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야구역사가 폴 딕슨의 ‘야구사전(The Dickson Baseball Dictionary)’에 따르면 이 말은 1971년 설립된 미국야구연구협회(The 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의 약자인 ‘SABR’에서 파생됐다. 통계야구 개척자인 빌 제임스(1949년생)은 미국야구연구협회를 참고해 야구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이유를 알기위해 여러 통계 자료를 사용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방법을 세이버매트릭스라고 이름을 붙였다.
제임스는 1986년 ‘빌 제임스의 역사적인 야구초록(The Bill James Historical Baseball Abstract)’에서 “세이버매트릭스는 숫자가 아니다. 좀 더 좋은 기록을 찾기위한 탐구활동이다”라고 정의했다. 제임스를 통해 세이버매트릭스는 본격적으로 야구에서 체계적인 분석기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안타, 스트라이크, 홈런 등 야구의 모든 기록을 분석해 전략적인 결정을 하는데 활용하는 모든 과정을 세이버매트릭스라고 말하게 됐다.
세이버매트릭스 이전에는 야구경기 데이터로 ‘박스스코어(Box Score)’를 활용했다. 출전 선수, 회당 득·실점, 안타·삼진 개수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록표였다. 박스 스코어는 스포츠기자 출신인 헨리 채드윅(1824-1908)이 1858년 처음 고안해 1876년 내셔널리그가 창설되면서 활용됐다. 채드윅은 신문에 보도할 생각으로 박스스코어를 직접 손으로 작성했다. TV 중계가 없던 시절 야구소식을 전하던 신문에 박스스코어는 중요했다. 박스스코어는 오랜동안 통계분석용으로 활용됐으며 야구 뿐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기록이 등장하기도 했다.
세이버매트릭스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었던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영화 ‘머니볼(Moneyball)’로 알려진 ‘스몰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성공은 기록을 통계학과 경제학적 분석틀로 활용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37세로 오클랜드 단장에 오른 메이저리그 출신 빌리 빈은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 피터 브랜드와 함께 ‘저비용 고효율’ 야구를 추구하며 세이버매트릭스에 관심을 가졌다. 세이버매트릭스 이전에 좋은 타자를 나타내는 기준은 타율과 타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타율, 타점보다 타자가 베이스에 얼마나 많이 나가는가를 백분율로 보여주는 출루율과 장타율을 갖고 선수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는 전통 야구에서는 관심밖의 기록들이었다. 빈의 분석은 적중했다. 타율과 타점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출루율이나 장타율이 좋으면 주전으로 발탁됐다. 감독과 스카우터 등이 반발했지만 오클랜드가 2002년 20연승을 기록하며 그의 결정은 성적으로 증명됐다.
2002년 보스턴 레드삭스를 인수한 존 헨리 구단주는 세이버메트릭스를 본격적으로 구단 운영에 도입하면서 빌 제임스를 구단 경영자문으로 영입했다. 제임스는 재야에서 오랫동안 야구 기록을 연구해오다 마침내 빛을 보게됐다. 그의 조언을 받은 보스턴 레드삭스는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로 보내며 생긴 ‘밤비노의 저주(Bambino’s Curse)를 깨뜨리고 86년만에 2004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2006년에 타임지가 선정하는 세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중 1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보스턴 레드삭스 스카우팅 고문을 맡고 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성공을 본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이를 도입하며 세이버매트릭스는 현대야구 분석의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았다. 제임스는 “성공하기 위해서 이 용어를 만들지 않았다. 또 SABR을 기록 괴짜들이 활용하는 수단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기록을 위해서 생각해 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늘날 세이버매트릭스는 프로야구팀을 넘어 열성적인 야구팬의 블로그나 커뮤니티 등에서 많이 자료로 애용되며 즐거움을 주고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