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차가운 사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입시와 입사를 위해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이력서를 작성하다 보면 학창 시절 반짝이며 꿈도 많았던 자신을 설명할 공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력서엔 학점, 자격증, 대외활동 및 공모전 같은 자기 개발의 결과물을 압축해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게임과 게이머에 대한 인식이 e스포츠로 인해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e스포츠의 미래 직업과 그 전망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e스포츠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들은 e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곧 미래 직업과 연결될 것이라 확신하며 e스포츠 시장으로 점점 몰려들고 있다. e스포츠를 좋아하면 e스포츠 일을 할 수 있을까?
국내외에서 e스포츠 고등학교와 e스포츠 전공 대학이 신설되면서 게임을 좋아하니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e스포츠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e스포츠 프로 선수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e스포츠 전문가들이 주목을 받기 때문이다.
e스포츠 산업 시장에는 어떤 전문 직업들이 있을까. 현장과 유사 업무 위주로 분류를 해보면 우선 경기를 이끄는 그룹을 꼽을 수 있다. 프로 게이머를 중심으로 코치, 감독 같은 코칭 스태프, 매니저 등이 있으며 상위 직업으로 게임단주도 있다. 경기 및 선수에 대한 정보만 전문적으로 분석하며 코치를 도와 경기 전략을 준비하는 e스포츠 분석가라는 직업도 주목받고 있다.
e스포츠 매니저라는 직업은 맡은 업무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 선수의 재능을 발굴하며 계약부터 훈련과 대회 참가, 숙소와 장거리 이동, 건강 상태 등을 담당하는 팀 매니저가 있고 경기 티켓 판촉부터 협찬·후원, 팬 미팅 등 경기 외 선수 경영 업무를 하는 세일 또는 파트너십 매니저가 있다. 게임광고, 팀/선수 PR, PPL 등 부가 수익을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 활동을 전담해 운영하는 소셜 미디어 매니저가 있다.
둘째, 팀과 대중을 연결시키는 직업군이 있는데 이는 전통 스포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는 미디어 그룹이라 할 수 있다. 경기 캐스터와 진행자, 해설자, 통역가, 중계 카메라맨, 방송 엔지니어, 옵저버, 콘텐츠 크리에이터, 기자 등의 직업이다.
영국 e스포츠 협회에 따르면 e스포츠 캐스터는 경기 자체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는 캐스터와 경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가며 주목할 만한 장면 위주로 중계하는 캐스터가 구분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e스포츠는 종목 특성상 경기 상황을 동시에 설명할 수없기 때문에 생중계 화면을 순간마다 결정하는-전통 스포츠에는 없는-옵저버라는 직업도 필요하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경우도 e스포츠 콘텐츠가 TV, 라디오 등 레거시 미디어보다는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중계하는 경우가 많고 온라인 접속을 통해 경기 콘텐츠를 즐기는 팬과 이용자가 많다 보니 다양한 파생 콘텐츠를 생산하는 유튜버, 스트리머, BJ 같은 미디어 콘텐츠 제작자들이 선호하는 직업으로 꼽히고 있다.
셋째, e스포츠 경기 운영그룹이 있다. e스포츠는 스포츠와 유사한 형식의 온라인 비디오 게임으로 전통 스포츠 대회처럼 경기를 운영할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즉 심판, 경기 관리자들은 선수들이 정정당당하게 기량을 겨룰 수 있도록 원칙을 적용하고 선수들의 재활과 복지 등 관련 행정 업무를 지원한다.
게임단은 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e스포츠 마케팅, 판촉, 프로모션, PR, 광고, 협찬·후원 업무를 담당할 전문가들과 e스포츠 경영에 관한 법률과 재무회계 자문을 해줄 수 있는 변호사, 회계사들을 고용한다.
선수 개인 또는 클럽을 대신해서 연봉을 협상하고 광고 출연 등 각종 계약을 처리하는 에이전트도 있다. e스포츠는 리그가 종료된 11월~12월이 스토브리그로 에이전트는 선수, 코치들의 재계약, 신규영입, 해임, 방출, 트레이드, FA 제도 등 업무로 성수기를 보낸다.
그 밖에도 e스포츠 직업군에는 중앙과 지역의 e스포츠 관련 업무를 하는 협·단체의 직원과 다양한 전공을 가진 e스포츠 교육자와 연구자가 있다.
지금까지 소개된 e스포츠의 직업에서 볼 수 있듯이 e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e스포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e스포츠를 좋아하기 때문에 발견한 자신의 잠재적 재능과 사고를 넓히려는 자기 계발을 부지런히 해온 사람들에겐 e스포츠 산업이 보여주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주인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현재 국내엔 e스포츠 맞춤형 인재 양성과 교육을 전담하는 곳이 많지 않다. 또한 e스포츠 인재를 채용하는 산업 현장은 전문가를 원하면서도 다방면의 지식과 경험을 갖춘-소위 올라운더라고 표현되는-팔방미인을 원한다. 실제 e스포츠 선수는 훈련과 시합뿐만 아니라 소셜 미디어, 1인 방송, 온라인 소통 같은 셀프 PR도 할줄 알아야 하며 코칭 스태프들이 매니저의 다양한 역할과 분석가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경우도 많다. e스포츠에선 기존 직업이 가지고 있던 경계가 의미 없는 듯하다.
갈수록 다재다능한 인재를 원하는 사회가 바람직한지 고민해봐야 한다. 하지만 게임·스포츠·미디어·ICT 가 융합되어 성장하는 e스포츠의 학문적 방향성을 고려할 때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가 남긴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는 말은 e스포츠 직업인들에게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e스포츠 전문가는 무엇을 깊게 파야 하는가. 또한 어디까지 넓게 파야 하는가. 21세기는 한 분야만 깊게 파면 최고가 될 수가 없다고들 한다. 넓게 파야 깊게 파야 할 곳을 알 수 있고 깊게 파야 다른 사람이 파고 있는 그 곳과 만나 내 영역을 더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과 직업이 엄격히 구분됐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만들어내는 젊은 미래 인재들의 전성기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 기고는 데일리e스포츠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