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모습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뉴욕타임스 야구 칼럼니스트였던 조지 벡시는 ‘야구의 역사(Baseball: A History of America’s Favorite Games, 2008년)‘에서 초창기 심판의 모습을 표현했다. “심판들은 모자와 연미복으로 단정하게 갖추고 3루 근처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고 설명했다. 주심이 부상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 가슴 보호대, 다리 보호대, 신발 등으로 중무장한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야구에서 심판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Umpire’이다. 웹스터 영어사전에 따르면 이 단어는 중세 영어 ‘Nompeer’에서 파생된 것으로 ‘두 사람 사이의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의뢰받은 자’라는 뜻이다. 어원은 중세 프랑스어 '제 3자'를 의미하는 ‘Nomper’에 뿌리를 두고 있다. ‘Nomper’은 아니다(Not)는 의미의 ‘Non’과 같다(Even)는 뜻인 ‘(Per)’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말이다. 이 말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중재를 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됐다.
엄파이어는 야구, 탁구 등에서 판정을 내리는 심판을 말한다. 배구, 농구 등에서는 ‘레프리(Referee)’라고 부른다. 엄파이어를 한자어 ‘심판(審判)’으로 번역한 것은 일본이 미국 야구를 받아들이면서였다. 살필 '심(審)과 판단할 '판(判)'이 합쳐진 심판은 운동경기에서 심판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니 심판이라는 단어는 1880년 고종이후에 13번 등장한다. 이는 심판이라는 말이 일본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임을 유추하게 한다.
야구에서 심판은 보통 5인 1개조로 운영한다. 4명이 경기에 투입되고, 1명은 경기 중 심판의 부상 등에 대비해 대기한다. 구심으로 불리기도 하는 주심은 심판 중 책임자로 경기장 질서 유지와 경기 진행을 총괄한다. 포수석 뒷자리에서 경기의 개시와 종료, 일시 중지와 속개를 결정한다. 경기 중에는 투구가 스트라이크인가 볼인가, 타구가 페어인가 파울인가, 득점주자가 세이프인가 아웃인가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누심은 1,2,3루의 베이스를 맡아 주자가 아웃인가 세이프인가를 판정한다. 또 1,3루심은 타구가 페어인가 파울인가를 판정한다. 프로야구서는 야구 경기 때는 선심도 운영을 하는데 왼쪽과 오른쪽 외야 파울라인에서 홈런성 플라이 타구까지 포함해서 타구가 페어인가 파울인가를 판정한다.
미국의 저명한 야구 저술가 레너드 코페트는 자신의 대표적인 야구책 ‘야구란 무엇인가(The New Thinking Fan’s Guide To Baseball)’에서 심판원에 대한 장을 다루면서 심판을 ‘악당’에 비유했다. 야구장에서 심판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면서도 불리한 판정을 받는 이들에게는 좋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쪽 팀으로 치우쳐 있는 팬들은 심판이 잘못 판정한다고 생각하면 온갖 야유와 욕설을 퍼부으며 저주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며 선수들은 판정에 불만을 품고 항의를 하기도 한다. 벤치에 있던 감독들은 심판에게 달려가 거친 말을 쏟아내며 가까이서 노려보며 대치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프로야구는 우승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돈이 오고가는 ‘머니 게임’이다. 심판들은 화려한 선수들보다 월등히 적은 돈을 받으며 푸대접까지 받기도 하지만 이들의 판정에 따라 프로야구는 울고 웃는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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