 마무리하는 플레이가 일품이다. 두 번째 카드는 트위스티드 페이트다. 이번 서머 내내 대부분의 미드 라이너가 사용했던 트위스티드 페이트로 발 빠르게 합류하는 플레이도 자주 보여주면서 87.5%의 승률을 만들어냈다. 허수는 다른 선수들은 거의 꺼내지 않는 카사딘으로도 안정감 있는 플레이를 펼쳤고 펜타킬도 한 차례 달성하며 아이디처럼 '쇼'를 '메이크(만들어내다)'했다.
DRX의 미드 라이너 '쵸비' 정지훈도 허수에 뒤처지지 않는 실력을 발휘했다. 정규 시즌에서 맹활약을 펼치기도 했지만 팀이 결승전에 올라오는 과정에서 정지훈이 없었다면 젠지에게 완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정지훈의 활약은 결정적이었다. 젠지에게 1대2로 뒤처져 있던 4세트에서 에코를 꺼내든 정지훈은 라인전에서 압도적인 플레이를 보여준 것은 물론, 다른 라인에도 개입하면서 정글러의 역할까지 해냈다. 5세트에서 사일러스를 가져간 정지훈은 상대 팀의 궁극기를 빼앗아 적재적소에 활용하면서 교전 승리를 이끌어내는 등 팀이 승리한 세 세트에서 모두 MVP로 선정됐다.
정지훈은 허수와 달리 정규 시즌에서 아지르를 자주 꺼내들었다. 무려 10번이나 사용하면서도 승률 90%를 유지하면서 아지르의 장인으로 입지를 다졌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로는 5승3패를 기록하면서 허수에 다소 뒤처졌지만 세트를 4번 쓰면서 3승1패를 달성하며 다양한 챔피언을 활용할 줄 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고 멀티 포지션이 가능한 챔피언으로 밴픽 과정에서 상대팀을 흔들 수 있는 능력도 갖췄음을 보여줬다.
◆원거리 딜러 : 정반대의 성향
원거리 딜러 포지션을 맡고 있는 담원의 '고스트' 장용준과 DRX의 '데프트' 김혁규는 성격과 플레이 스타일이 정반대다. 장용준은 시도 때도 없이 아재 개그를 날릴 정도로 외향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경기 안에서는 보이지 않게 팀을 도와주는 스타일이다. DRX의 맏형인 김혁규는 조용한 리더십이라고 불릴 정도로 말수가 적지만 경기에서는 화력 담당으로 상대가 빈틈만 보이면 과감하게 공격을 펼치면서 킬을 따내는 불 같은 스타일을 갖고 있다.
경기 안에서 보여주는 상반된 스타일은 모스트 챔피언에서도 드러난다. 장용준과 김혁규 모두 이즈리얼을 각각 11번씩 사용하면서 가장 맣이 썼지만 두 번째 챔피언부터 선택이 달라진다. 장용준은 이즈리얼만큼이나 세나를 많이 썼다. 시즌 초반 단식 메타를 활용해 마오카이, 오공, 판테온 등을 키워주는 서포터 역할을 맡았다.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다양한 챔피언을 잘 다루는 '베릴' 조건희의 장점을 살리는 플레이 스타일을 선보인 것. 애쉬로 플레이할 때에도 장용준은 화력 담당을 맡기도 하지만 매날리기를 통해 상대 정글러의 동선을 파악함으로서 '캐니언' 김건부의 활동 범위를 넓혀주는 역할을 해냈다.
김혁규는 아펠리오스와 칼리스타를 6번씩 사용했다. 시즌 초반 1티어 원거리 딜러 3대장으로 꼽혔던 아펠리오스를 자주 택한 김혁규는 3승3패에 머물렀고 시즌 후반 3대장 중에 하나인 칼리스타로는 2승4패에 그쳤다. 최근 들어 김혁규는 애쉬와 세나를 자주 사용하면서 스타일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젠지와의 플레이오프 3라운드에서 세나를 세 번 꺼내 1승2패를 기록했고 애쉬로는 1승을 따낸 바 있다.
플레이오프 3라운드에서 나타난 것처럼 원거리 딜러 챔피언 가운데 막강 화력을 뽐내고 있는 케이틀린과 스왑이 가능한 루시안이 금지될 가능성이 높기에 장용준과 김혁규 모두 세나와 애쉬로 플레이할 공산이 크다. 최근 들어 서포터가 아닌 메인 딜러로 활약하고 있는 세나를 누가 더 잘 다루느냐에 따라 하단 구도가 결정될 수도 있다.
◆서포터 : '재능러'들의 향연
서포터는 무색, 무미, 무취한 경우가 많고 경기 안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담원의 '베릴' 조건희와 DRX의 '케리아' 류민석은 개인이 갖고 있는 재능을 뽐낼 줄 아는 선수들이다.
조건희는 이번 시즌 서포터의 새로운 메타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반부터 마오카이, 오공, 판테온 등을 들고 나와 장용준의 세나와 함께 사용하면서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애쉬와도 판테온이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애쉬-판테온 조합의 창시자 역할을 해냈다. 실제로 조건희는 서머 시즌 판테온을 9번이나 사용하면서 8승1패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조건희의 판테온은 초반에 정글러처럼 활용된다. 하단 라인전에서 상대를 밀어 놓은 뒤 중단으로 이동해 허수와 호흡을 맞춰 상대팀 미드 라이너를 잡아내거나 소환사 주문을 빼놓는 플레이를 펼친다. 이 때 팀 동료인 정글러 김건부는 상단으로 이동해 비슷한 역할을 해주면서 라이너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조건희가 판테온을 가져갈 때면 정글러와 서포터를 합친 '정포터'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팀 승률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판테온 이외에도 조건희는 바드와 레오나로 71%, 86%의 승률을 유지했다.
류민석은 자신의 롤모델인 '마타' 조세형의 전성기를 재현하고 있다. 과거 조세형이 해설자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나타나면서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처럼 류민석은 상대 동선을 예측하고 받아치는 플레이가 일품이다. 상대가 포탑 다이브를 시도할 때 포탑 뒤로 몸을 숨기면서 스킬을 적중시켜 반격하는 모습을 서머 내내 보여줬다.
스플링에 17개의 챔피언을 선보였던 류민석은 서머에서는 3개가 늘어난 20개의 챔피언을 쓰면서 이번 시즌 가장 많은 챔피언을 선보인 선수로 기록됐다. 유미로 6승1패, 바드로 5승, 브라움으로 4승1패를 가져가면서 모스트 챔피언 라인업을 구축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류민석이 판테온을 두 번 사용하면서 모두 패했다는 점이다. 조건희에게는 판테온이 모스트 챔피언이지만 류민석에게는 워스트 챔피언인 셈이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그래픽 자료=QWER.GG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