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팀플레이 전담 선수서 플레잉 코치 거쳐 지도자로2월 스포 프로리그가 마지막…3월 결혼 후 군입대하이트 엔투스는 지난 9월 CJ 엔투스와 하이트 스파키즈라는 두 개의 프로게임단이 합병되면서 새로이 탄생한 팀이다. 김동우 감독을 중심으로 하이트 스파키즈의 코칭 스태프였던 주진철, 전태규를 받아들였고 CJ 엔투스 출신 이재훈, 손재범 코치까지 합세하면서 10개 프로게임단 가운데 코치가 많은 편에 속한다. 합병 이후 하이트 엔투스는 감독 이하 모든 코칭 스태프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으로 구성된 독특한 이력을 갖게 됐다. 이 가운데 주진철 코치의 경우 스타크래프트와 스페셜포스를 모두 맡으면서 분주하게 뛰고 있다. 특히 스타크래프트와 스페셜포스 모두 프로리그가 열리는 토요일이면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스타크래프트 선수였고 플레잉 코치를 거쳤던 선수가 스페셜포스 팀을 진두지휘하며 포스트 시즌까지 올려 놓은 사정을 들어보자.
◆해처리의 아버지에서 팀플레이의 아버지로주진철이 현역 선수로 명성을 날렸던 시기는 거의 10년 전이다. 2001년 iTV 랭킹전 3차 리그를 통해 혜성같이 등장한 주진철은 저그 종족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 선수로 꼽힌다. 어느 종족을 만나든 일단 해처리를 늘린 이후 중후반전에서 엄청난 병력을 쏟아내면서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드는 플레이로 유명했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해처리의 아버지'였다. 지금은 5~6개의 해처리에서 병력을 양산하는 시스템이 안정화됐지만 10년전 주진철의 플레이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주진철은 넷아이비(netivy), 인터우드를 거쳐 이명근 감독이 이끌던 KOR에 합류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소규모 기업을 만나 후원을 받았지만 IT 업계의 거품이 빠지던 시기여서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부도가 나버린 상태에서 주진철은 게이머로 남고 싶은 생각에 친분을 갖고 있던 전태규, 윤정민, 조병호 등이 속한 KOR에 합류했다."팀에 들어가고 나서 팀 단위 리그가 생겼어요. MBC게임은 승자연전방식의 팀리그를, 온게임넷은 팀플레이가 포함된 프로리그를 만들었죠. 한 2년 정도 분리된 리그로 진행되다가 2005년에 프로리그로 통합되면서 방식이 하나가 됐죠."개인전에서 빼어난 능력을 보이던 주진철이었지만 단지 저그라는 이유로 팀플레이를 도맡았다. 저그가 없는 팀플레이는 상상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주진철은 중책을 맡았다. 초반에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종족이 저그였기 때문이다."팀플레이를 맡다 보니 개인전 감각이 점차 떨어지더라고요. 저만 살자고 못하겠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팀 구성원이 4~5명 정도밖에 안되던 초창기였기 때문에 전담을 했죠."리그 초창기 조병호, 전태규 등과 호흡을 맞추던 주진철은 이후 신정민, 이승훈, 차재욱, 안상원, 한동원 등 5명이 넘는 선수들과 팀플레이를 함께했다. 2003년부터 2006년 막바지까지 5년 동안 팀플레이를 주로 담당하면서 거의 100 경기에 육박하는 공식전을 소화했다. 팀플레이의 아버지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이 과정에서 주진철은 우승도 한 차례 경험했다. 스카이 프로리그 2004 3라운드 결승전에서 당시 정규 시즌 전승으로 결승에 올라온 KTF 매직엔스(현 KT 롤스터)를 상대로 4대3으로 승리하면서 프로리그 우승이라는 첫 감격을 맞았다.
◆선수에서 코치로2004 시즌 우승을 발판 삼아 KOR은 온게임넷과 손잡고 스파키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고참 축에 들었던 주진철은 코치직을 맡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한 차례 고사했다. 플레잉 코치라는 자격으로 후배들과 함께 현역 생활을 더 하고 싶었던 그는 1년 동안 신정민, 이승훈 등과 호흡을 맞추면서 활동했다. "2006 시즌을 마치고 돌아보니 제 나이가 26살이더라고요. 안정적인 지원을 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더 이상 선수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나이 어린 선수들과의 경쟁도 부담이 됐죠. 회사에서도 코치만을 맡아주길 원했고 개인적으로도 게임 보는 눈 하나만큼은 여전하기에 후배를 키우는 일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코치로 자리를 옮겨서도 주진철의 담당은 팀플레이였다. 당시 변성철이 개인전에 대한 코치를 맡기로 하고 주진철은 팀플레이, 오상택은 2군 선수 육성을 맡았다. 어찌 보면 전공을 찾아 전담시킨 것이다."팀플레이 전담 선수를 하면서 아까운 선수들이 몇 명 있어요. 신정민과는 오래도록 호흡을 맞췄는데 계약이 되지 않으면서 팀을 떠났고 박명수를 팀플레이용으로 키워 놓았더니 개인전 능력이 워낙 뛰어나 다른 선수를 뽑아야 했고 이진성이라는 저그를 팀플레이에 눈 뜨게 했더니 개인적인 사정으로 은퇴를 하더라고요. 개인전과 팀플레이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였어요."그러다가 만난 선수가 김광섭이다. 2007년 프로리그 팀플레이를 휩쓴 김광섭과 원종서 조합을 만든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다. 프로게이머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건인 손 빠르기가 갖춰져 있었고 그 속에서도 섬세한 컨트롤이 가능했기에 대성할 것으로 점쳐졌고 실제로 원종서와 호흡을 맞추면서 프로리그 정규 시즌 11연승을 달리면서 최고 조합으로 남아 있다."김광섭을 육성하면서 팀플레이에 있어서는 이만한 선수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런데 프로리그 방식이 바뀌면서 팀플레이 부문이 없어져 버렸죠. 광섭이도 더 이상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은퇴해버렸어요."팀플레이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았던 선수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주 코치의 역할은 자연스레 개인전으로 전환됐다. 팀플레이의 아버지라는 별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하이트 엔투스로의 합병과 스페셜포스2010년 9월 하이트 엔투스로 두 개의 게임단이 합병된 이후 주 코치는 스타크래프트와 스페셜포스를 모두 맡았다. 비중은 3대7 정도로 스페셜포스에 치중되어 있었다. 김동우 감독을 비롯, 전태규, 이재훈, 손재범이 스타크래프트 팀을 주로 담당했고 주 코치는 스페셜포스를 전담했다. "하이트 스파키즈 시절 여성 선수만으로 스페셜포스 팀을 꾸렸을 때부터 깊숙히 관여했죠. 선수들에게 스페셜포스를 배워 가면서 코치 일을 맡았죠. 배우기 시작한 1주일 동안은 3D 그래픽만 보면 구역질을 할 정도였는데 서서히 나아지더라고요."주 코치는 하이트 엔투스 스페셜포스 팀이 될 때까지 서너 차례의 부침을 겪었다. 야심차게 여성 멤버만으로 스페셜포스 팀을 꾸렸던 초창기를 지나 서지원을 제외하고 모두 남성으로 전환한 뒤 포스트 시즌을 경험하는 등 좋은 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렇지만 리더를 맡았던 김상엽의 군입대로 또 다시 전력이 약화되며 침체기를 맞았고 정준환과 유성철, 박성운, 도민수, 조경훈으로 구성된 지금의 팀까지 이어져 내려왔다."얼마나 험난한 세파를 겪었는지 몰라요. 선수단을 꾸릴 때 실력 중심으로 편성하더라도 불협화음이 생기면 말짱 도루묵이거든요. 두세 차례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스페셜포스야 말로 정말 팀워크가 필요한 종목이구나'라고 깨달았어요. 스타크래프트에서 두 명이 팀플레이를 할 때 느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죠."팀플레이 전담 선수로 5~6명의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던 경험이 스페셜포스 팀을 운영할 때도 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실력 중심으로 팀을 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5명이 신뢰하면서 의존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이 스페셜포스의 특징임을 3년 동안 느낀 주 코치는 현재 하이트 엔투스 스페셜포스 선수들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갖고 있다."잘난 선수는 한 명도 없어요. 정준환이 2년 가량 함께 했는데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나이 많은 선배들과 부딪혀가며 시행착오를 경험했죠. 유성철이나 박성운은 아처라는 클랜팀에서 활동했지만 다른 선수들보다 저평가됐죠. 도민수, 조경훈도 마찬가지에요. 빼어나지는 않아도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하나가 되어 가고 있어요. 팀워크가 형성된 거죠."이렇게 믿고 의지하는 팀을 만들기까지 6개월이 걸렸지만 아직 완성본은 아니다. 아니 완성본은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주 코치의 설명이다. 팀워크에 정답은 없고 평생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종의 미 거두고파주진철이 코치 생활을 시작한 2007년 이후 온게임넷 스파키즈는 우승 트로피를 안지 못했다.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1에서 한동욱이 우승을 차지했지만 주진철은 코치가 아니라 선수로 활동하고 있었고 2008년 신한은행 프로리그에서는 정규 시즌 막판 6연승을 달리면서 기적과 같이 막판 포스트 시즌 티켓을 거머쥐었고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결승전까지 올라갔지만 삼성전자 칸에게 무너지면서 고배를 마셨다. 또 박카스 스타리그 2009에서는 박명수가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이제동에게 0대3으로 패하면서 키워낸 선수가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참 상복이 없는 팀의 코치였어요. 제가 키워낸 선수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 한 번의 기회가 오지 않더라고요. 특히 삼성전자와의 프로리그 결승전에서는 저희가 당연히 이길 것이라 생각했어요. 연승을 달리면서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고 또 다시 이기면서 모든 선수들이 기세가 대단했지만 결국 2등이더라고요."오는 12일부터 열리는 생각대로T 스페셜포스 프로리그 2010 시즌2 포스트 시즌에 그가 거는 기대는 대단하다. 나이도 꽉 찼고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하이트 엔투스의 코칭 스태프로 뛰는 마지막 시즌이기 때문이다."오는 3월20일에 결혼식을 올려요. 그리고 나이가 벌써 서른이 넘었기 때문에 군에 가야 합니다. 다녀온 뒤라면 몰라도 군에 가기 전에 제가 벤치에 앉는 마지막 리그가 스포 프로리그 포스트 시즌이에요."향후 계획을 말하는 동안 주 코치의 목소리에는 서글픔이 배어 나왔다. 10여 년 동안 e스포츠계에서 머물면서 크게 이룬 것이 없고 6년 동안의 코치 생활을 통해서는 더욱 없다는 회한이 담겨 있었다. 2년 여 동안 e스포츠계를 떠나야 하는 주 코치의 바람은 지도한 선수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이번 스페셜포스 포스트 시즌에서 하이트 엔투스가 우승하는 모습을 본다면 더 없이 기쁠 것 같아요. 그리고 공익 근무 요원으로 활동하는 동안에 우리 팀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이 광안리 결승전에 간다면 병가를 내는 한이 있어도 지켜볼 것에요. 팀의 일원으로써 팀워크가 완성되는 모습을 한 번은 봐야죠. 평생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달콤한 결과물을 얻는 일은 나쁘지 않잖아요."정든 e스포츠 업계를 2년 여 동안 떠나야 하는 주진철 코치의 바람이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thenam@dailyesports.com사진=박운성 기자 photo@dailyesports.com◆관련 기사 하이트 주진철 코치 3월20일 화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