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메츠는 1962년 창단했다. 1958년 뉴욕 자이언츠와 브룩클린 다저스가 각각 샌프란시스코와 LA로 연고지를 옮겨가면서 뉴욕에는 아메리칸리그의 양키스 한 팀만이 남았다. 미국의 중심도시이자 야구 발상지이기도 한 뉴욕에 아메리칸리그보다 역사가 더 오래된 내셔널리그 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뉴욕 시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뉴욕의 돈 많은 사업가들과 야구팬들은 양키스를 대적할 팀이 탄생하기를 원했다. 팀 창단을 주도헀던 변호사 윌리엄 셰이와 메이저리그측은 내셔널리그에 신생팀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팀이름은 1880년부터 1887년까지 존재했던 뉴욕 메트로폴리탄 야구 클럽의 이름을 따 지었다. 뉴욕 야구의 연속성을 이어 나간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언론들은 메트로폴리탄이라는 긴 명칭 대신 메츠로 줄인 말을 야구기사 헤드라인으로 많이 사용했다.
메츠는 1969년, 1986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팀으로 5번이나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이는 확장팀 계획으로 생긴 신생팀 가운데 가장 많은 월드시리즈 출전 기록이다.
메츠는 뉴욕 라이벌 양키스와 ‘지하철 시리즈’로도 유명하다. 지하철시리즈는 뉴욕을 연고로 한 두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겨루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1921년 뉴욕 양키스와 뉴욕 자이언츠가 월드시리즈에서 만나면서 시작됐다. 당시 양키스타디움에서 자이언츠의 홈구장 폴로그라운드까지 지하철로 이동이 가능, 관중들이 지하철을 타고다니면서 관전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양키스와 브룩클린 다저스, 뉴욕 자이언츠 등 뉴욕을 연고지로 하는 팀들이 월드시리즈에서 맞붙는 지하철 시리즈는 1960년대 이전 모두 13번 치러졌으며 양키스가 10번을 우승했다. 1956년 양키스와 브룩클린 다저스의 월드 시리즈 이후로는 44년 동안 지하철 시리즈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0년 뉴욕 메츠와 뉴욕 양키스가 14번째 지하철 시리즈를 벌였으며, 뉴욕 양키스가 뉴욕 메츠를 4승 1패로 꺾고 월드시리즈를 제패했다.
뉴욕 메츠에서 역대 가장 유명한 선수는 투수 톰 시버이다. 올 8월 75세의 나이로 타계한 시버는 1969년 월드시리즈에서 메츠 우승의 주역이었다. 시버는 1967년 내셔널리그(NL) 신인상을 수상했고, 리그 최우수 투수로 NL 사이영상을 3차례 수상했다. 그는 12번 올스타에 선정됐으며 메츠 투수 가운데 역대 승수 1위에 올랐다. MLB 시절 311승, 삼진 3640개, 셧아웃 61개, 평균자책점 2.86을 기록했고 1978년 노히트 노런을 세웠다.
시버는 1977년 ‘야간 학살’로 기억되는 트레이드로 신시내티 레즈로 옮겨 갔으며 이후 메츠는 몇 년 동안 꼴찌로 떨어졌다. 1980년대 중반 강타자 데릴 스트로베리와 사이영상 수상자 드와이트 구든이 합류하면서 1986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시버는 1992년 당시 가장 높은 투표율로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시버는 마이크 피아자와 함께 명예의 전당 내 명패에 뉴욕 메츠 모자를 쓰고 있는 두 선수 중 한 명이다. 시버가 달았던 41번은 1988년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으며 뉴욕시는 2019년 메츠 홈구장인 씨티필드의 주소를 시버웨이 41번지로 명명했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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