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시대 시인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는 미국 야구 용어를 일본식으로 번역했다. 그가 번역한 용어는 직구를 비롯해 타자(打者, Hitter), 사구(死球, Hit By Pitch(일명 데드볼), 비구(飛球, Flying Ball) 등 지금도 쓰는 말들이 많다. 그가 야구용어를 번역할 때는 1894년 무렵이었다.
일본 야구 용어는 대부분 1890년대부터 1910년대 사이에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등을 치르며 부국강병책으로 강대국으로 변화하던 시대였다. 야구용어를 번역하면서 군사적인 의미가 들어간 것은 당시 시대적인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웃(Out) 시키는 것을 찌른다는 의미의 자(刺)나 죽인다는 의미의 살(殺)을 써서 말한다. 2명의 주자를 아웃시키는 더블 플레이(Double Play)는 병살(倂殺), 3명의 주자를 아웃시키는 트리플플레이(Triple Play)는 삼중살(三重殺)이라고 한다. 홈베이스부근에서 아웃되면 본루분사(本壘憤死)라고 말한다. 야구 경기를 죽음과 연결한 용어들이 많은 것은 이러한 시대정서가 깃들었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문학가였던 마사오카 시키도 이런 시대적 사고를 반영해 야구 용어를 번역했다. 1890년 도쿄대 철학과에 진학했다가 문학에 흥미를 느껴 이듬해 전과를 한 시키는 대학을 중퇴하고 신문기자가 돼 청일전쟁 때 종군기자로 중국 요동반도 등에서 취재를 하기도 했다가 폐병을 앓아 고향인 마쓰야마에서 요양을 하면서 야구용어 번역을 집중적으로 했다고 한다.
도쿄대 재학시절 포수로 활동하기도 했던 시키가 패스트볼을 직구라고 번역한 것은 빠르고 강하게 날아오는 볼이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것처럼 보였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투구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던 당시 투수들이 던지는 것은 대부분 곧고 빠른 공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의식적으로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는 나중에 나왔다.
직구는 볼이 휘거나 궤도변화가 없는 공을 의미한다. 좋게 말하면 정면으로 당당히 맞선다는 것을 말한다. 시인인 시키는 패스트볼을 번역하면서 변화하지 않고 거리낌없이 날아가는 볼을 보며 곧을 직자와 공 구자를 합성해 직구라고 번역했을 것으로 보인다. 패스트볼이 직구와 뜻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여긴 일본사람들은 후에 직구를 일본식 영어 스트레이트(Straight)라는 말로 대체해 사용했다.
일본 사무라이 사생관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는 똑바르게 승부하지 않는 자를 비겁한 사람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야구에서도 투수들은 가장 빠른 공을 던져 승부를 하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변화구를 던졌다고 비난을 받을 것은 아니었다. 경기에서 실력으로 이기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야구에서 변화구를 비롯해 모든 투구를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해졌다. 직구의 유형도 그냥 곧게 오는 공만이 아니다. 백스핀으로 던져 스트라이크 존에서 약간 변형이 되는 직구가 많다. 이제는 전혀 변화를 하지 않는 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시대 변화에 따라 야구 기술이 진보하면서 생긴 모습이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