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공식적인 대통령의 프로야구 첫 시구를 알리는 순간을 기록한 전 워싱턴 새너터스 투수출신 월터 존슨(1887-1946)의 자서전 내용 일부이다. 1910년 메이저리그 오픈 이벤트로 워싱턴 그리피스 스타디움 관중석에서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이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 역사적인 첫 메이저리그 시구를 했던 장면을 생생하게 알렸다.
시구의 영어말은 ‘First Pitch’이다. 때로는 ‘First Ball’이라고도 말한다. 야구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로 시범적으로 공을 던지는 것이다. 먼저라는 의미의 퍼스트와 던진다는 뜻의 피치나 볼을 합성한 이 말은 경기 시작을 뜻하는 전통적인 야구 의식이다. 오늘날 시구는 투수 마운드에서 던지지만 오랫동안 관중석에서 행해졌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투수 마운드에서 첫 시구를 한 것은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로 볼티모어 오리올스 경기에서였다. 역대 미국 대통령은 모두 프로야구 시즌 오픈 경기에서 시구를 했는데, 지미 카터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만 대통령 자격으로 시구를 하지 않은 2명으로 기록돼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아닌 사업가로 2006년 메이저리그 시구를 한 적은 있었다. 올해 메이저리그는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인해 4개월 가까이 지연된 뒤 지난 7월 23일 미국 국립 알레르기 및 전염병 연구소 소장인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 워싱턴 내셔널스 시즌 개막전에서 원정팀 뉴욕 양키스를 시구를 했다.
미국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에서 대통령 및 유명인사들이 하는 시구의 전통이 시작된 것은 18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구자는 시장, 주지사 또는 다른 지역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후에 미국 대통령이 됐던 윌리엄 맥킨리 오하이오 주지사는 1892년 톨레도와 콜럼버스의 프로야구 개막전에 시구를 한 것으로 공식적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볼을 다이아몬드 안으로 던졌다”는 표현이 남아있는 것으로 봐서 ‘퍼스트 피치’, 혹은 ‘퍼스트 볼’은 이후 생긴 것으로 보인다.
시구라는 번역어는 일본에서 처음 사용했다. 시구(始球)라는 한자어는 첫 공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에서 최초의 야구 시구자는 오쿠마 시게노부 전 총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와세다 대학 창립자이기도 한 그는 1908년 고시엔에서 와세대대학팀과 메이저리그 선발팀과의 친선경기에 와세대 총장 자격으로 시구를 했다. 오쿠마는 일본 제2대 총리를 맡은 바 있어 국가 지도자급으로 야구 시구를 한 것은 일본이 공식적으로는 1910년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이 시구를 한 미국보다 2년 빨랐다.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3월27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MBC 청룡과 삼성 라이언즈의 개막적 시구로 역사적인 막을 올렸다. 군부쿠데타로 정권의 기반을 마련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민의 관심을 사기위해 프로야구를 탄생시켰으며, 첫 시구를 직접 던졌다.
의례적인 시구는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한다, 경기 시작전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마운드 올라 홈플레이트 쪽으로 공을 던진다. 공은 종종 심하게 빗나가거나 홈플레이트에 맞기도 한다. 시구자들도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이 맡았던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연예인, 군인, 전 소속 선수, 팀을 후원하는 회사의 임원, 또는 일반인까지 시구자로 선정된다.
프로야구인들이 가장 인상 깊은 시구자로 꼽는 것은 2001년 4월5일 잠실 개막전 때의 애덤 킹(한국 이름 오인호)이었다. 킹은 뼈가 굳고 다리가 썩는 선천적 중증장애를 갖고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고 미국으로 입양된 아홉살 소년이었다. 당시 티타늄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마운드에 선 뒤 씩씩하게 공을 뿌려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미국, 일본, 한국에서 시구는 야구를 대중화 시키는데 기여했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당분간 무관중 경기로 치러지는 프로야구에서 시구를 보지 못해 팬들은 안타까움 마음이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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