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선배 야구기자 이종남씨가 번역한 미국의 이름난 스포츠칼럼니스트 레너드 코페트(1925-2003)의 ‘야구란 무엇인가(The New Thinking Fan’s Guide To Baseball)’에 소개된 미국 야구계의 속설이다. 야구에서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는 짧은 거리의 단타를 치는 타자보다 홈런을 치는 타자들이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선 홈런타자들이 타자들 가운데 고액 연봉을 받는다. 2013년 추신수가 7년간 1억3천만달러(약 1546억원)을 받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을 했던 것은 홈런 타자라는 것을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에야 워낙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많아 ‘캐딜락을 몬다’는 얘기는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홈런 타자들이 캐딜락을 갖고 있으면 성공의 상징처럼 통했다.
홈런 타자는 영어로 ‘Home Run Slugger’라고 말한다. 보통 홈런 타자는 ‘Home Run Hitter’라고 하는데, 특히 홈런을 잘 치는 타자를 말할 때 ‘홈런 슬러거’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일본인들은 홈런 타자를 ‘Home Run Batter’라고 쓰고 ‘호므랑 밧타아’라고 읽는다. 우리도 한 때 일본식 조어를 쓰기도 했는데 현재는 홈런 타자라고 대부분 말한다.
‘Home Run Slugger’는 홈런과 슬러거라는 두 단어가 합성된 말이다. 캠브리지 영어사전에 따르면 슬러거는 ‘볼을 세게 때리는 선수’라고 정의한다. 슬러거는 세게 때린다는 뜻의 동사형 ‘Slug’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어 ‘-er’이 붙어 생긴 단어이다. 슬러거는 ‘히터’보다 더 강한 의미를 뜻하는 말로 보통 쓴다. 주로 홈런 타자에게 붙여서 사용한다. 미국에선 홈런 슬러거라는 두 단어를 쓰지 않고 슬러거라는 한 단어로 된 말로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 체육사전에 슬러거는 야구의 장타자로 설명하고 있다. 또 복싱에서 테크닉이 부족하고 주로 힘에 의존한 선수를 말하기도 한다.
슬러거라는 말은 홈런 타자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선수들에게 많이 붙여 사용했다. 메이저리그에선 베이브 루스, 조 디마지오, 행크 에런, 마이크 슈미트, 레지 잭슨 등 홈런에 일가견이 있는 전설적인 타자를 지칭할 때 사용했다. 최근에는 배리 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 홈런에 일가견이 있는 타자들에게도 슬러거라는 말을 붙였다. 지난 8월말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타점 부문에서 단독 2위로 올라선 앨버트 푸홀스(40·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기사를 전하면서 미국 언론들은 그의 이름 앞에 슬러거라고 소개했다. 개인 통산 2천87번째 타점을 수확한 푸홀스는 공동 2위로 어깨를 나란히 한 알렉스 로드리게스(은퇴·2천86타점)를 3위로 밀어내고 이 부문 단독 2위가 됐다. 그는 홈런 1개를 보태면 660개를 채워 윌리 메이스와 더불어 통산 홈런 공동 5위로 올라선다. 이 부문 1위는 762개를 친 배리 본즈다. 역대 빅리그 타자 중 홈런과 2루타를 각각 650개 이상 친 선수는 푸홀스뿐이다.
우리나라 야구에선 슬러거를 보통 거포라고 말한다. 전설적인 홈런 타자 박현식, 김응룡, 이만수를 비롯 이승엽, 양준혁 등은 거포로 화려한 명성을 날렸다. ‘국민 타자’로 불리기도 했던 이승엽은 한 시즌 56개의 홈런을 터뜨려 종전 아시아 최고 기록인 55개를 넘어서며 아시아 최고의 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일본에선 왕정치, 장훈 등이 최고의 홈런 타자로 이름을 올렸다. 왕정치는 1960-70년대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홈런 타자로 통산 866개의 홈런을 때려 이 부분 세계 최고기록을 갖고 있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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