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경기와 시합이라는 말은 둘 다 일본어로 쓰인다. 중국 한자어로는 시합이라는 단어는 없고 경기라는 말만 있다. 경기라는 말은 한자문화권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쓰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보니 ‘경기’라는 단어는 순종 7년, 1914년 ‘엽우경기대회(獵友競技大會)에 상금 50원을 내렸다’는 문장에서 딱 1번 나오고 서로 겨룬다는 의미의 시합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경기라는 말도 일본 강점기 시절에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선배가 시합이라는 말을 기피했던 것은 시합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어로만 사용됐던 것을 우리가 그대로 베껴쓰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의미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기와 시합 두 단어는 이미 외래어로 우리 말로 정착된 지 오래됐다. 국어사전에는 경기나 시합이나 같은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기술의 낫고 못함을 서로 겨루는 일, 운동이나 무예 등의 기술, 능력을 겨루어 승부를 가리는 일로 풀이해 놓았다. 경기라는 말에서 ‘경(競)’은 설 립(立)자와 맏 형(兄)자가 결합한 모습으로 서로 겨룬다는 의미이다. 기술을 서로 겨룬다는 말이 경기의 의미이다. 시합의 ‘시(試)’는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부수와 음(音)을 나타내는 식(式)이 합쳐진 말로 시험을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경기나 시합이나 한자어로도 비슷한 의미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기와 시합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매치(Match)’, ‘이벤트(Event)’, ‘컴피티션(Competition)’, ‘게임(Game)’ 등 여러 말로 쓴다. 야구는 영어말로는 ‘베이스볼 게임(Baseball Game)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위키피디아 등 용어 사전에서 야구는 “배트 앤 볼 게임(Bat and Ball Game)’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야구를 게임으로 말한 것은 한가롭게 야외에서 공을 갖고 즐기는 운동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게임은 순수하게 즐거움을 위해 행하며 성취나 보상을 받는 신체적 활동이다. 체육학에서 정의하는 게임은 목표와 규칙을 정하며 참가자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운동이다. 게임은 육체적, 정신적 자극을 수반하며 교육적, 심리적 발달에 도움을 주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설명한다. 기원전 2600년전부터 인간들은 게임을 즐겨 온 것으로 알려졌다.
‘논리철학논고’, ‘철학적 탐구’와 같은 주요 저서를 통해 영미 언어분석 철학의 기초를 닦은 오스트리아 출생의 영국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게임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최초로 한 철학가로 평가받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게임에는 놀이, 규칙, 경쟁과 같은 요소들이 있지만 이것으로 게임이라는 말을 적절하게 규정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비트겐슈타인은 게임은 이질적인 인간 활동의 범위에 두루 적용할 수 있는 용어라고 정의했다. 현대철학자 버나드 슈트(1925-2007)이 “게임이란 특정 규칙에 의해 허용된 수단만 사용하여 특정 상태를 가져오도록 지시된 활동”이라고 규정을 한 것이 현대적 해석에 맞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볼 때 야구는 다른 어느 종목보다 게임이라는 특성에 잘 부합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장을 공원을 뜻하는 파크(Park)라고 부르고, 관중들은 마치 소풍을 가듯 경기장을 찾는다. 선수들은 심판이 ‘플레이 볼(Play Ball)’이라는 경기 시작 선언과 함께 공을 갖고 논다. 야구가 게임으로 불릴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서양의 게임이라는 단어를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로 인해 그 뜻까지 살려 번역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