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김광현 등 투수들은 물론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 같은 타자들도 이미 토미 존 수술을 오래 전에 받은 바 있었다. 야구에서 많은 선수들이 토미 존 수술을 받는 이유는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게 이름이 생소한 이 수술은 팔이 고장난 야구선수들이 주로 받는다. 손상된 팔꿈치 인대를 다른 곳에 있는 힘줄로 교체해 주는 수술이다. 의학적인 용어로는 '팔꿈치 척골 측부인대부상(Ulnar Collateral Ligament (UCL) reconstruction)'이라고 말한다. 이 수술이 토미 존 수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투수 토미 존(1943년생)에서 유래됐다.
왼손투수였던 그는 1960년대 MLB에서 데뷔한 뒤 10년동안 잘 나가는 선발투수였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MLB 생활을 시작한 그는 시카고 화이트삭스(1965-1971), LA 다저스(1972-1978)을 거치는 동안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매년 최소 177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이하를 기록하며 올스타에 4번 선발됐다. 통산 288승을 올리고도 1900년이내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한 두 번째 최다승을 올린 투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팔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며 매끄럽고 간단한 피칭을 했다. 당시는 심각한 팔 부상을 입으면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어 대부분 은퇴를 하던 시절이었다. 경주용 드라이버가 충돌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투수들은 팔꿈치나 어깨 부상을 무서워했다. 손목이 부러지는 것만으로도 선수생활이 끝날 수도 있었다.
토미 존은 1974년 7월17일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경기 3회, 팔이 삐걱거리는 것을 느꼈다. 척골측부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던 것이다. 2달 후인 LA 다저스 담당의사였던 프랭크 조브 박사는 토미 존에게 스포츠의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수술을 했다. 부상 부위를 들여다 본 조브 박사는 인대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본 뒤 오른쪽 팔목에서 인대를 절취해 대체하는 수술을 했다. 존이 수술을 받고 깨어났을 때, 그는 역사의 한 인물이 된 자신을 발견했다. 이전까지 아무도 이 수술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받아 마땅한 재활방법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시작하면서 재활에 성공했다. 1975년 6월 마침내 그의 손가락이 감각을 찾았으며 2달우엔 다시 피칭연습을 할 수 있었다. 1976년 4월 16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 출전, 5이닝동안 3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되기 했지만 세상에 그의 건재를 알렸다. 기적같은 그의 재기를 보며 언론에선 ‘바이오닉 맨(Bionic Man, 생체역학인간)’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존은 그 해 31번 선발 등판해 207이닝을 던지며 10승10패, 평균자책점 3.09, 삼진 91개를 기록했다. 그의 재기를 높게 평가한 스포팅뉴스는 내셔널리그 컴백플에이상을 수여했다. 창의적인 수술방법을 개발해 낸 조브 박사는 의사로는 드물게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MLB에서 토미 존 수술은 이제 흔한 수술이 됐다. 한국에서도 1992년 태평양 돌핀스 투수 정민태가 최초로 이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많은 선수들이 이 수술을 받고 재기에 성공했다. 류현진과 한국야구 세이브왕 오승환(삼성 라이온즈)는 아마 시절, 이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현은 SK 와이번즈에서 뛰다가 잠시 자유계약 신분으로 있을 때 이 수술을 받고 2018년 다시 마운드에 복귀해 MLB에 진출하며 성공적인 제2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