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데뷰 홈런은 정체불명의 일본식 야구 용어이다. 프랑스어의 멋진 발음과 낭만적인 의미를 가진 랑데뷰라는 말을 홈런이라는 영어말과 붙여서 사용했다. 아마도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원래 랑데뷰 홈런의 영어 말은 ‘백투백(Back To Back) 홈런’이다. 백투백이라는 말은 ‘등을 맞댄 상태’라는 뜻이다. 따라서 백투백 홈런은 등을 맞댄 것처럼 연속으로 홈런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랑데뷰 홈런이라는 말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 개혁에 성공한 일본 지식인들은 체제 시스템이 다른 서구의 언어를 일본어로 번역하는데 많은 애를 먹었다. 사회적 의미가 전혀 없는 말을 옮기는 것도 그랬고, 원어 발음대로 하기도 어려웠다. 백투백 홈런의 경우 일본인들이 발음을 하려면 ‘밧쿠츠우밧쿠 호오무란’이라고 해야한다. 발음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본토 발음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대신 만들어진 것이 랑데부 홈런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일본인들은 프랑스어에 대해 상당히 고급 언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영어 단어 속에서 고급 프랑스어 계통 단어들이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궁정(cour→court), 왕관(couronne→crown), 회의(conseil→council) 등이 그런 사례다. 랑데뷰 라는 단어를 백투백을 대신해 사용한 것도 그 말 자체가 발음하기도 쉽고 비교적 영어 원뜻에 가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어에는 없는 국적 불명의 말을 일본식 외래어로 탄생시켰던 것이다. ‘Baseball’를 들에서 노는 볼놀이라는 의미의 ‘야구(野球)’라는 말로 대체한 일본인들이었으니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다. (본 코너 3회차 '‘야구(野球)’는 낭만적인 문학적 표현이다' 참조)
우리나라의 일상 용어들 가운데 이미 정착돼 대체하기 힘든 일본어들이 수두룩하다. 자유, 권리, 과학 등은 일상적으로 자리잡아 바뀌기가 사실상 어렵다. 일제 강점기의 영향이 얼마나 뿌리깊게 자리잡았는가를 언어 생활에서 뼈저리게 느낀다. 하지만 최근 랑데뷰 홈런이 백투백 홈런으로 바뀌는 것처럼 야구 용어 표기가 원어대로 바뀌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백투백 홈런은 직접 발생한 홈런 상황을 잘 표현한 말이다. 나란히 홈런을 쳤으니 마치 등을 댄 것과 같은 비유이다. 랑데뷰라는 말은 고급 프랑스 발음과 의미적인 호사를 누리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정확한 뜻을 전달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백투백 홈런은 메이저리그와 KBO리그에서도 자주 나온다. 2연속 홈런은 물론, 3연속, 4연속 홈런 기록도 있다. 4연속 홈런이 양대 리그에서 그동안 홈런 연속 최고기록으로 집계됐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지난 8월17일 시카고 화이트 삭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경기 5회말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요안 몬카다, 야스마니 그랜달, 호세 아브레우, 엘로이 히메네스 등 4타자가 연속으로 홈런을 터뜨렸다. KBO리그에선 2001년 8월17일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 경기 3회말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 레니 마르티네즈, 카를로스 바에르가, 마해영이 4연속 홈런포를 작렬했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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