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들른 곳은 길드.
건기는 10억 수표를 즉각 자신의 계좌에 입금했다.
그리고 가게에 들르기 전,
태구에게 속삭였다.
“4억 받고 싶죠?”
“엉? 어! 그래!”
태구의 얼굴이 급히 환해졌다.
태구는 초롱거리는 눈망울로 손에 깍지를 끼었다.
어찌나 간절한 것인지,
그는 애지중지하는 모히칸 가발이 벗겨지는 것도 몰랐다.
“당장은 못 드려요. 이 돈은 쓸 데가 있거든요.”
“쓸 데?”
태구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전형적인 핑계.
그는 건기가 현상금을 독차지할 생각이라고 여겼다.
그의 마음속에 건기를 죽이고 돈을 가로채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그냥 확, 엑스포켓으로?’
“4억은 저한테 맡겨 두셨다고 생각하세요. 상층에 올라가서 크게 한 탕하면, 4억은 푼돈으로 느껴지실 거예요.”
“4억이 푼돈?”
건기와 싸워서 4억.
건기와 함께 그 이상의 거액.
태구의 머리는 삐꺽거리며 상황을 계산했다.
그러나 제법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나온 결론은…….
‘무슨 생각을 하고 그래? 생각은 건기가 하라 그래! 이 대머리야!’
태구는 건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마음 속 탐욕은 더 큰 탐욕에 눈이 멀어 버렸다.
어떤 의미론 참 단순한 인간.
그는 건기의 손바닥 안이었다.
“약속은 꼭 지켜라. 알았지?”
“그럼요.”
건기는 태구의 가발을 주워 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태구는 그제야 자신의 맨머리가 드러났단 걸 알고 깜짝 놀랐다.
***
사흘 뒤.
그리고 마탑 14층.
일행은 황야를 걷고 있었다.
정확히는 같은 장소를 빙빙 돌고 있는 중이었다.
“이상하다. 여기가 맞는데?”
20층까지 지리를 잘 알고 있다고 장담했던 태구.
그의 안내 덕에 무려 반나절 동안 헤매고 있었다.
“그냥 14층 거주 구역에서 지도를 살걸 그랬나?”
건기는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그 말에 태구는 더욱 열을 올리며 방방 뛰었다.
“날 믿어! 내가 분명히 길을 안다고! 지름길로만 가면, 그동안 헤맨 걸 만회할 수 있어!”
“아니면 4억에서 깎을 거예요.”
건기는 진심으로 말했다.
“히익! 그, 그것만은……! 그건 내 삶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가족은요?”
“그런 거 없다.”
4억 앞에선 가족도 없다.
참으로 대단한 태구였다.
결국 일행은 너무 돌아다닌 탓에 노숙을 하기로 했다.
건기와 태구는 인벤토리에서 야영에 필요한 물건을 꺼내 늘어놓았다.
“돈이 좋긴 좋구나. 햐햐햐햐!”
휴대용 가스버너.
공기주입식 텐트.
휴대용 공기펌프.
스테인리스 식기.
갖가지 보존식품.
마탑 내에서 병기화 될 수 있는 대형 LPG 가스나 석유 등은 반입 금지였지만,
인권적인 차원에서 휴대용 부탄가스는 허용되었다.
같은 이유로 차량도 금지.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규제는 오직 MGF와 유엔에서 일방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물건만 보면 여기 놀러온 줄 알겠네요.”
전부 태구의 안목.
건기는 그저 돈만 지불했다.
“아저씨, 리볼버 좀 주실래요?”
“리볼버? 왜?”
“윌리한테 사격하는 것 좀 가르치려고요.”
“알았어.”
태구는 순순히 인벤토리에서 리볼버 한 정을 꺼내 내밀었다.
그것은 MGF제가 아닌 길드제.
정식 현상금 사냥꾼에 한해서 소지가 가능한 물건이었다.
건기는 야영지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부근에 빈 생수병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윌리를 불러서 그의 손에 마총을 쥐여 줬다.
“잘 잡아.”
“쏘고 싶지 않아요.”
“쏠 줄 알아야 해.”
“쏠 줄 알아서 뭘 하죠? 사람을 죽이는 거잖아요.”
윌리는 큰소리를 내면서 마총을 떨어뜨렸다.
건기는 마총을 집어서 다시 그의 손에 억지로 쥐여 줬다.
“네 할아버지도 싸울 줄 몰라서 돌아가신 거야.”
“하, 할아버지…….”
최악의 화법.
건기는 더욱 거칠게 말했다.
“싸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 날아오는 광선은 세상에서 가장 평등하고 잔인해. 다리가 불편하다고 해서 봐주지 않아.”
건기는 뒤에서 윌리를 감쌌다.
그리고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서 마총을 조작했다.
“이게 안전장치야. 마총은 모델하고 상관없이 생김새는 다 비슷해. 싸우고 싶지 않더라도 싸우는 방법은 알고 있어. 그래야 마탑에서 살아갈 수 있어.”
살아간다.
그 간단한 요점에 윌리는 자신의 손을 건기에게 맡겼다.
팡.
광선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그리고 빈 생수병을 꿰뚫었다.
건기는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빈 병을 꺼내 내밀었다.
“가서 이걸 놓고 와.”
“예? 제가요?”
윌리는 자기도 모르게 왼쪽 다리를 쳐다봤다.
다리를 다쳐서 불구가 된 이후, 이런 대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건기는 엄히 말했다.
“열 셀 때까지 돌아와. 안 그러면 밥은 없어.”
“하지만 전 다리가…….”
“하나!”
건기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윌리는 그 소리에 움츠러들었다가 목발을 짚었다.
그리고 절뚝이면서 뛰었다.
“둘.”
건기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그는 윌리가 열심히 움직이는 한, 굳이 숫자를 세지 않았다.
“여, 여기요.”
윌리가 빈 병을 놓고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1분 남짓.
땀까지 뻘뻘 흘릴 정도로 서두른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느린 속도였다.
‘차차 나아지겠지.’
건기는 그렇게 생각했다.
“잘했어. 이번엔 혼자서 쏴 봐.”
“네? 예.”
윌리는 건기한테 배운 대로 리볼버를 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철커덕.
회전 탄창이 돌아가며 광선이 날아갔다.
그러나 날아간 광선은 전혀 엉뚱한 곳에 떨어졌다.
“다시.”
“네.”
이번엔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그러자 건기는 윌리보고 빈 병을 세워 놓으라고 시켰다.
윌리는 또 쩔뚝이면서 달렸다.
그러다가 목발이 겨드랑이에서 빠지며 철퍼덕 쓰러졌다.
“으으으윽.”
윌리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멀리서 들려오는 건기의 숫자 소리가 그를 채찍질했다.
“세에에엣! 네에에엣! 다아아아서어어엇……!”
건기는 자신의 폐활량이 허락하는 한 천천히 숫자를 셌다.
그리고 윌리가 일어서는 것이 보이자,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다물었다.
그는 윌리에게 상냥함을 가르칠 생각 따윈 없었다.
오직 마탑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줄 뿐이었다.
사격 훈련이 끝난 다음엔 아령.
건기는 작은 아령 하나를 꺼내 윌리에게 건넸다.
“가져. 그리고 앞으로 매일 끼니마다 운동해. 양쪽 백 번씩.”
“백 번이나요?”
“기초 근력이란 건 아주 중요해. 해 보면 알 게 될 거야. 익숙해지면 무게를 늘릴 테니까, 각오해.”
훈련은 태구의 식사 준비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식사 시간.
태구는 건기와 윌리에게 그릇을 건넸다.
메뉴는 토마토 스파게티.
세 사람은 가스버너 주위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어지간히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는구나. 그러다가 애 잡겠다.”
“해내야만 해요. 아니면 낙오시키는 수밖에 없어요.”
건기는 자신의 면발과 소스가 차가운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건……?”
“햐햐햐햐! 내가 특별히 신경 좀 썼지. 넌 뜨거운 거 못 먹잖아?”
윌리는 허겁지겁 그릇을 비웠다.
태구는 그의 먹는 속도에 놀라면서 남은 음식을 모두 그의 그릇에 담았다.
“잘 먹네. 많이 먹어라. 먹는 거라도 잘 먹어 둬야지, 원…….”
태구는 안쓰러운 눈길로 윌리를 쳐다봤다.
그는 윌리를 보며 마탑 바깥의 가족을 떠올렸다.
식사 후 태구는 취침.
설거지는 윌리가 맡았다.
황야에서 물로 설거지를 하는 것은 사치.
대신 설거지용 물티슈가 있었다.
윌리는 그릇을 다 닦고 나서 여러 쓰레기를 봉지에 담아 근처에 파묻었다.
아주 훌륭한 쓰레기 투기.
마탑 바깥이었다면 처벌 받아 마땅한 짓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마탑의 황야.
이곳의 흙에 쓰레기를 묻으면 참 편리하게도 자동으로 분해가 되어 사라졌다.
그렇기에 마탑에서는 물건을 땅에 묻어 보관하거나, 숨기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윌리는 태구를 따라 텐트에 들어갔다.
건기는 커피우유 분말을 물에 잘 타서 한 모금 들이켰다.
쌉쌀하고, 달콤한 액체가 혀에 착 감기면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후후.”
건기는 눈앞의 가스버너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불과 며칠 전엔 모닥불,
지금은 휴대용 버너.
마치 문명의 발전 같았다.
건기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서 옛일을 떠올렸다.
일종의 트라우마이자, 악몽.
그는 어렸을 때 딱 한 번,
자신이 살던 집에 불을 지른 적이 있었다.
그 불은 매섭게 타올라 집을 까맣게 태웠고,
그 때문에 희생자까지 나왔다.
하지만 덕분에 그는 ‘학대’에서 벗어나 마탑에 올 수 있었다.
“응?”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뭔가 다가온다.”
건기는 잔을 놓고 노멀소드를 들었다.
***
“허억, 허억.”
귓구멍에서 피를 흘리는 남자.
그의 한쪽 귀는 반쯤 잘려서 덜렁이고 있었다.
“도망……가야 해. 잡히면…….”
남자는 화살이 박힌 다리를 절뚝이면서 천장으로 올라가는 연기를 향해 걷고 있었다.
“거의 다…… 왔…….”
슉.
뒤에서 날아온 화살이 남자의 뒤통수를 관통해 눈 사이로 화살촉이 뚫고 나왔다.
화살은 거기서 중간에 걸렸다.
남자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로 그림자가 다가와 그의 귀를 완전히 잘라서 사라졌다.
“응?”
건기는 한 발자국 늦게 남자를 발견했다.
그는 남자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귀를 살폈다.
“방금 죽었는데…….”
양쪽 귀 모두 절단.
한쪽 귀는 꽤 오래 전에.
반대쪽은 방금 전에.
“젠장.”
건기는 급히 주변을 살피며 리볼버를 꺼냈다.
그리고 조금 넓게 주변을 빙 돌아서 야영지로 돌아왔다.
모닥불 앞에는 태구가 하품을 하고 있었다.
“어때? 뭐 있었어?”
“방금 죽은 시체가 있었어요.”
“그, 그럼 위험한 거잖아?”
“이동하는 게 좋겠어요. 여기선 안심하고 잘 수 없어요.”
두 사람은 자고 있는 윌리를 깨우며, 황급히 짐을 쌌다.
마지막은 모닥불에 흙을 덮어서 흔적을 지우는 것.
태구가 윌리를 업으며, 일행은 야영지를 떠났다.
“여기서 한 시간 정도 가면 마을이 있어. 일단 거기로 가자고!”
“좋아요.”
일행은 태구의 안내에 따라 마을로 향했다.
확 트인 황야.
몸을 숨길 만한 작은 바위조차 없는 황량한 평지였다.
그러나 건기는 고개를 계속 돌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여차하면 시야에 보이는 사람 형상은 무엇이든 쏴 버릴 생각이었다.
“시체 상태는 어땠어? 물론 주머니는 뒤져 봤겠지?”
태구는 시체보단 시체가 지닌 물건에 더 관심을 보였다.
“귀가 잘려져 있었어요. 방금 잘린 거였고요!”
건기는 어금니를 씹었다.
“어서 움직여요! 빨리!”
“그, 그래.”
일행은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건기는 아예 태구로부터 리볼버 두 정을 받아 양손에 쥐었다.
“거, 건기야! 저기!”
태구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건기 뒤에 숨었다.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한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숫자는 열두 명.
건기는 양쪽 리볼버를 겨누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정지! 정지!”
무리는 그의 말대로 정지.
곧 그들 중 건장한 남성이 앞으로 나와서 일행에게 걸어왔다.
건기는 빠르게 그의 행색과 무장 상태를 파악했다.
외모는 20대 후반.
복장은 허름했다.
허리춤에 찬 장검 외에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워워, 우린 그쪽하고 싸울 생각 없어. 우리들은 평범한 광부라고.”
남성의 이름은 잭.
“싸울 생각이 없다면, 서로 멀리 떨어져서 지나가는 게 어때?”
건기는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그들이 그의 말대로 평범한 광부처럼 보이더라도,
그걸 가장한 적일지도 몰랐다.
잭은 그의 지나친 경계심에 그냥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대로. 갑자기 쏘지나 마.”
“충고 하나 하지. 귀를 조심해.”
“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잭이 자기 무리에게 돌아가고, 일행과 무리는 비스듬히 방향을 틀어서 서로를 지나쳤다.
“미친놈.”
잭은 멀어져 가는 세 사람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장검 손잡이에서 손을 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뭘 그렇게 긴장해? 황야에서 여행자끼리 경계하는 건 늘 있는 일이잖아?”
동료의 말에 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랑 대화했던 놈 말이야.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는데, 보통 섬뜩한 게 아니었어. 뭐래더라? ‘귀’를 조심하라고?”
“귀? 그게 무슨 뜻이야? 마탑에서만 쓰는 은어 같은 건가?”
“그러고 보니, 항구나 거주 구역에서 귀가 잘린 사람을 본 적이 있거든. 혹시 귀만 잘라 가는 강도가 있는 게 아닐까?”
일행 전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개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