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저그의 집중력 떨어뜨리는 달인
안녕하십니까.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입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시즌이 개막하면서 본격적으로 리그가 진행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그동안 많은 명경기들이 열리면서 스타크래프트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데요. 데일리e스포츠는 프로리그에서 열린 명경기 가운데 하나를 뽑아 집중분석할 예정입니다.
10-11 시즌 들어 첫 번째 '핀포인트'의 대상은 SK텔레콤 T1의 김택용과 STX 소울 김윤환의 경기입니다.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e스포츠 상설 경기장에서 열린 경기입니다. 결과는 다들 아시죠? 김택용이 김윤환의 럴커와 저글링 난입을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기를 통해 승리한 경기입니다.
김택용은 이번 시즌 저그전 뿐만 아니라 어떤 종족을 상대로도 지지 않았습니다. 프로리그 9전 전승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왜 그토록 강한지 이 경기 하나로 모두가 증명됩니다. 함께 따라가 보시지요.
김윤환을 상대로 김택용은 더블 넥서스를 시도합니다. 일반적으로 포지를 먼저 건설하고 캐논을 지은 뒤 넥서스를 가져가지만 거리가 멀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한 듯 넥서스를 먼저 짓습니다. 캐논도 하나밖에 짓지 않습니다. 이렇게 스타트를 끊으면 프로토스의 병력은 생각보다 일찍 폭발하게 됩니다.
김택용은 질럿 한 기를 저그의 세 번째 확장 기지 아래 숨겨 놓습니다. '벤젠' 맵의 11시로 가는 이동 경로가 두 곳임을 이용하고 미리 배치한 것이지요. 공격을 시도하면서 김택용은 시간을 법니다. 커세어와 질럿을 모으는 시간을 '만들었다'고 하겠지요.
질럿 5기와 드라군 한 기를 이끌고 진출합니다. 김택용이 저그전에서 평상시에 보여주는 움직임입니다. 그러면서 커세어는 오버로드를 잡으러 맵 곳곳을 휘젓지요. 이런 패턴을 잘 아는 김윤환이 먼저 승부수를 띄웁니다. 히드라리스크 두 기를 김택용 몰래 3시 지역로 이동시키고 럴커로 변태합니다. 저글링은 스피드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는 상황이기에 추후에 공격하면 된다는 판단입니다.
◇STX 김윤환의 회심의 일격! 저글링이 먼저 들어가서 캐논 2개를 모두 깨뜨리고 유유히 럴커가 버로우됩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김윤환은 이겼다고 생각하겠죠?
김택용이 김윤환의 꾀에 빠져 듭니다. 질럿 5기와 드라군 한 기가 김윤환의 7시 본진 쪽 앞마당에서 농성을 하다가 11시로 이동하는 순간 김윤환에게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저글링 한 부대 반과 럴커 2기가 김택용의 앞마당 입구 지역으로 뛰어듭니다. 저글링은 캐논 두 기를 연파하고 럴커는 곧바로 자리를 잡습니다. 프로토스의 병력이 회군을 하기에는 타이밍상으로 늦었고 운 없게도 로보틱스가 앞마당에 건설되면서 저글링의 공격에 파괴됩니다. 럴커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질럿을 세워 놓은 뒤 아콘으로 강제 공격하면서 스플래시 데미지로 잡든지, 캐논으로 시야를 확보한 뒤 병력으로 잡아내든지 두 가지밖에 없어 보입니다.
◇김택용의 입모양을 잘 보세요. '아'라는 모습이 그대로 보입니다. 허를 찔렸다는 표정입니다.
이 타이밍에 김택용은 '아'라는 짧은 탄식을 터뜨립니다. 졌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가 있는 탄식입니다. 럴커 2기가 앞마당에서 공격을 계속하고 저글링이 포위 공격까지 하게 되면 넥서스가 터져 나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저도 기록지에 '김택용 8연승 마감'이라고 적어 놓았죠.
그렇지만 여기에서 김윤환의 욕심과 김택용의 현실적인 운용이 오버랩됩니다. 김윤환은 럴커 한 기만 앞마당 지역에 배치하고 저글링과 럴커 한 기는 본진에서 공격을 시도합니다. 김택용의 냉철한 판단과 환상적인 컨트롤이 여기에서 발휘됩니다. 미네랄 필드 쪽으로 럴커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프로브 두 기로 길을 막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파일런 하나를 지으면서 럴커를 가둬 버립니다. 본진 안 쪽에 캐논을 지어 놓은 김택용은 손쉽게 럴커 한 기를 잡아내면서 앞마당과 본진의 자원 채취가 동시에 마비되는 불상사를 미연에 예방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센스! 앞마당 지역에서 럴커가 공격하자 하이템플러 두 기를 아콘으로 합체합니다. 캐논을 두드리고 있던 럴커는 촉수 공격을 아콘으로 이동시켰고 그 타이밍에 캐논이 완성되면서 럴커를 모두 잡아냅니다.
럴커와 저글링의 난입을 허용한 상황에서도 김택용의 커세어는 김윤환의 오버로드를 사냥하러 맵 전역을 누빕니다. 비록 많은 수의 오버로드를 잡아내지는 못하지만 히드라리스크가 폭발적으로 생산되는 기반은 일단 제거합니다.
불과 1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김택용의 세 가지 판단이 완벽하게 들어맞으면서 김윤환의 혼을 실은 럴커와 저글링 난입은 모두 막힙니다. 저는 기록지에 적어 놓은 '김택용 패'라는 글자 위에 볼펜을 올려 놓았습니다.
히드라리스크로 전환해서 입구를 두드리려는 김윤환의 다음 스텝은 공격력과 스피드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김택용의 질럿에 의해 저지됩니다. 앞마당에서 프로브 피해도 거의 입지 않았고 옵저버까지 확보된 김택용은 곧바로 역러시를 선택합니다.
◇빈집 털이를 막아낸 김택용이 김윤환의 럴커 8기가 변태되는 장소를 장악하고 질럿으로 포위하는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또 결정적인 장면이 연출됩니다. 11분40초 정도에 김택용은 11시 공터에서 변태되고 있는 럴커 에그를 질럿으로 감쌉니다. 추격전을 펼치던 질럿과 다크 템플러가 에그를 포위했고 변태가 완료되는 타이밍에 사방으로 흩어져서 럴커를 일거에 몰살시킵니다.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김윤환의 어깨에 힘이 빠지는 순간이지요. 이후 김택용은 김윤환의 11시 확장 기지를 예리하게 파고 들면서 방어 건물과 히드라리스크, 럴커, 오버로드를 모두 잡아내고 역전승을 거둡니다. '김택용 패'가 '프로리그 9연승'으로 바뀐 순간입니다.
◇김택용의 트레이드 마크인 커세어가 유유히 11시 지역의 오버로드를 사냥하는 장면. 김택용의 역전승이 확정된 순간입니다.
이 경기를 요약하자면 김택용의 멀티 태스킹 뿐만 아니라 멀티 판단력이 김윤환의 다채로운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고 하겠습니다. 두 군데 동시 타격에 들어가려던 김윤환보다 두 군데를 동시에 막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김택용이 먼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지요. 자원줄이 끊어지는 것을 모두 막아낸 김택용은 질럿을 폭발적으로 생산해냈고 허탈감에 빠진 김윤환이 마음을 추스릴 새도 없이 흔들어대며 완벽한 카운터를 날린 셈입니다.
오랜만에 눈이 정화되는 경기를 봐서 그런지 글이 길어졌습니다. 앞으로 '핀포인트' 많이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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