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2003년 출간하자마자 뉴욕 타임즈 베스트 셀러 목록에 18주 연속 올라 2위를 차지했다. 2011년 컬럼비아 픽처스는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발표했는데, 이 영화에는 빈 단장 역을 브래드 피트가 맡았다. 2011년 9월 19일 연고지인 오클랜드의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열린 미국 머니볼 시사회에서는 전통적인 레드 카펫이 아닌 야구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린 카펫이 선보였다.
빈 단장은 원래 야구선수 출신이었다. 해군 장교출신인 아버지로부터 야구를 배운 그는 샌디에이고 마운틴 카멜 고교 시절 5할대 타율을 치던 뛰어난 선수였다. 야구 뿐 아니라 미식축구, 농구도 잘 했다. 1980년 뉴욕 메츠로부터 전체 1순위로 지명받은 대릴 스트로베리에 못지않은 평가를 스카우트로부터 받으며 최고의 스타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팀 내부에서 힘든 경쟁을 이겨내지 못했다. 1984년부터 1989년까지 외야수로 뉴욕 메츠, 미네소타 트윈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전전하다가 27세 나이로 은퇴했다. 1990년 오클랜드에서 스카우트로 프런트생활을 시작했다.
마이너리그 선수의 생활방식에 지쳤던 빈은 1990년 4월 스카우트로 마이너리그 캠프에 배치된 지 하루 만에 애슬레틱스 단장 샌디 앨더슨에게 접근했다. 빈은 단장을 보좌하며 마이너리그 선수 스카우트를 맡았다. 당시 애슬레틱스는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월드시리즈 3회 연속 진출했던 최강의 팀으로 선수 연봉도 MLB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구단주 월터 A 하스가 죽고 새로운 구단주 체제가 되면서 선수 연봉을 대폭 삭감하라는 지시가 앨더슨 단장 등에게 떨어졌다. 제한된 예산으로 경쟁력 있는 선수단을 꾸리기 위해 앨더슨 단장은 저평가된 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는 세이버메트릭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타자들 사이에서 출루율을 중시했다. 앨더슨은 빈에게 다른 팀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가치를 찾도록 했다. 빈은 1997년 10월 17일 앨더슨의 뒤를 이어 단장이 됐다. 그는 앨더슨의 애슬레틱스를 야구에서 가장 비용 효율적인 팀 중 하나로 발전시켰다. 2006년 MLB 시즌에서 애슬레틱스는 30개 메이저 리그 팀 중 선수 총 연봉이 24위를 했지만 정규 시즌 성적은 5위를 했다.
야구선수와 오랜 스카우트 경험을 한 빈 단장은 프로야구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고 경쟁력있는 팀 구조를 갖추기 위해 불필요한 요소들을 털어버리고 최소한의 것만을 남겨두는 방법으로 팀을 개편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직원을 두고 득점으로 연결될 수 있는 출루률 등 선수들의 개별 기술을 평가하고 철저히 가격을 매기는 방법이었다.
애슬레틱스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2002년 애슬레틱스는 아메리칸리그 야구 100년 역사상 처음으로 20연승을 거둔 팀이 됐다. 2006년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꺾고 빈 단장 취임이후 첫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빈은 '머니볼'에서 "오래 전 주식을 살 때 감각으로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데이터를 연구하고 분석한다"는 말을 남겼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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