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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KT로 돌아온 박정석 "나를 믿겠다"

[피플] KT로 돌아온 박정석 "나를 믿겠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30세 넘어도 현역으로 뛰고파

프로게이머들은 자신감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이 글자는 스스로 자(自)와 믿을 신(信), 느낄 감(感)자를 쓴다. 스스로 믿고 있다는 느낌이다. 자기를 믿는 마음이 생겨야만 어떤 일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심리 스포츠라고 불릴 정도로 객관적인 실력 뿐만 아니라 고도의 정신력이 요구되는 e스포츠 선수들에게는 자신감만큼 중요한 요소도 없다.

지난달 제대하고 KT 롤스터에 현역 선수로 복귀한 박정석도 자신감을 강조했다. 2002년 스카이 스타리그 우승 이후 타이틀과는 인연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 털어 놓으면서 "나를 믿지 못했다"고 고백한 그는 "30대에도 선수로 뛰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 대신 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밝혔다.
17일 KT 롤스터가 5연패로 1라운드를 마감한 날 강남역의 한 음식점에서 병역을 마치고 청년을 넘어선 박정석을 만났다.

[피플] KT로 돌아온 박정석 "나를 믿겠다"


◆죽겠어요
박정석과의 인터뷰가 예정된 시간은 오후 7시. 강남역에 위치한 KT 롤스터의 연습실로 찾아갔다. 일본의 한 TV 매체가 프로게임단을 촬영하고 있어 번잡한 듯했지만 공통적인 정서가 선수들의 얼굴을 관통하고 있었다. 5연패. 지난 시즌 1라운드부터 다른 팀들을 압도하면서 위너스리그 우승, 정규 시즌 우승, 최종 결승전 우승을 달성한 KT 롤스터의 모습은 사라지고 지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닌가라는 공포심이 선수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영호의 인터뷰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던 박정석의 얼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왠지 불안했다. 인터뷰 장소로 향하던 도중 박정석이 우연인지, 의도인지 기자에게 먼저 물었다.

"제가 제대한 이후 1승도 못했어요. 알고 계셨나요?"

알고 있었다고 답하자, 한숨을 내쉬더니 "공군 에이스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에요. 그런데 다른 점은 2008년에 제가 합류했을 때에는 경기에 출전해서 연패를 이어가든, 이기든 제 손으로 뭔가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 당장은 KT에 그럴 수 없으니 답답해요."라고 말했다.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09-10 시즌 KT의 우승을 지켜보면서 '내가 저 자리에 있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수십번도 더 했던 박정석이다. 제대한 뒤에 KT에 복귀했을 때에는 팀 성적이 좋았는데 돌아오자마자 연패에 빠지니 '나 때문인가'라고 수없이 고민한 박정석이다.

[피플] KT로 돌아온 박정석 "나를 믿겠다"


◆공군에서 나를 돌아보다
제대 축하와 KT 복귀 기념 인터뷰의 형식을 띄고 있었기에 공군 에이스에서의 생활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정석은 "공군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제대하고 난 뒤에도 말할 수 없다"며 딱 부러지게 말했다. 이름처럼 '정석'아니랄까봐 또 바른 생활 사나이 티를 낸다.

하는 수 없이 공군에서 얻은 점과 아쉬웠던 점을 물었다. 박정석은 "공군 에이스는 군인의 입장과 게이머의 입장에서 모두 100점을 원하는 조직"이라는 말로 압축해서 답했다. 프로게이머의 신분으로 군에 들어갔지만 군인의 타임테이블이나 역할 체계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는 점이 사회 생활과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리그를 마치고 밤 늦게 부대에 복귀하면 곧바로 군인의 입장이 되면서 야간 근무나 내무 생활 등에 곧바로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프로리그에서 성적도 잘 내야 한다는 압박감은 프로게이머들과 다를 바 없다.

"군인으로서도 100점, 프로게이머로서도 100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 공군 에이스 선수들의 입장이에요. 부대에 들어가면 다른 병사들이 부러워하지요. 사회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갔다가 팬들로부터 선물도 받고 코에 사회 공기를 마시고 온다고요. 그렇지만 저희는 부대에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시즌 중에는 주말 휴식을 거의 반납하고 대회에 출전하고 시즌을 마치고 나서도 다음 시즌 준비하느라 마음 놓고 쉬지도 못하거든요."

군에 가면 남자가 달라진다고 하던데 박정석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공군 입대 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군인의 '스멜'을 이미 느꼈기 때문일까. 공군 에이스로 활동할 당시 박정석이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계자는 한 명도 없었다. 제대하고 나서도 약간 군기가 잡혀 있는 듯한 말투나 행동을 보면서 바른 생활 사나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군에서 많은 것이 달라졌죠. 가슴 아픈 이별도 겪었고, 평생 겪어 보지 못할 일도 겪었고요. 유격도 치렀죠. 큰 일을 몇 차례 치르다 보니 저를 돌아보게 됐어요. 제가 속한 공군 에이스라는 환경, e스포츠라는 시장에 대한 고민들을 하면서 감사하고 고마워하면서 지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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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KT
10월말 제대하고 휴식기 없이 KT 롤스터에 복귀한 박정석은 어정쩡한 입장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10월말에 제대한 대학생이라면 내년 3월 개강에 맞춰 아르바이트를 하든지, 전공 공부를 하든지 준비하는 기간을 겪었겠지만 박정석은 11월 로스터에 포함되면서 주변을 정리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제대하고 KT 연습실에 여장을 풀고 대회 준비에 들어갔는데 느낌이 묘한 거에요. 며칠 뒤면 공군에 돌아가야 할 것 같았어요. 휴가 받은 기분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연습에 집중을 못했죠."

제대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박정석은 강도경 코치에게 기분을 물어봤다. 공군 에이스 1기 전역병인 강 코치는 "나에게 부적응이라고는 없었다"고 너스레를 떨다가도 "제대하고 나서는 2~3개월 정도 중간자처럼 떠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설명하며 박정석에게 위안을 줬다.

박정석이 KT에 돌아온 뒤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낀 부분은 후배들의 성장한 모습을 본 것이다. 2008년 군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우정호, 박재영, 김대엽, 고강민 등은 연습생 티를 갓 벗으면서 1군에 포함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던 선수들이었다. 이영호도 경기 내적으로는 맹위를 떨치고 있었지만 박정석이 항상 '꼬꼬마'라고 부를 정도로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09-10 시즌 맹활약하면서 팀을 우승시켜 놓은 뒤 우정호는 주장을 맡았고 다른 선수들도 중견 이상이 되어 있었다. 이영호는 개인리그 결승에 모두 진출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다.

"우정호와 이영호가 정말 많이 컸어요. 지금 주장을 맡고 있는 정호는 제가 군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소극적인 선수였어요. 실력이 한창 늘 때였는데 성격으로 인해서 지체되어 보였죠. 그런데 2년 사이에 프로토스 에이스라고 불리울 만큼 훌륭한 선수가 됐고 주장을 맡으면서 밝아지고 활달해졌어요."

박정석은 이영호에 대해서도 말을 이었다. "영호가 팀에 처음 들어왔을 때 16살이었어요. 팀에 일찌감치 적응시키려고 제 룸메이트로 삼았죠. '꼬꼬마'라고 부르면서 숙소 생활에 대해 알려줬더니 금세 동료들과 잘 어울리더라고요.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저보다 게임 실력에서 한참 앞서고 키도 저보다 커요. 말 그대로 많이 컸어요."

◆오영종과의 동병상련
2008년 9월에 공군에 입대한 에이스 소속 선수는 박정석과 오영종, 한동욱이다. 이 가운데 한동욱은 가정 사정으로 인해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더 할 수 없게 됐고 박정석은 KT, 오영종은 화승으로 원대복귀했다.

공군에서 활동할 때 박정석과 오영종은 프로토스 투톱이었다. 공군에 합류하자마자 좋은 성적을 내면서 이미지 개선에 큰 공을 세운 선수들이다.

"공군에 있을 때 오영종이 아마 저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을 거에요. 프로리그에 나가면 영종이가 정말 성적을 잘 냈는데 내부 평가전에서는 저한테 많이 졌거든요. 초중반에 유리하게 나가다가 대규모 전투에서 꼭 영종이가 무리를 해요. 그러면서 역전패를 당하죠."

그 때문인지 공군 에이스의 에이스 자리를 오영종이 차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석의 이름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래서 원톱 오영종이 아니라 프로토스 투톱으로 불렸다.

최근 박정석과 오영종은 동병상련을 겪고 있다. 제대 이후 팀이 연패에 빠진 것이다. KT와 화승 모두 11월 이후 좋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다. 팀이 3연패쯤 당했을 때 오영종으로부터 문자가 왔단다. '팀에서 눈치가 보이는 듯하다. 내가 돌아온 이후 이기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박정석도 같은 상황에 빠진 상태여서 '나도 똑같은 처지다'라고 답장을 했단다.

"화승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오영종과 맞대결을 해보고 싶어요. 팀 안에서 입지를 굳힌 뒤에 이런 말을 해야 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인터뷰에서 질러보고 싶네요. 공군 에이스 내부 평가전에서 보여줬던 박정석의 뒷심을 프로리그 무대에서 발휘하고 싶습니다."

[피플] KT로 돌아온 박정석 "나를 믿겠다"


◆자신감 배양기
KT에 합류한 뒤 어정쩡한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최근 박정석은 경기 감각을 살리기 위해 후배들과 함께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 30대에도 프로게이머 현역으로 뛰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이름만 현역이 아니라 매 시즌 10승 이상 해낼 수 있는 선수로 남기 위해서다.

"공군에서 선수로 활약할 때에도 다른 선수들에게 크게 뒤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이가 들면 손이 느려지고 판단이 뒤떨어진다고 예전 선배들이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공군에서도 체계적으로 훈련을 하면서 그런 상황은 극복했다고 봅니다."

박정석은 30대 이후에도 선수로 뛰기 위해서 갖춰야 할 조건으로 자신감을 강조했다. 자기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자기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자는 선수로서 성공하기 위함이고 후자는 사회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함이다.

"선수는 실력을 믿어야 하죠. 공군 때 스타리그 36강에 올라간 적이 있는데 구성훈 선수와 경기하면서 제가 저를 믿지 못하는 상황을 겪고 나니까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사회인으로서 의미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저를 못 믿는데 남이 저를 어떻게 믿겠어요."

이제 갓 팀에 합류한 박정석은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조바심을 내면서 출전 기회를 잡았다가 실패하기 보다는 진득한 마음으로 내실을 갖춘 뒤 성공 사례를 쓰겠다는 뜻이다.

"나를 믿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하려면 실력을 갖춰야 하잖아요. 후배들과 함께 절차탁마하고 있으니 KT 롤스터와 박정석 모두 관심있게 지켜봐주세요."

인터뷰를 마치자 박정석은 기자에게 야구 좋아하냐고 물었다. e스포츠만큼이나 야구에도 관심이 많은 기자는 그렇다고 답했고 박정석은 강남역에 위치한 야구 연습장으로 데려갔다. 동전을 넣고 배트를 휘두르는 그의 모습이 하루 이틀 와본 것 같지는 않아 배팅 연습을 평소에 자주 하냐고 물었다.

"연습 끝나고 마음이 답답할 때 자주 와요. 아직 이기는 경기보다 지는 경기가 많아서 그런지 자주 답답해지더라고요. 야구 연습장을 찾지 않을 때가 오겠죠."

thenam@dailyesports.com
사진=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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