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e-sports

[e만사] '던파리그의 어머니' 임나혜 PD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진심 담은 리그는 빛을 본다

데일리e스포츠는 'e스포츠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기획 인터뷰 'e·만·사'를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편집자 주>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중심인 e스포츠에서 국산 게임 리그를 꾸준히 개최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게임의 수명이 길지 않은데다 게임 개발사나 퍼블리싱사 모두 e스포츠를 단순히 이벤트성 마케팅 툴로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4년째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 리그를 전담으로 연출하며 리그를 키워가는 사람이 있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성보다 더 고된 일을 척척 해내고 있는 던파리그 임나혜 PD가 그 주인공이다.

던파리그 선수들은 임 PD를 ‘엄마’라고 부른다. 단순히 리그를 연출하는 PD가 아니라 리그를 만들고 발전시켜 나가며 선수들에게 미래를 제시하는 일까지 맡고 있는 임나혜 PD. 그가 걸어온 험난하고도 힘들었던 길을 지금부터 돌아보자.

◆게임보다 사람이 좋았어요
여자가 게임 PD를 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게임, 특히 e스포츠는 스포츠의 특성을 띄고 있다보니 남성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임 PD도 그랬다. 게임의 ‘게’자도 몰랐던 그는 우연히 온게임넷에 입사했다.

"애니메이션을 워낙 좋아해 사실 투니버스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아는 분이 투니버스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다고 해서 일해보려 했는데 갑자기 그 자리가 차고 온게임넷이라는 곳에 자리가 비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쉬웠지만 어차피 방송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어서 부딪혀 보자는 생각에 하겠다고 말했죠. 그 때가 대학교 3학년이었을 거에요."

'e스포츠 아이콘' 임요환이 누군지도 몰랐고 그 어떤 게임도 접해본 적이 없었던 그는 우연처럼 온게임넷과 인연을 맺었다. 관심도 없던 게임 방송 분야에서 어떻게 8년이나 묵묵히 일할 수 있었을지 그 동기가 궁금해졌다.

"저도 게임 쪽에서 일할 것이라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런 결과가 놀랍기도 해요(웃음). 게임은 몰랐지만 온게임넷은 사람이 좋은 직장이었어요. 지금까지 제가 이 회사를 다니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지금 서든어택을 연출하고 있는 김기호 PD가 그때 조연출 대장이었는데 제가 우울해 하고 있으면 불러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죠. 다른 직장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사람 냄새가 나는 회사였고 그 점이 저를 설레게 했죠."

임 PD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학교로 복귀하고 나서도 학교 끝나고 분당으로 매일같이 출근했다. 물건을 나르는 일부터 시작해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다. 먼 곳까지 매일 출퇴근 하는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열정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저를 지켜보시던 한 PD님이 제 이름을 스크롤에 넣어 주시더라고요. 프로그램이 끝난 뒤 스태프들 이름이 쭉 나오는데 거기에 제 이름이 뜨는 것을 보고 울컥 했어요. 그때 알았죠. 방송 일은 제 천직이라는 사실을."

게임의 ‘게’자도 모르던 임나혜 PD와 온게임넷의 인연은 사람을 매개체로 이어졌다.

◆마지막 동앗줄 던파리그
조연출 시절 챌린지리그, 듀얼토너먼트 등을 지켜보며 오랫동안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따라만 가는 느낌이 들었던 그는 국산 게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조연출 마지막 시절 카트리그를 통해 국산 게임의 가능성을 엿봤기 때문이다.

"조연출에서 드디어 PD가 된 뒤 가장 처음 맡았던 리그가 '퀸오브카트라이더 리그'였어요. 내가 무언가 만들어 가는 느낌이 좋았죠. 모든 것이 새로웠고 선수들에게 캐릭터를 주고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작업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하지만 점점 슬럼프에 빠지게 됐죠."


퀸오브카트리그를 하면서 임나혜 PD는 충격을 받았다. 여자이기 때문에 여성부 리그를 더 잘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오히려 예전 남자 PD보다 선수들을 더 예쁘게 그려내지 못했다고. 재능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냈다. 일을 그만둘 생각까지 한 그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던파리그를 맡았다.

"PD가 된 뒤 처음으로 맡았던 프로그램이 ‘후비고’라는 예능이었는데 제가 연출하기 전에는 잘 나가던 장수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맡자마자 시청률이 곤두박질 치더니 결국은 폐지됐어요. 그때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이후 퀸오브카트를 연출하면서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 뒤 패배의식에 젖어 들었어요. 그만둘 생각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맡게 된 것이 던파리그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시작했던 던파리그.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매달린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던파리그를 국산 게임 리그 중 단연 최고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에게 던파리그는 단순한 국산 게임 리그가 아니라 동앗줄이었고 희망이었으며 의미였다.

◆던파리그를 키운 8할은 선수들
e스포츠 관계자들은 임나혜 PD를 보고 성공한 PD라고 칭찬하지만 정작 본인은 운이 좋은 PD라고 말한다. 던파리그를 만든 것은 자신이 아니라 선수들이라고 단언한다. 좋은 선수들이 던파리그에 참가해 줬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고 자신은 그 선수들의 가능성을 끌어 올린 것밖에 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저만큼 운이 좋은 PD도 없을 겁니다. 1차 리그 때는 ‘과테말라 미친 늑대’라는 별칭을 얻은 백창훈이 리그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줬어요.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백창훈은 알아서 과격한 세리머니를 하면서 상대 선수를 도발하고 리그를 보는 사람들까지 흥분시키는 재주가 있었죠. 현장을 찾은 관객들이 함께 호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백창훈의 과격한 세리머니에 영감을 얻은 임 PD는 던파리그를 버라이어티한 리그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굳혔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다양한 세리머니를 주문하고 각 선수들마다 캐릭터를 부여해 역동적이고 흥이 나는 리그를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도 던파리그의 세리머니는 그 어떤 e스포츠 리그보다 박진감 넘치고 흥미롭다. 게임과 엔터테인먼트까지 아우르는 리그를 만들자는 취지는 결국 백창훈이라는 선수가 만들어 준 것이다.

"백창훈을 보면서 정신이 바짝 들고 난 뒤 앞으로 어떤 리그를 만들어 가야 할지 머리 속에 그려지더라고요. 조종실에서 나온 뒤 선수들이 '피디님, 저 잘했죠?'라며 웃는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웃음). 이후 선수들에게 받은 영감을 꼼꼼히 기록해 놓고 리그에 반영하곤 하죠. 만약 선수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던파리그는 없었을 겁니다."

◆선수들에 대한 미안함
처음 던파리그를 시작하면서 임나혜 PD는 선수들에게 "2년만 같이 고생하자"고 약속했다. 프로게이머를 하는 것만으로도 돈 벌이가 되게끔 후원금도 받을 수 있게 기반을 닦아주고 싶었다는 그였지만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잡고 있던 선수들을 하나둘 떠나 보내며 제 몸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1차 리그부터 4차 리그까지 함께 해주며 리그를 만들어 나갔던 백창훈, 장웅, 박정완, 장석훈, 이도형, 이형주 등 1세대 선수들에게 지금까지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요. 2년 기다리라 해놓고 결국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군대를 보냈죠. 그때는 2년이 지나면 무언가 이뤄질 줄 알았거든요."

선수들에 대한 미안함과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무력감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는 그는 그저 방송만 꾸리면 되는 PD가 리그 전반을 고민하고 선수들의 장래까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던파리그가 왜 성공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임 PD의 진심이 담긴 던파리그가 선수들과 시청자들을 움직인 것이다.

인터뷰 도중 전화가 울렸다. 주머니에서 두 개의 휴대폰을 꺼내던 임 PD는 "왜 휴대전화가 두 대냐"는 기자의 질문에 "하나는 던파 선수들 전용 휴대전화"라고 알려줬다. 선수들의 고충을 들어줄 전용 휴대폰까지 장만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의 진심이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얼마 전에 던파리그 4관왕인 김현도 선수가 전화를 했어요. 무슨 이야기를 할지 잔뜩 긴장을 했는데 난데없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하고 끊더군요. 한동안 멍 했어요. 이런 말을 할 선수가 아니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놀라더라고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어요. 뿌듯한 마음에 그날은 하루 종일 행복했답니다."

선수들은 임나혜 PD가 선수들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릴지 모르지만 사실 그는 회사에서 너무 선수들만 생각한다고 구박 받고 있다. 티를 내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선수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던파리그를 키우는 것은 결국 선수들을 키우는 작업과 같다고 볼 수 있어요. 단순히 상금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진심을 담아 더 열심히 뛰어야겠죠?"

던파리그를 '보는 재미가 있는 리그'로 만들고 싶다는 그는 누군가가 "이런 게임을 가지고 리그를 하느냐"라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명품리그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3월에 김현도가 군대에 가면 이제 던파리그에서 네임드(유명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다시 1차리그 때로 돌아가는 거죠. 세대교체가 된 지금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던파리그가 e스포츠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선봉에 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던파리그 많이 사랑해 주세요."

임나혜 PD와 인터뷰를 하면서 e스포츠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리그를 사랑하는 진심이 아닐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sora@dailyesports.com


<Copyright ⓒ Dailygame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데일리랭킹

1젠지 5승 0패 +7(10-3)
2한화생명 4승 1패 +4(8-4)
3디플러스 기아 3승 1패 +4(7-3)
4농심 3승 2패 +2(7-5)
5T1 3승 2패 +2(7-5)
6BNK 2승 3패 0(7-7)
7OK저축은행 2승 3패 -3(5-8)
8KT 1승 4패 -5(4-9)
9DRX 1승 4패 -5(3-8)
10DNF 0승 4패 -6(2-8)
1
2
3
4
5
6
7
8
9
10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