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안녕하십니까.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입니다.
지난 번에 위너스리그 결승전 마지막 경기인 5세트에 대한 분석 기사를 썼을 때 참으로 많은 분들이 의견을 주셨습니다. 세트 스코어에 따른 경기 분위기나 김택용이라는 상대에 대한 부담감 등에 대해서는 공감하셨지만 맵 데이터에 대한 언급은 하지 말아달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김택용의 팬들은 실력으로 이긴 것이지 맵이 좋아서 이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으셨을 것이고 이영호를 응원하는 입장에서는 '아즈텍'이라는 맵이 프로토스에게 너무나도 유리하기 때문에 시작부터 김택용에게 기운 상태에서 경기를 치렀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경기도 맵의 유불리가 극명하게 엇갈려 있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담겨 있는 매치업입니다.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룩스 히어로 센터에서 열린 ABC마트 MSL 32강 B조 승자전인데요. 삼성전자 칸 차명환과 하이트 엔투스 신상문의 대결입니다.
◇드론을 한 기도 뽑지 않고 순수하게 4드론 체제를 선택한 차명환.
차명환은 지난 시즌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삼성전자의 에이스 저그로 떠올랐고 신상문은 저그를 잘 잡기로 유명한 테란입니다. 최종 성적에 대한 차이는 있지만 실력적으로는 대등하다고 봐도 무방할 상황입니다.
경기는 맵에서 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선수가 맞붙은 전장은 '라만차'였죠. 테란이 저그를 상대로 10승4패로 크게 앞서 있습니다. 저그가 세 번째 개스 기지를 가져가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는 반면 테란은 주위에 배치된 미네랄 확장과 3, 6, 9, 12시 개스 기지를 차지할 경우 늦은 타이밍에 메카니으로 전환하기도 매우 좋은 맵입니다.
◇반면 배럭도 없이 앞마당에 커맨드 센터를 먼저 지은 신상문.
맵 데이터의 압박이었을까요. 차명환이 먼저 승부수를 띄웁니다. 주어진 미네랄 50조차도 사용하지 않은 차명환은 드론 4기만으로 152의 자원을 모아 200이 넘은 상황에서 스포닝풀을 건설합니다. 일단 스포닝풀 건설 타이밍을 최대한 앞당기고 드론 한 기를 충원한 차명환은 저글링을 뽑아 승부를 걸었습니다. 오버로드를 1시로 보내 신상문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차명환은 저글링 2기를 7시로 보내면서 정찰을 완료했습니다. 저글링 8기를 모아 5시에 위치한 신상문의 진영으로 보냈을 때 차명환은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신상문이 더블 커맨드 전략을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신상문의 전략을 확인해보죠. 경기 시작 이후 2분 여 동안 신상문은 서플라이 디폿 하나를 건설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미네랄을 400까지 모아 앞마당 지역에 커맨드 센터를 지은 신상문은 150을 더 채취한 뒤에 배럭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차명환의 저글링이 5시로 뛰기 시작하고 배럭을 둘러싼 SCV를 사냥하고 있다.
◆더블 커맨드를 이기지 못한 4드론
사실상 차명환의 저글링이 앞마당에 등장했을 때 신상문이 항복을 선언할 수 있었던 상황입니다. 배럭은 아직 절반도 지어지지 않았고 차명환의 저글링은 본진에 들어와 배럭을 짓던 SCV를 공격했으니까요. 신상문은 앞마당 확장 기지를 취소했고 SCV를 동원해 수비에 나섰습니다. SCV 숫자가 많고 체력이 저글링보다도 많았기에 수비를 하려면 간신히 막을 수는 있었겠습니다만 프로게이머간의 전투에서 컨트롤을 하기 시작한다면 공격 유닛을 갖고 있는 쪽이 훨씬 유리하기에 차명환 쪽으로 크게 기울었습니다.
그렇지만 차명환이 한눈을 팔기 시작하면서 신상문에게도 기회가 생겼습니다. 배럭만 계속 두드려서 취소를 시키든지, 파괴했다면 무조건 이기는 상황이었지만 차명환은 신상문의 SCV를 잡기 위해 저글링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신상문에게는 딱 한 번 기회가 찾아온 셈입니다. 신상문은 저글링에게 공격당하는 일꾼을 빼돌리면서 차명환의 저글링을 막아냈고 그러는 사이에 배럭이 완성됐습니다. 신상문은 미네랄 필드 근처에 벙커를 지었고 머린까지 뽑으면서 벙커에 입성시켰습니다. 저글링만 뽑던 차명환으로서는 최악의 방어진이 형성된 것이지요.
이후 경기는 신상문에게 매우 유리하게 흘러갔습니다. 드론 충원을 거의 하지 않고 공격에 매달렸던 차명환은 머린과 메딕, 파이어뱃으로 구성된 테란의 병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신상문의 커맨드센터 주위에 벙커가 지어지고 있다.
◆돈키호테 같았던 차명환
차명환이 이와 같은 전략을 구상한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일단 승자전이라는 자리가 도박적인 빌드 오더를 강요하는 요인이라 생각됩니다. 지더라도 한 번 더 경기할 수 있는 승자전은 패해도 부담이 덜합니다. 그리고 차명환은 1차전에서 STX 김도우를 꺾고 올라왔기에 최종전에서 김도우를 또 만나도 자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박재혁이 올라온다면? 저그전 결승전을 치렀던 차명환의 자신감이 있기에 만만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5드론을 택한 두 번째 이유는 '라만차'라는 맵이 가진 특수성 때문입니다. 중장기전을 치를 경우 테란의 메카닉 전환이나 쌓여가는 바이오닉 병력의 양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테란이 10승4패로 저그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은 차명환에게 극단적인 빌드 오더를 택하도록 압박하는 요인을 제공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직한 4드론 플레이를 선택한 차명환은 '돈키호테'와도 같았습니다. 드론 한 기를 뽑아 놓고 5드론 체제를 구사하더라도 저글링의 생산 타이밍은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차명환은 시작할 때 주어지는 미네랄 50까지도 아끼면서 스포닝풀을 지었습니다. 이는 보여주기 위한 요식행위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뒤늦게 앞마당에 해처리를 짓는 차명환.
정직한 4드론을 구사한 차명환은 한 차례 판단 미스를 하면서 승기를 내줬습니다. 앞서 설명했지만 배럭만 계속 두드리면서 SCV 사냥을 했어야 하는 상황에서 SCV를 잡으러 이동했던 것이 패착이었습니다. 건물이 지어지지 않으면 머린도 나오지 못하지만 SCV를 모두 잡으며 이기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차명환은 풍차를 괴물로 생각하는 돈키호테의 입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돈키호테'라는 소설이 '라만차'라는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점은 모두 아실 것입니다. '라만차'라는 맵에서 차명환이 '돈키호테'와 같은 플레이를 해버린 거죠.
◇신상문의 머린이 메딕의 치유를 받으며 올라가고 있다. 앞마당에 지어져 있는 성큰 콜로니를 무시하고 언덕 위로 올라간 바이오닉 부대.
◆준우승자로서의 부담
차명환에게 이 경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조를 만드는데 힘을 합쳤던 지난 대회 우승자 신동원이 2승으로 16강에 오른 상황에서 차명환이 탈락할 경우 책임을 모두 지어야 하는 처지였던 거죠.
어떤 수를 쓰든지 16강에 가야 했던 차명환은 전략의 선택까지는 훌륭했습니다. 도저히 이기지 못할 것 같았던 맵이라면, 데이터를 뒤집을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면 4드론을 써야 했겠지요.
그렇지만 대각선이라는 위치와 이겼다고 생각한 순간 찾아온 집중력의 저하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준우승자라는 위엄을 찾아보기에는 너무나도 안일했던 판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