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아시안게임에서 펼쳐지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경기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배틀그라운드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아시안게임 버전에는 사람을 향해 총을 쏘는 것도 불가능하고, 시간마다 선수들을 조여가는 서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선수들은 주어진 경로를 따라 차를 운전해 나간 뒤, 공중에 있는 과녁을 사격하는 경기를 펼치게 됩니다. 배틀그라운드의 '배틀'은 없고 그 자리를 스포츠로 채운 느낌입니다.
배틀그라운드에서 배틀이 빠지게 된 원인은 주최 측에 있다는 시선이 지배적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간의 친선을 도모하는 아시안게임에서 대표선수들이 서로를 총으로 쏴서 죽이는 배틀그라운드의 핵심 요소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또 아시안게임은 청소년이나 그보다 더 어린 학생들도 볼 수 있는 만큼, 피가 튀는 장면 등은 유해할 수도 있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을 종목으로 하겠다고 결심했으면, 배틀그라운드의 핵심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필요했다고 봅니다. 그것이 종목을 사랑하는 팬들과 선수들에 대한 예의니까요. 완전히 다른 종목으로 바꾸어버린다면, 기존 활동한 선수들 입장에서도 본인의 역량을 보여줄 수 없고 또 본인이 사랑하는 종목이 아시안게임의 무대에서 펼쳐지길 바랬던 팬들 역시 실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총기마다 스킨을 씌운 뒤 수면총, 마취총이라는 컨셉으로 사람이 죽지 않는 배틀그라운드를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기절 대신에 졸음 상태, 사망 대신에 완전 수면 상태 같은 형식으로 말입니다. 차량 폭파와 화염병 같은 폭파 효과 역시 수면 가스 등으로 대체할 수 있었지 않을까요? 물론 어색함은 존재했겠지만, 배틀그라운드라는 큰 틀은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더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이런 아쉬움이 더욱 진한 것은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e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선정된 첫 대회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올 대회들은 이번 아시안게임의 운영을 선례로 삼을 것입니다. 젊은 세대가 즐기는 FPS 게임이 e스포츠 종목으로 선정된다고 해도, 그 형태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e스포츠를 정식종목으로 선정하게 된 이유는 e스포츠 팬들을 아시안게임의 시청자층으로 흡수하고 이를 통해 젊은 세대와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e스포츠 팬들이 즐기는 문화를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 그들과 어울릴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종목의 핵심을 살리기 위한 기본적인 노력 없이는, e스포츠 팬들과의 화합 역시 공염불에 불과할 것입니다.
허탁 기자 (taylor@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