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스토리] 삼성전자 유지강 "벌써 7년"](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102251903430040497dgame_1.jpg&nmt=27)
e스포츠라는 단어가 널리 알려진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수많은 우승자가 탄생하고 프로게임단의 숫자도 크게 늘었다. 기업이 후원을 하며, 선수들도 연봉을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경기를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감독과 코치라는, 기존 스포츠의 틀과 비슷한 직업이 탄생했다.
과거 감독들은 선수가 아니었다. 게임을 좋아하던 형에서 게이머들을 하나둘씩 모아 팀을 만들었고 조직적으로 관리를 시작하면서 감독이라는 이름을 단 경우가 많다. 코치라는 자리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감독보다는 나이가 어리지만 게임을 좋아하고 선수들을 키울 욕심이 있는 사람들로 뽑았다. 1호 코치인 서형석 전 SK텔레콤 코치를 시작으로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지 않은 코치들이 팀을 이끌었다.
'벌써 일년'이라는 브라운아이즈의 노래 제목을 패러디하자면 벌써 7년이다. e스포츠가 갖고 있는 어떤 매력이 그를 7년이나 함께하게 만들었을까.
◆정규직도 거절하고 받아들인 코치직
유지강은 정규 모집 과정을 거쳐 프로게임단에 들어왔다. 2005년 삼성전자가 게임단과 함께할 인물을 뽑는다는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한 그는 3개월 가량 합격 통지를 받지 못했다. 전역한 뒤 일자리를 잡았고 6개월 가량 일하면서 '수습 딱지'를 뗄 찰나 삼성전자로부터 콜이 왔다. 프로게임단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고민됐죠.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계약서를 쓰자고 언질을 받은 뒤에 삼성전자에서 함께 일하자고 했으니까요.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보면서 군 생활을 했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궁금했어요. 그들과 함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규직 자리를 버리고 삼성전자로 갔죠. 젊을 때 도전적인 일을 하자는 뜻이었어요."
삼성전자는 당시 프로게임단의 규모를 한창 키워나갔다. 2004년 김가을 감독을 영입했고 변은종, 박성준, 이창훈 등을 영입하면서 성적을 내보자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갓 들어간 유지강에게는 매니저라는 직함이 붙었다. 선수들을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말이 매니저이지 친형이었어요. 24시간 선수들과 같이 했죠. 숙소에서 동고동락했고 낮에는 게임단 관련 업무, 밤에는 선수들 고민 상담을 하며 보냈죠. 그러다 보니까 금세 친해졌어요.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최인규, 김근백과는 친구처럼 지냈고 다른 선수들에게는 형이라 불렸죠.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본 회사 분들이 전문적으로 코치를 해보자고 제안했고 흔쾌히 승낙했어요. 게임단에서 제 청춘을 불살라보기로 했죠."
심지어 휴가까지 함께 가면서 선수들과 친분을 쌓은 그는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파악했다. 여자 친구 문제나 가정 환경, 학교 등등 모르는 것 없이 꿰찼고 인정받기 시작했다. 비록 선수 출신처럼 게임을 직접 가르치지는 못하지만 함께 고민하고 상대팀 선수들에 대한 분석 자료를 공유하면서 선수들과 함께 성장했다.
![[코치스토리] 삼성전자 유지강 "벌써 7년"](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102251903430040497dgame_2.jpg&nmt=27)
◆쉽지 않은 적응기
2005년 입문한 e스포츠는 문턱이 상당히 높았다.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선수들을 보유한 감독들은 새로 들어온 유 코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기업 게임단 체제가 아니었기에 스태프 한 명 고용하기 어려웠던 시절, 감독들이 갖고 있는 유일한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유 코치는 생경한 분위기에 위축되기도 했지만 다른 팀 코치들로부터 설명을 들은 뒤에는 이해하게 됐다고.
"감독님들이 선수들을 직접 이끌고 다니던 시절이었어요. 숙소에서는 선수들 연습을 챙겨야 하고 경기장에 직접 데리고 오고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후원사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던 때였죠. 그러던 차에 삼성전자라는 기업에서 신입을 채용했다니까 샘이 나셨던 것 같아요. 제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팀 코치들과도 자주 모임을 가졌다. 각 팀에서 핵심으로 활동하던 코치들도 대부분 선수 출신이 아니던 시기였기에 유 코치는 자연스럽게 막내 자격으로 참가했고 술 한 잔씩 나누면서 코치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나 선배 코치들의 노하우를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저도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까 공감대가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지금은 협회로 간 분도 있고 감독을 하고 있는 분도 있지만 당시에는 모두 코치였거든요. 그분들에게 참 많이 배웠어요."
유지강 코치는 삼성전자 칸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했다. 김가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보좌하면서 제2회 KeSPA컵 스타크래프트 부문 단체전 우승을 함께 경험했고 2005 시즌 프로리그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도 함께 했다. 2007년과 2008년 광안리 결승전 우승의 기쁨도 선수들과 함께했다. 김 감독과 유 코치가 호흡을 맞춘 뒤로 삼성전자는 프로리그에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팀으로 성장했다.
"프로리그에서 우승할 때에는 그동안의 고생이 한 순간에 씻은 듯 사라지는 것을 느껴요. 2007년 광안리 우승 때 한 번 맛을 들이고 나니까 중독처럼 또 우승이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선수들과 함께 새벽까지 지새워가면서 연습하고 전략을 구상하고 상대팀 엔트리를 분석해도 전혀 힘들지 않아요. 먼 발치에서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이기고 내려오는 선수를 끌어 안는 기분은 최고였죠."
단체전에서 우승을 함께하는 것도 좋았지만 유 코치가 가장 짜릿함을 느낀 순간은 2008년 인크루트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송병구가 우승할 때였다. 정명훈과의 결승전에서 2대0으로 이기다가 2대2가 됐고 마지막 세트에 정신을 차린 송병구가 3대2로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 코치는 존경심까지 들었다고 했다.
"정말 멋있어 보였어요. 병구가 제가 들어온 2005년부터 대회에 나가기 시작했거든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노력했고 흘린 땀의 가치를 개인리그 결승전 무대에서 수확하는 모습을 보면서 존경스럽기까지 했어요. 어린 나이이지만 자기가 원하고 꿈꾸던 자리에 섰잖아요. 전율을 느끼면서 저도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어요."
◆업계 성장 절실
유 코치가 e스포츠 업계에 들어온 이유는 성장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스타크래프트를 보기 시작했고 군에 다녀와서도 선수들이 여전한 인기를 끌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고속 성장할 수 있는 분야이고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에 뛰어 들었다.
"프로게임단이 기업과 손을 잡으면서 탄탄해지고 코칭 스태프나 선수 숫자가 늘어나는 모습을 봐오면서 뿌듯했어요. 저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여러 가지 이슈가 불거지면서 위축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네요."
유 코치는 한국이 종주국이라 자부하는 e스포츠 시스템이 전세계로 뻗어나길 기대하고 있다. 한국이 만들어낸 표준 모델이 세계 각지로 뻗어나고 감독 이하 코칭 스태프나 선수들이 세계를 누비면서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지길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시장은 수요가 제한적이잖아요. 이 곳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세계에 한국 e스포츠 관련 인사들이 뻗어 나가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어요. 태권도나 양궁처럼 말이죠. 그 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역 코치 가운데 두 번째로 경력이 오래된 사람다운 생각이다. 유 코치의 기대가 현실이 되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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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운성 기자 phot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