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스토리] SK텔레콤 권오혁 "함께 커가는 재미"](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102151838570039968dgame_1.jpg&nmt=27)
프로 스포츠의 불문율 가운데 감독이나 코치에 관한 사례 중 가장 유명한 문구는 '성공한 선수가 반드시 성공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글이다. 선수 시절 스타 플레이어로 많은 돈을 벌고 유명세를 얻은 사람이 코치나 감독이 되어 팀을 우승의 반열에 올려 놓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한국의 사례를 보면 프로야구에서 삼성 라이온즈 선동렬 감독, 프로농구에서 KCC 허재 감독 등이 반대의 좋은 예이지만 최고의 감독으로 추앙받는 사람들은 선수 시절 어려움을 겪었거나 스타의 대열에는 끼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e스포츠계에 입문한지 8년차, 코치직을 맡은지 2년차인 SK텔레콤 T1 권오혁 코치는 분명 성공한 선수는 아니다. 개인리그 본선 2회 진출, 프로리그 개인전 1패, 팀플레이 25회 출전이 프로게이머 시절 경력의 전부다.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SK텔레콤 T1에서 초라한 성적을 가진 선수가 코치직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권오혁 코치가 분명 성적 이외의 다른 요소를 갖고 있다는 다른 말이다.
권오혁 코치는 SK텔레콤 T1의 대표 테란 정명훈이 박카스 스타리그 2010에서 삼성전자 송병구를 꺾고 우승한 기사에 이름이 언급됐다. 프로토스를 전담으로 맡고 있는 그가 정명훈의 우승에 기여한 일은 특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정명훈=최연성'이 연상되는 상황에서 뜬금 없는 일이다.
"정명훈이 신인 시절 저는 팀의 허리를 맡고 있었어요. 1군과 2군을 오가던 시점이었죠. 정명훈이 프로토스전 연습 상대가 필요하다고 할 때 참 많이 도와줬던 기억이 나요. 코치로 변신을 하고 나서 명훈이가 결승전에 올라갔는데 상대가 삼성전자 송병구 선수더라고요. 정명훈의 우승을 위해 도와주고 싶었고 전력 분석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송병구가 스타리그 결승전 상대로 정해지기도 전에 권 코치는 분석에 들어갔다. 이번 시즌 송병구가 치른 테란전 VOD를 모두 연구했고 비슷한 패턴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최연성 코치와 정명훈에게 전달했고 SK텔레콤의 테란 라인이 일단 대응책 마련에 돌입했다.
"전력 분석을 마친 뒤에는 우리 팀 프로토스들에게도 내용을 전달했어요. 송병구 선수의 테란전 패턴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정명훈과의 연습에 임하라고요. 송병구의 패턴과 그렇지 않은 패턴을 섞어가면서 결승전 대비책을 짰고 3대0 완승이라는 결과를 얻었죠."
권 코치는 "짜릿한 순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연습 과정에서도 완성도가 높았다고 자체 판단했고 내심 3대0 승리를 예견했는데 결과로 도출됐기 때문. 또 10-11 시즌 SK텔레콤 T1이 갖고 있던 목표 가운데 하나가 개인리그 우승자 배출이었고 조기에 달성한 것도 쾌감의 이유였다.
◆연습생만이 아는 훈련 노하우
"아마추어 신분으로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던 시절이었죠. 다른 종족전은 엉망이었는데 테란전만큼은 자신 있었어요. 친분을 갖고 있던 김성제로부터 최연성의 연습 상대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성심을 다했죠. 최연성 코치가 우승했으니까요."
최연성의 소개로 SK텔레콤에 연습생으로 몸담은 권오혁은 이후 SK텔레콤 테란 선수들이 프로토스전을 치를 때마다 연습 상대가 됐다. 임요환의 So1 스타리그 4강과 결승전 스파링 파트너도 권오혁이었다.
"일단 상대가 정해지면 VOD를 보고 공통점을 찾아요. 거기에 맞춰 기본 연습을 하죠. 동시에 해당 맵에서 특이한 전략이 없을까 같이 논의합니다. 그러면서 전략이나 운영 방법 등을 수정 보완하죠. 연습생 때부터 몸에 밴 패턴이에요."
스타 플레이어는 되지 못했지만 스타 플레이어의 그림자가 될 줄 알았던 권오혁은 동료들과의 원만한 관계 형성과 특유의 친화력을 통해 주장까지 역임했다. 08-09 시즌 SK텔레콤 T1이 광안리 결승전에서 우승했을 때 가운데에서 우승컵을 들고 있었던 인물도 그였다.
◆밑바닥 정서
08-09 시즌을 마친 SK텔레콤은 코칭 스태프 보강을 시도했다. 프로토스를 맡았던 박용욱이 해설 위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프로토스를 담당할 코치가 필요했다. 주장으로서 팀의 화합을 유도했던 권오혁에게 제안이 왔고 받아들였다. 선수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던 그는 다른 몸을 통해 최고의 오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수락했다.
"선수 시절 보잘 것 없는 처지였어요. 주전이 되기 전에는 오랜 연습생 기간을 거쳤고 프로리그에서는 팀플레이를 전담했죠. 팀플레이가 사라진 이후에 개인리그에 두 차례 올랐지만 32강 탈락이 전부였죠. 최고를 노리는 선수들에게 제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가 고민이었던 시점이었습니다."
권 코치는 SK텔레콤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박용운 감독을 롤모델로 삼았다. 선수 경험이 없는 박 감독이 MBC게임 히어로에서 코치로 4년 동안 활동했던 모습을 첫 발을 내딛는 자신의 코치 생활에 접목시키기로 했다. 코치로서 희로애락을 경험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팀에서 맡아야 할 지위를 찾았다.
"테란을 맡은 최연성 코치가 우승자 출신이기도 하고 실력이 출중하잖아요. 우승자로서 최고가 되는 법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압니다. 차지훈 코치는 하이트 스파키즈에서 코치로 활동하면서 광안리 결승전에 올라가보기도 했고 주력 저그들의 육성법을 알아요. 저는 밑바닥 정서로 접근하기로 했어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오랜 2군 생활을 통해 다양한 경험, 특히 좋았던 기억보다는 아프고 슬프고 지우고 싶은 애환이 많았던 그이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누구보다도 온라인 연습생, 또는 2군 훈련생, 1군과 2군을 오가며 자리를 잡지 못하는 선수들의 심리를 잘 알았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선수들에게 어필했다. 권 코치가 택한 이 전략은 성공했고 자칫 1등주의에 빠질 수 있는 팀의 저변을 아우르면서 효과를 냈다.
![[코치 스토리] SK텔레콤 권오혁 "함께 커가는 재미"](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102151838570039968_4.jpg&nmt=27)
◆함께 성장하고 있다
SK텔레콤 T1 연습실을 가보면 코치들이 자기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다. 아예 PC가 없을 때도 있다. 선수들의 연습석 옆에 PC를 설치하고 함께 게임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선수로는 은퇴했지만 코치로서 최근 트렌드나 선수들의 경기력을 직접 상대하면서 체감하겠다는 뜻으로 선수들과 함께 훈련한다.
"함께 성장하는 종족을 만들기 위해 선수들과 자주 게임을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에요. 프로토스 가운데 저그전을 가장 잘하는 선수는 김택용이에요. 제가 김택용의 플레이를 직접 보고 설명을 들어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은 아니더라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패턴을 익히죠. 그걸 도재욱, 정윤종, 정경두 등 프로토스 선수들과 공유합니다. 김택용이 직접 알려줄 수도 있지만 훈련 일정이 바쁘니까 제가 매개체가 되어 알려주는 거죠. 도재욱의 테란전도 마찬가지에요. 보고, 이야기하고, 전달하고. 이 패턴이죠."
김택용과 도재욱이라는 최고의 플레이어를 보유한 SK텔레콤 T1은 유망주를 두 명이나 발굴해냈다. 프로리그에서 9승을 거두면서 신인왕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정윤종과 박카스 스타리그 2010 16강까지 진출한 특이한 헤어 스타일의 정경두다. 권 코치는 두 명의 신인이 첫 등장부터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선보인 이유에 대해 앞서 설명한 훈련법 덕분이라고 했다.
"좋은 선배가 있으면 다 빼먹어야 해요. 모범 사례가 있으면 다 받아들여야 하고요. 코치가 직접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잘 전달하고 잘 배우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제가 하는 일이에요. 이를 통해 선수들이 함께 성장하면 팀도 성장하거든요. 김택용과 도재욱의 자양분을 받아 정윤종과 정경두가 크는 것처럼 말이죠."
◆T1 프로토스끼리 결승전했으면
권오혁 코치가 매개체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SK텔레콤 프로토스 라인은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09-10 시즌 부진했던 김택용이 34승을 기록하면서 프로리그 다승 1위에 올랐고 정윤종은 신인왕 후보로 꼽히고 있다. 정경두는 스타리그에서 16강까지 오르는 등 파란을 이어갔다. 도재욱이 최근 부진하지만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기량을 업그레이드하는 중이다.
"프로리그 10-11 시즌 우승이 팀 전체의 목표입니다. 코치로 처음 일을 시작했던 지난 시즌 KT에게 패하면서 남겼던 아쉬움을 떨쳐내야죠. 프로토스 라인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 뿌듯함에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을 물었더니 잘못 알아들었는지 프로토스 종족에 대한 바람을 밝혔다. 개인리그 4강이 김택용, 도재욱, 정윤종, 정경두로 채워졌으면 한다는 것이다.
"김택용이 이적한 뒤에 많은 분들이 도재욱과 붙으면 누가 이기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우리 팀 프로토스 주전 네 명이 4강이 오르고 김택용과 도재욱이 결승에서 대결하면 실시간으로 보실 수 있을 거에요. 그 날이 오면 저는 객석에 앉아서 편하게 관전을 즐기렵니다."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