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핀포인트'에서 다룰 경기는 지난 21일 열린 2011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5조 경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승자전 SK텔레콤 T1 정명훈(사진)과 웅진 스타즈 윤용태의 경기를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맵은 '라만차'였죠. 프로토스나 테란 모두 상대 종족을 맞아 할 만한 맵입니다. 최근 프로토스가 특이한 빌드 오더를 몇 차례 꺼내 들면서 테란을 골탕 먹이고 있는 전장입니다.
◇윤용태가 정명훈의 앞마당 지역에 배치된 벙커를 드라군 6기로 공격하고 있다.
◆머린 사거리 업도 막지 못한 드라군 숫자
윤용태가 먼저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상대방의 진영을 확인한 윤용태는 게이트웨이를 2개까지 건설하고 드라군을 계속 생산했습니다. 1, 3, 5기 등 홀수로 늘어나는 드라군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풀어가겠다는 의미를 담은 플레이였죠. 윤용태가 이러한 빌드 오더를 택한 이유는 정명훈이 1차전에서 선보인 사거리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벙커의 수비를 무위로 돌리기 위함입니다.
드라군이 계속 모이자 윤용태는 정명훈의 입구 지역을 두드렸습니다. 서플라이 디폿 옆에 벙커를 지은 정명훈은 머린 4기를 넣어 놓은 뒤 사거리 업그레이드를 시도했습니다. 1차전에서 KT 강현우를 상대로 이와 같은 빌드 오더를 사용한 정명훈은 톡톡히 재미를 봤습니다. 강현우가 머린의 사정거리가 업그레이드된 것을 모르고 덤벼들었다가 드라군 한 기를 잃으며 손해를 봤죠. 윤용태가 덤벼 들 때에도 정명훈은 드라군을 잡아내면서 이득을 챙길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윤용태의 드라군은 2개의 게이트 웨이에서 생산됐기 때문에 정명훈이 예측한 것보다 숫자가 많았습니다. 7기의 드라군을 모은 뒤 치고 들어온 윤용태는 급하게 수리하러 정명훈이 SCV를 동원하자 일점사를 통해 일꾼을 대거 잡아냈습니다. 수리의 원칙상 공격하는 드라군 숫자와 벙커를 수리하는 SCV의 숫자가 같아야 하지만 SCV 숫자가 줄어들면서 벙커의 체력은 급속도로 줄어들었고 결국 파괴됐습니다. 탱크 한 기로 버티던 정명훈은 윤용태의 일점사에 의해 탱크가 앞마당에서 수비를 하지 못하고 언덕 위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커맨드 센터와 배럭이 모두 본진으로 이동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벙커를 파괴한 윤용태가 정명훈의 앞마당 확장 기지를 띄울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퍼부었다.
◆꼼꼼함이 부족했던 윤용태
7기의 드라군 가운데 2기를 잃고 5기를 살려낸 윤용태는 정명훈의 앞마당 지역을 계속 압박했습니다. 정명훈이 언덕 위에 탱크를 배치하고 시즈 모드를 하면서 서서히 방어 영역을 넓혔지만 윤용태는 드라군을 계속 충원하면서 압박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윤용태가 앞쪽 조이기 라인을 탄탄하게 갖춘 이유는 앞마당과 3시 확장 기지를 동시에 가져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초반 드라군 공격을 통해 유리한 고지를 점한 프로토스가 당연히 얻어가는 이점이었죠.
◇게이트웨이를 8개까지 늘린 윤용태(위)는 정명훈의 벌처 견제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실제로 윤용태는 앞마당과 3시 지역을 동시에 확보했고 파일런으로 입구를 좁히면서 유리하게 풀어갔습니다. 정명훈이 9시 지역으로 벌처를 우회시켜 여러 차례 3시 지역을 공략하려 했지만 쉽게 방어했습니다. 그러면서 본진에서는 8개까지 게이트웨이가 늘어갔죠. 힘으로 압도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윤용태에게는 꼼꼼함이 부족했습니다. 정명훈이 벌처로 견제를 해봤자 얼마나 하겠냐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테러리스트의 진면목
정명훈이 프로토스전에서 강점을 가졌던 이유는 전략도, 타이밍도 아니었습니다. 벌처로 프로토스의 빈틈을 계속 찌르면서 프로브 숫자를 줄이고 진격 타이밍을 늦추는 것이 트레이드 마크였죠. 이러한 벌처 견제를 통해 정명훈은 '테러리스트', '정라덴'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윤용태와의 경기에서도 정명훈은 벌처가 생산되는 족족 견제를 떠났습니다. 특히 프로토스가 당연히 가져가야하는 확장 기지인 3시를 집중 공략했습니다. 그러나 용이하지 않았죠. 이미 윤용태가 파일런으로 이동 경로를 봉쇄했고 드라군을 갖추면서 방어진을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정명훈은 타깃을 앞마당으로 전환했습니다. 세 번의 3시 공략이 무위로 돌아가자 본진과 이어진 앞마당 지역으로 벌처를 이동시킨 정명훈은 희망을 찾았습니다. 벌처 3기를 12시로 부터 우회시켜 윤용태의 본진에 난입한 정명훈은 7기의 프로브를 잡아냈습니다. 이어 한 번 더 벌처를 움직였지만 윤용태의 드라군에 의해 모두 잡힌 정명훈은 9시 지역으로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우회해 윤용태의 앞마당에 들어갔습니다.
◇정명훈의 벌처가 윤용태의 앞마당에서 일하던 프로브를 몰살시켰다. 와이어 프레임에 잡힌 벌처가 14킬을 기록했다.
타이밍도 절묘했습니다. 윤용태가 질럿을 생산해 앞마당 쪽에 집합하기 직전 3기의 벌처가 앞마당에 난입했고 한 기는 잡혔지만 2기를 한 조로 묶어 프로브를 잡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일점사를 통해 프로브를 잡아낸 정명훈은 벌처를 돌리면서 윤용태의 앞마당에서 일하던 프로브를 전멸시켰습니다. 스피드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질럿이 있었지만 좁은 앞마당을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프로브를 찍어 잡았습니다. 질럿의 칼이 닿기 전 이동하면서 체력을 세이브했고 프로브만 사냥하는 모습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총알을 피하던 모습을 연상시키기 충분했습니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해설자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벌처가 사냥하던 프로브의 숫자를 세다가 한 부대가 넘어가자 남은 프로브를 세기 시작했고 미네랄을 채취하는 프로브가 모두 사라지자 정명훈에게는 "와"하는 함성을, 윤용태에게는 "아"하는 아쉬움의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만큼 정명훈의 벌처 2기는 승부를 가르기에 충분한 견제를 했다는 뜻입니다.
◇프로토스의 앞마당을 초토화시킨 정명훈은 드롭십으로 3시를 공략하며 쐐기를 박았다.
◆드롭십 쐐기타
앞마당 지역만 피해를 입었으면 윤용태가 후반전을 도모할 수 있었겠지만 정명훈은 한 번 물어 버린 고기를 절대로 놓지 않는 하이에나 같았습니다. 벌처로 윤용태의 앞마당을 공격하면서 정명훈은 드롭십까지 쓰려 했습니다. 그러나 벌처로 프로브를 완파하자 굳이 앞마당에 병력을 떨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정명훈은 드롭십의 기수를 3시로 돌렸습니다. 탱크 한 기와 벌처 2기를 떨군 정명훈은 신나게 프로브를 잡아냈습니다.
◇벌처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3시 입구를 막아놓은 파일런이 드라군에게는 장애물이 되어 버렸다.
윤용태가 벌처 견제를 막기 위해 두 곳의 입구를 파일런 3기씩 6개로 완벽하게 틀어 막은 것이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했습니다. 벌처 사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드라군은 수비하러 오기 위해 파일런을 깨야 했기에 질럿만 보냈지만 정명훈이 마인을 심어 놓았고 질럿은 단체로 마인을 밟으면서 체력이 급속도로 저하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윤용태는 견제에 대한 수비를 포기하고 정면 돌파를 시도했지만 탱크가 한 부대 넘게 갖춰진 정명훈의 방어선 앞에서 드라군은 파란색 아이스크림으로 변했고 질럿은 산화했습니다.
◇경기를 포기한 윤용태가 정명훈의 앞마당에 모든 병력을 쏟아버리고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너무 늦어 버린 포기 타이밍
윤용태가 이길 수 있는 타이밍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정명훈의 벌처가 앞마당에 들어가기 직전 윤용태는 셔틀을 갖췄고 질럿을 태웠습니다. 옵저버로는 정명훈의 언덕과 앞마당 지역의 방어진을 확인했습니다. 이 때 밀고 들어갔다면 윤용태가 분명히 이겼을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타이밍에 밀고 들어갔다면 정명훈의 벌처가 컨트롤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싹쓸이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정명훈의 앞마당에 배치된 탱크 병력이 시즈 모드를 풀고 진출을 도모하던 타이밍에 치고 들어갔다면 승자는 윤용태가 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윤용태는 러시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했고 벌처에 휘둘리면서 대역전승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습니다.
정명훈의 세심한 벌처 컨트롤을 칭찬해야 하겠지만 윤용태의 상황 판단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남는 경기였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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