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앙숙?
신정민의 프로게이머 생활을 보면 언제나 힘든 팀들의 힘든 시기와 함께 했다. 2004년 프로게이머로 등록되기 전까지 클럽팀인 인터우드에서 활동하던 신정민은 주진철, 허용석, 박정길, 한동욱과 함께 연습생으로 데뷔를 준비했다. 그러다 인터우드 게임단이 어려워지고 주진철이 이명근 감독이 이끄는 KOR에 합류하기로 결정하면서 신정민은 한동욱과 함께 팀을 옮겼다.
개인전 능력과 팀플레이 능력을 고루 갖춘 신정민은 EVER 스타리그 2004와 아이옵스 스타리그에서 16강에 진출하기도 했고 프로리그에서는 팀플레이를 전담하면서 두 영역 모두 좋은 성적을 냈고 멀티 플레이어로 인정받았다.
신정민은 스카이 프로리그 2004에서 주진철과 함께 호흡을 맞춰 팀플레이 경기에 자주 출전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두 선수 모두 저그였지만 신정민이 랜덤을 선택해 상대에게 혼돈을 주는 전략을 앞세워 조합을 꾸렸다. 어느 종족이 선택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에 세 종족을 모두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플레이할 수 있었다. 신정민은 랜덤을 택해 팀플레이에 가장 많이 출전한 선수로 기록에 남았고 포스트 시즌을 포함해 13승15패, 5할에 조금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초창기 신정민의 랜덤 카드는 상대를 흔들기 충분했다. 주진철이 저그를 선택하고 신정민이 랜덤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스카이 프로리그 2004 3라운드에서 KOR을 우승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당시 결승전 상대였던 KTF가 정규 시즌 8전 전승을 기록했기에 KOR의 도전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신정민은 주진철과 함께 6세트에서 승리하며 최종전으로 바통을 넘겼고 차재욱이 조용호를 제압하며 프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KOR 소속으로 계속 활동하던 신정민은 온게임넷이 팀을 인수할 즈음 팀을 나왔다. 코칭스태프와의 오해가 있었고 한빛 스타즈 이재균 감독의 러브콜을 받아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신정민은 한빛에서도 팀플레이 부문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했다. 프로토스 김인기와 팀을 꾸린 신정민은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에서 12승6패, 김인기와 호흡을 맞춰 11승4패를 기록하며 팀플레이 다승 1위와 조합 1위의 타이틀을 얻었다.
2007 시즌 후기에는 김명운과 호흡을 맞추며 또 다시 랜덤의 신화를 이어갔고 한빛이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했다.
◆간접적인 코치 경험
2007년 후기리그에서 신정민은 새로운 파트너를 배정받으면서 코치에 대한 꿈을 갖기 시작했다. 이재균 감독이 저그 신예로 육성하고자 기대를 갖고 있던 김명운을 신정민의 짝꿍으로 붙여준 것. 이 감독은 신정민의 랜덤 능력을 높이 샀고 김명운에게 방송 무대 경험을 쌓아주기 위해 파트너를 꾸렸다.
김명운과 호흡을 맞추면서 신정민은 팀플레이의 기초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감독도 신정민의 경험이 김명운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전적으로 믿음을 심어줬다. 신정민은 김명운과 모든 일을 함께했다.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면 옆에 붙어 생활 공동체처럼 지냈다. 연습 자리도 바로 옆에 꾸렸고 잠을 잘 때도 옆 자리에 마련했다. 식사도 함께했고 취미 생활도 통일했다.
신정민은 "김명운이 신인이던 2007년 거의 모든 생활을 함께했어요. 거머리처럼 붙어다니며 경기에 대한 이야기, 프로게이머 생활, 개인사까지 모든 것을 공유했습니다. 선배로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입장이어서 가르치는 일을 맡았죠. 선수였지만 거의 김명운 전담 코치처럼 생활했기에 지도자에 대한 감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빛소프트의 경영 사정이 어려워지고 웅진으로 넘어가던 시점에 신정민은 또 다시 팀을 나왔다. 코칭 스태프로 전환하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이미 군에 가겠다고 마음을 잡은 상황이었기에 웅진과 이별을 고했다.
코치 생활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신정민은 이스트로 김현진 감독과 뜻이 맞아 지난해 9월부터 팀에 합류했다.
◆김성대를 김명운처럼 키우겠다
이스트로에 합류한 신정민은 타깃을 저그 김성대로 잡았다. 김현진 감독과 오상택 코치가 팀 전체적인 선수 관리를 하고 있었기에 신정민은 작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잡을 수 있었던 것.
"김성대를 본 순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3개 팀을 돌아보면서 김성대만큼 부지런하고 성실한 선수를 본 적이 없습니다. 머리 속에는 스타크래프트로 성공하는 방법만 고민하고 몸으로는 하루 빨리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입니다."
선수 시절 끼가 많았던 신정민은 '게으른 천재'라는 평가가 많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한 별명이지만 연습을 게을리하고 숙소 생활에서 부적절하다는 악평이 담긴, 가시 돋친 말이다. 선수로서 못 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룰 프로게이머를 찾던 신정민에게 연습 벌레 김성대는 최고의 아바타였다.
"김명운과 한빛에서 생활할 때의 지도법을 다시 한 번 꺼내 들었습니다. 1대1 교습의 수준을 넘어서 생활 공동체로 접어들었죠.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는 같이 살았습니다. 연습 내내 김성대의 플레이를 보고 새벽 3~4시까지 시뮬레이션을 돌렸죠. 잠자리도 나란히 마련해서 잠들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어요."
김성대를 붙잡고 덤벼들었지만 시작부터 성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3개월 정도 지나자 상승세를 보이던 김성대가 더 이상 실력이 늘지 않았다. 연습 강도를 높여도 소용히 없었다. 정체 상황이 닥친 것이다.
"문턱을 다 넘었다고 생각하는데 발을 떼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대부분의 선수들과 팽팽하게 경기하다가도 이기지 못하더라고요. 답답했죠. 고지가 눈 앞인데 주저 앉아 버렸으니까요."
고민하던 신 코치는 김성대를 기초부터 다시 가르치기로 마음 먹었다. 일단 기본부터 시작했다. 마우스웨어와 감도, 경기 자세, 키보드 등 외적인 조건부터 교체했다. 1주일이 지나도록 드론 뿌리는 작업만 시키기도 했다. 이후 서서히 적응 작업을 시도하면서 김성대는 전보다 진일보한 선수가 됐다.
◆노력은 선수, 타이밍은 코치
김성대와 동고동락하며 4개월 여를 보낸 신 코치는 본격적으로 활용할 시점을 김현진 감독과 함께 고민했다. 이스트로에는 이미 신대근이라는 검증이 완료된 저그가 있었지만 09-10 시즌 성적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대체 인원을 투입해야 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 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출전하던 신대근은 10월말부터 하락세를 보이더니 12월말까지 3승9패를 기록했다. 김 감독과 신 코치는 김성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김성대가 2군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08-09 시즌에도 몇 차례 출전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그 자리가 더 잘 어울려요. 뛰쳐 나오고 싶겠죠. 이럴 때에는 한 번에 주전으로 자리를 잡아야 해요. 1, 2군을 오가면 심리적인 압박이 가중되거든요. 그래서 타이밍을 봤죠. 주전으로 기용할 시점과 김성대의 컨디션을 모두 체크했어요."
김성대는 신대근이 난조를 보인 끝물인 12월20일부터 중용됐다. 에이스 결정전을 맡으면서 하루에 2패를 당하기도 했지만 2라운드 마지막에 3승1패하면서 무너져내리던 이스트로의 저그를 떠받쳤다. 신정민의 기용 타이밍과 김성대의 노력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김성대가 오랜만에 출저해서 이긴 적이 있어요. 경기석에서 나와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3~4초 정도 손을 맞잡고 있는데 전기가 통한 것처럼 짜릿하더라고요. 이 맛에 코치하는 것 같아요."
얼마전 데일리e스포츠를 통해 김성대와 신 코치의 '넌 잘할 수 있다'라는 포토스토리가 공개된 바 있다. 신 코치가 김성대에게 갖고 있는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는 두 장의 사진을 통해 한 마음이 된 두 사람을 읽을 수 있는 장면이다.
◆선수가 주력, 스태프는 도울뿐
김성대의 사례를 통해 신정민은 단순한 원칙을 다시 깨달았다. 경기에 나서는 선수가 성과를 이루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는 진리다. 선수가 이겨야만 코칭 스태프나 회사가 칭찬을 받을 수 있지, 진다면 아무리 노력을 했더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4년 KOR이 우승할 때나 한빛 스타즈가 좋은 성적을 거둘 때를 돌이켜보면 선수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공유하고 잘해보자고 단합이 잘 되던 시기였어요. 지금 이스트로가 그렇거든요. 팀이 목표를 제시하고 끌고 가려고도 하지만 선수들이 먼저 나서서 팀워크를 발휘해보자고 하거든요. 경기에 나가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좋으니까 성적도 좋을 수밖에요."
신 코치의 장기적인 목표는 이스트로를 강팀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다. 김성대라는 한 명의 선수를 전담 마크하고 있는 그는 개인별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낸 뒤 저그라는 종족을 성공시키고 나아가 이스트로를 성공작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선수 시절 덩치를 연상시키는 'MAX'라는 아이디를 썼던 신 코치의 꿈이 맥시멈에 달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프로필
이름 : 신정민
생년월일 : 1986년6월26일
아이디 : Qoo)MAX
수상경력
2005년 스카이 프로리그 3R 우승
2007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전기리그 팀플레이 다승왕
2007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전기리그 팀플레이 조합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