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희생이라는 영어 말 ‘Sacrifice’는 고대 프랑스어 Sacrifice와 라틴어 Sacrificium에서 유래했다. 신성하다는 의미의 ‘Sacer’와 실행하다는 뜻의 ‘Facio’의 합성어라고 한다. 성스러운 목적을 위해 행한다는 뜻이다. 한자어로 ‘희생(犧牲)’은 천지종묘 제사 때 제물로 바치는 산 짐승을 일컫는 말이다. ‘희(犧)’는 순수한 것, ‘생(牲)’은 길함을 얻지 못해 죽이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위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등을 바치거나 버리는 행위를 뜻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희생이라는 단어를 찾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535회나 나온다. 희생이라는 말은 한자 문화권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간의 덕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많이 쓰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희생과 관련한 고사성어로는 선공후사(先公後私), 멸사봉공(滅私奉公), 견위치명(見危致命)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모두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야구에서 희생이라는 개념을 공식적으로 도입한 것은 1900년대 초반이었다. 미국 프로야구(MLB)에서 1900년부터 1920년까지를 ‘죽은 볼 시기(The Dead Ball)’라고 말한다. 사이영, 크리스티 매튜슨, 월터 존슨과 같은 강력한 투수들이 지배했던 시기였다. 점수가 거의 나지 않아 이 시기를 죽은 볼 시기라고 불렀다. 타이 콥 등 전설적인 스타들이 활동하던 이 시기에 위력적인 투수들 때문에 홈런은 별로 없고, 스피드와 베이스 운영 등으로 점수를 올렸다. 전형적인 ‘투고 타저’시대였던 것이다.
MLB는 득점을 늘리기 위해 1908년 희생 플라이(Fly) 규정을 채택했다. 희생 플라이는 공격팀이 노아웃이나 원아웃인 상황에서 타자가 공을 의도적으로 멀리 쳐서 3루 주자가 득점을 하는 것을 이른다. 타자가 공을 외야로 보내면 3루 주자는 상대 팀 수비수가 공을 잡은 동시에 홈으로 들어와 득점을 하게 된다. 득점을 성공했을 경우 타자는 아웃되지만 타점으로 기록하고 타수에서도 제외되며 타율에 반영하지 않는다. 희생 플라이제도는 폐지와 복구를 거듭하다가 1954년부터는 계속 유지하고 있다.
희생 플라이와 함께 희생 번트(Bunt)라는 규정도 있다. 번트는 일부러 공을 짧게 치는 것을 말하는데 희생번트는 노아웃이나 원아웃에서, 주자가 베이스에 있을 때 주자를 다음 베이스로 진루시키기 위해 타자가 자신을 희생하며 번트를 댄 후 1루에서 아웃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도 물론 희생 플라이와 함께 타수(打數)에서 제외된다. 희생 번트를 한 타자들은 상대 실책이나 야수의 선택으로 출루하기도 한다. 희생번트가 안타가 되는 경우가 있다.
대개 희생번트는 지명타자제가 없는 리그에서 타력이 떨어지는 투수들이 많이 시도한다. 감독들은 대개 주자가 있을 경우 투수들이 주자를 전진시키기 위해 희생번트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투수들은 베이스 러닝을 할 필요가 없어 부상의 위험을 피할 수도 있다. 3루 주자가 있을 때 시도하는 희생 번트를 스퀴즈 플레이(Squeeze Play), 또는 스퀴즈 번트라고 말한다.
야구 기록표에서 희생플라이는 ‘SF’, 희생번트는 ‘SH’ 또는 ’S’로 각각 표기한다. 희생 플라이나 희생 번트를 타율이나 출루율에서 빼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희생 결정이 선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 감독 등 코칭스태프들이 점수를 내기 위해 내리는 전략이나 작전이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