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돌아온 매시아' 김정우 선수의 신인 시절과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약 2년 만에 만난 김정우 선수였기 때문인지 반갑기도 했고 김정우 선수 역시 인터뷰가 오랜만이다 보니 할 이야기가 많은지 이날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즐거운 인터뷰였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말로만 들었던 CJ 2군 생활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스타걸 활동을 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CJ 2군 숙소에 대한 소문이 사실인지였는데요. 김정우 선수와 인터뷰를 통해 과장된 소문도 있지만 어느 정도 소문에 사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리고 소문보다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김정우 선수가 모든 것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표정만으로도 그런 부분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김정우 선수에 대한 선입견이 모두 깨졌는데요. 사실 김정우 선수를 가까이 보지 않는 이상 워낙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차가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의외로 다정다감하고 유머감각이 있더군요. 약간 수다쟁이라는 느낌도 받을 정도였습니다.
김정우 선수의 말에 따르면 CJ에서 성격이 세탁(?)됐다고 하네요. 학창 시절 때부터 발랄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CJ에서 주축으로 자리잡으면서 CJ 특유의 도도한(?) 성격으로 변모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이미 자신의 성격으로 모두 돌아온 상태인 듯 보입니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으니까요. 제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선수 김정우. 그동안 어디에서도 털어놓지 않았던 그의 진짜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을 바꿔 놓은 대한항공 스타리그
서연지=김정우의 프로게이머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김정우=두말 할 것도 없이 대한항공 스타리그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그때는 개인적으로는 연패를 계속 하던 시기였던 데다 e스포츠 전체가 '승부조작'이라는 사건에 휘말려 모두 힘들었잖아요.
사실 같은 팀 선배가 연루되고 난 뒤 괜한 의심을 많이 받았어요. 그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상당했죠.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게임 자체가 그냥 싫었어요. 오죽했으면 16강에서 1승2패를 했겠어요. 사실 재경기도 별다른 생각 없이 경기장에 갔던 것 같아요.
서연지=정말 힘들었겠네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승까지 차지할 수 있었던 거에요?
김정우=16강 재경기가 저를 바꿔 놓았죠. 역대 스타리그 사상 최다 재경기를 펼쳤잖아요. 재재재재경기까지 간 경우는 저희 조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재재경기까지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재재재경기를 하니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여기까지 와서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독기를 품었어요. 힘든 일을 겪으면서 잃어버렸던 열정과 독기가 생겨나게 된 거죠.
재재재재경기 끝에 8강에 올라가고 나니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힘들었지만 어쨌건 저는 재재재재경기를 뚫어낸 사나이잖아요(웃음). 여기서 무너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를 악 물었죠. 제 인생을 바꿔 놓은 재재재재경기가 아닐까 생각해요.
서연지=그렇게 결승전에 올라갔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최종병기' 이영호의 우승을 예견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렵게 결승까지 갔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예상해 힘이 빠지지는 않았어요?
김정우=전혀 그렇지 않았어요(웃음). 예전부터 결승전을 가게 되면 꼭 이영호와 붙고 싶었거든요. 솔직히 다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길 자신 있었어요(웃음).
서연지=예전부터 자신감은 항상 충만했던 것 같아요.
김정우=맞아요(웃음). 사실 저는 2군 생활을 할 때부터 우승한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거든요(웃음). 그리고 사람이 살다 보면 뻔뻔해야 할 때가 있더라고요(웃음).
서연지=0대2로 지고 있을 때도 왠지 자신감은 최고조였을 것 같아요(웃음).
김정우=어떻게 알았어요? 정말 다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2경기 끝나고 나서 이제는 지지 않겠구나 싶었어요.
서연지=정말인가요?
김정우=정말이라니까요(웃음). 억울하네요. 진짜인데 다들 믿지 않는 분위기인데요(웃음). 사실 1세트에서 긴장 안하고 경기를 잘 풀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니터가 깨지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졌어요. 이후 2세트가 끝나고 난 뒤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다음 경기부터는 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차분히 경기를 풀어 갔어요.
조금 억울했던 것이 4세트는 (이)영호가 전략적인 것을 준비했고 저는 그를 확인하고 막았을 뿐인데 팬들은 제가 전략으로 승부를 봤다고 기억하더라고요. 기가 막힌 대처를 보여준 것인데 그저 초반에 승부를 봤다는 말을 하니 조금 서운했습니다.
서연지=결승전 당시 가장 많이 조언해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김정우=감독님이나 코치님 모두 많이 조언해 주셨는데 사실 그 당시에는 조언이 필요가 없었어요. 제 상태가 조언 없이도 충분히 잘할 자신 있었거든요(웃음).
서연지=정말 자신감 하나는 최고네요(웃음).
김정우=이정도 자신감은 가져야 우승자가 되는 거에요(웃음).
◆별명의 역사
서연지=김정우 선수 별명의 역사를 살펴보니 처음에는 매였더라고요.
김정우=솔직히 좋지 않았어요(웃음). 다른 선수들은 '혁명가', '무결점의 총사령관', '폭군', '최종병기' 등 다 멋진 별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잖아요. 하지만 저는 동물이었어요. 그것도 멋진 경기력을 보여줘서가 아닌 눈이 찢어졌다는 이유에서 매라는 별명을 얻었죠. 동료들은 닭이 아닌 것이 어디냐며 위로했지만 솔직히 그게 위로가 됐겠어요? 숙소에서는 저를 참새라 놀렸죠. 슬펐어요.
서연지=어쩌다 매라는 별명을 얻게 된 건지 궁금하네요.
김정우=저도 잘 알지는 못해요. 다만 예전에 한 팬 분이 치어풀에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이라고 쓴 뒤 제 사진을 들고 계셨던 적이 있어요. 중계진이 그 치어풀을 보고 정말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며 치켜 세웠죠. 이후 저는 '매'로 불렸어요. 매정우라는 어감이 별로 좋지 않잖아요. 왠지 매정한 것 같고(웃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서연지=그런데 대한항공 스타리그 결승전 이후로 더 멋진 별명이 생겼잖아요.
김정우=요즘은 별명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잖아요(웃음). 대한항공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이)영호를 이기고 우승을 하니 '매'가 곧바로 '매시아'로 바뀌더라고요. '매정우'보다는 '매시아'가 왠지 더 멋있지 않나요?
그날 이후로 동료들도 더 이상 참새라 놀리지 않습니다(웃음). 생각해 보면 대한항공 스타리그 결승전이 저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원자'라는 뜻과 날카로운 눈빛을 가지고 있다는 정말 멋진 뜻이 다 담긴 '매시아'라는 별명은 e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별명이에요(웃음).
서연지=은퇴 후 돌아와서 '매시아'라는 별명 앞에 더 멋진 문구가 붙기도 했잖아요.
김정우='매시아'가 원래 부활한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은퇴했다 다시 복귀하고 나니 '돌아온 매시가'로 불리더라고요. 좀 으쓱했죠(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매'라는 별명 덕분인 것 같아서 그 팬에게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갑작스러운 은퇴 그리고 복귀
서연지=별명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은퇴 이야기가 나왔네요. 정말 뜬금 없는 은퇴라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죠? 저도 그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김정우=사실 발표하는 저도 뜬금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정점에서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하니 사람들이 다들 '미쳤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하지만 많은 것을 이룬 만큼 회의감이 정말 컸어요.
우승자라면 그리고 팀에 어느 정도 기여한 사람이라면 응당 받아야 할 무언가가 있는 것은 당연한 거잖아요. 그런데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피땀 흘려가며 고생했는데 결과가 크지 않은 것 같아서 허무하기도 했죠.
게다가 예전부터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었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대학생활을 너무나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죠. 사실 그 생각은 지금도 있어요. 친구들이 대학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관계를 쌓아가는 모습이 부럽거든요.
서연지=은퇴 후에도 공부하는 모습이 인터넷 동영상으로 나와 화제가 되곤 했잖아요.
김정우=공부하기 싫을 정도로 짜증났어요. 혼자 조용히 공부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는데 학원에서도 다들 쳐다보고 은퇴 후에도 계속 관심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더라고요.
게다가 서울대 갈 수 있는 성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나면서 당황하기도 했어요. 공부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지만 서울대까지는 아니었거든요(웃음). 평범한 사람으로 그저 공부하며 일상생활을 즐기고 싶은데 은퇴를 하고 나서도 평범한 삶은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싶어서 좌절했죠.
서연지=그 사건이 프로게이머로 복귀하는데 큰 영향을 줬나요?
김정우=그렇지는 않아요. 공부를 하면서도 숙소에 놀러 온 적이 몇 번 있는데 연습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어요. 애써 부인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러다 기분 전환으로 어떤 책을 읽었는데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인생을 사는데 최고로 합리적이고 좋은 것이다'는 문구를 읽고 머리를 맞은 듯 했어요. 내가 가장 잘하고 있는 것을 멀리하고 다른 것을 하려는 모습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죠.
고민하다 부모님께 먼저 말씀 드렸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저를 믿어 주시더라고요. 아버지께서 '네가 그렇게 생각했으면 밀고 나가라'고 용기를 주셨죠. 마음을 먹고 나니 모든 것이 쉽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제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숙소에 막상 와서 복귀하겠다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김동우 감독님께 제 의견을 말씀 드린 뒤 회사에도 복귀 의사를 밝혔는데 의외로 환영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동료들도 두 팔 벌려 반겨주는 모습을 보며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됐죠.
서연지=돌아오고 난 뒤 후회해 본 적은 없어요?
김정우=단 한번도 없어요. 복귀한 지 지금 1년 남짓 지났는데 거의 다 적응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복귀 후 6개월 동안은 조바심을 느꼈는데 지금은 여유를 찾은 느낌이에요. 손이 예전처럼 빨리 움직이지는 않지만 적응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23살 청년 김정우
서연지=대학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는데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기 때문은 아닌가요(웃음)?
김정우=23세 피 끓는 청년인데 당연하죠(웃음). 신기하게도 여자친구가 있는 상태에서 성적이 더 좋았어요. 지금도 여자친구는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합니다(웃음).
서연지=이상형이 있나요?
김정우=연예인 이상형이나 특정 인물을 좋아하기 보다는 다른 남자들이랑 똑같죠. 쌍꺼풀 있고 눈이 처진 청순하고 예쁘고 착한 여자가 좋아요(웃음). 모든 남자들의 로망 아닌가요?
서연지=이상형 월드컵을 한번 해야겠는데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미쓰에이 중 좋아하는 멤버 한 명씩만 꼽아주세요.
김정우=소녀시대에서는 서현, 원더걸스에서는 선예, 미쓰에이 중에서는 수지를 꼽겠습니다. 나머지 한 명은 누군가요(웃음)?
서연지=만인의 여동생 아이유죠. 그럼 4강으로 들어가 볼까요? 서현과 선예, 수지와 아이유 중 한 명씩 꼽아보자면?
김정우=서현과 선예중에서는 서현이 더 이상형에 가까워요. 수지와 아이유 중에서는 고민되지만 아이유로 하죠(웃음). 서현과 아이유가 결승에 올랐는데 의외로 선택이 쉽네요. 둘 중에는 아이유가 더 마음에 들어요.
서연지=결국 아이유가 이상형이라는 말이네요(웃음).
김정우=웅진의 모 선수처럼 열성팬은 아닙니다(웃음). 귀엽고 쌍꺼풀도 있고 생각도 바르잖아요. 하지만 저랑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은 있어요. 물론 사귈 기회가 있으면 사귀겠지만요(웃음).
서연지=김정우의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김정우=아직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원래 성격상 먼 미래를 생각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나이를 먹으면서 그때 하고 싶은 것들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언가 정해놓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타입은 아니에요.
지금은요? 최고가 되는 것 이외에 꿈이 있을까요? 제가 있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겠습니다.
서연지=오늘 인터뷰 정말 즐거웠습니다. 이번 시즌 종목을 오가며 멋진 활약 보여주세요.
김정우=이번 시즌만큼은 팀을 꼭 우승시킨 선수로 남고 싶습니다. 많이 응원해 주세요.
정리=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사진=데일리e스포츠 박운성 기자 phot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