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칸 허영무가 준우승 징크스에서 벗어났다.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전쟁 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진에어 스타리그 2011 결승전 SK텔레콤 T1 정명훈과의 경기에서 허영무는 승부의 분수령으로 여겨졌던 1, 5세트에서 캐리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술을 앞세워 역전승을 따내고 데뷔 6년만에 처음으로 개인리그 우승을 차자했다.
허영무는 그동안 개인리그 결승전만 오르면 패했다. 2007년 서울 e스포츠 페스티벌 256강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격파하고 결승에 올랐지만 이제동에게 발목을 잡혔고 2008년 클럽데이 온라인 MSL에서는 SK텔레콤 김택용, 2009년 로스트사가 MSL에서는 KT 박찬수에게 패하며 준우승만 세 번 차지하는 비운의 선수였다.
허영무가 준우승에 머문 이유로 전문가들은 과감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내렸다. 기본기가 잘 다져져 있고 송병구와는 달리 전략적인 면 또한 갖춘 허영무는 승부수를 띄워야 할 때 독하게 마음을 먹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진에어 스타리그 2011 결승전에서 허영무는 판단력과 결단력에서 한층 성장했음을 경기력을 보여줬다. 허영무의 우승이 확정되는 5세트 '패스파인더'에서 달라진 모습이 확실히 부각됐다. 우승을 위해 모자랐던 2%를 채운 허영무의 경기를 분석했다.
◆1세트와 같았다
허영무는 결승전 1, 5세트에 '패스파인더'가 선정되면서 불안감을 느꼈다고 했다. 테란 종족, 특히 정명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허영무는 결승전 진출이 확정됐을 때 우승의 가능성이 다른 대회보다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패스파인더'가 두 세트나 쓰인다고 정해지자 불안해졌다고 했다. 프로토스가 테란의 탄탄한 전진을 꺾기 어렵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허영무가 결승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신경쓴 맵이 '패스파인더'였다. 연습을 지켜본 김가을 감독은 "이 맵만 보면 선수들이 다 토 나온다고 말할 정도로 준비했다"고 우승이 확정된 뒤에 말할 정도였다. 토 나올 정도로 연습한 결과 허영무는 캐리어라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1세트에서 앞마당에 넥서스를 일찌감치 건설한 뒤 드라군을 몇 기만 보여주며 정명훈에게 수비를 강요한 뒤 2개의 스타게이트에서 캐리어를 뽑으며 정명훈을 당황하게 만든 허영무는 낙승을 거뒀다.
승부가 5세트까지 갈 때를 대비해 삼성전자의 벤치에서는 1세트와는 다른 작저을 쓰라고 주문했다. 1세트와는 다른 운영 방식으로 정명훈을 흔들라고 했지만 허영무는 같은 전략을 시도했다. 더블 넥서스에 이은 패스트 캐리어 전략을 또 다시 들고 나왔다.
김가을 감독은 결승전을 앞두고 전체적인 판세를 구성할 때 "SK텔레콤 벤치의 눈치가 상당히 빠르기 때문에 다른 전략을 쓰는 것이 어떠냐고 했고 허영무도 그러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경기에 들어갔을 때 같은 전략을 써서 위기를 맞을 수도 있겠다"고 예상했다.
허영무는 4세트를 마치고 경기석을 떠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듣는 것도 좋지만 현 상황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노력했다. 1세트와 같은 맵이었고 같은 전략을 쓰면 파악될 수 있다고 사전에 감독과 동료들이 이야기를 했지만 허영무는 같은 카드를 꺼냈다. 허영무가 강단이 있음을 보여준 시점이다.
◆강력한 조이기
허영무가 강단을 발휘했지만 김 감독의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드롭십을 사용한 정명훈은 허영무의 캐리어 전략을 일찌감치 파악했고 조이기를 시도하면서 강력한 압박을 펼쳤다. 허영무는 당황한 듯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고 흔들렸다.
정명훈은 탱크와 벌처, SCV를 이끌고 허영무의 본진과 앞마당 지역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3시 지역으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마인을 매설했고 터렛을 이어 나가면서 탱크의 긴 사정거리를 이용해 앞마당 프로브에 피해를 입혔다.
드롭십이 잡히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정명훈은 벌처와 탱크를 실어 날랐다. 벌처의 마인을 매설하면서 본진 지역의 프로브를 사냥했고 탱크로는 스타게이트와 파일런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애당초 2개의 스타게이트를 지은 허영무로서는 스타게이트가 파괴되면서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숫자의 캐리어를 모을 수 없었다.
캐리어가 2기밖에 되지 않았지만 허영무는 프로브를 본진과 앞마당으로 계속 이동시키면서 피해를 줄였다. 인터셉터가 다 차지 않은 상황에서 정명훈의 탱크를 때려야 할 정도로 급박한 시점이었지만 그래도 막아냈다.
전반적인 전황은 허영무에게 좋지 않게 흘러갔다. 정명훈의 인구수는 100을 계속 넘어섰고 허영무는 70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장 많이 격차가 벌어졌을 때 30 정도 차이가 났으니 허영무가 불리한 상황임에는 틀림 없었다.
◆드라군 시선 끌기
1개의 스타게이트에서 캐리어를 모은 허영무는 정명훈의 언덕 너머 탱크 사격에 의해 프로브를 잃지 않는 상황까지 끌어 나갔다. 일단 두 곳에서 자원을 채취할 상황이 됐다는 점만으로 허영무는 위기를 넘겼다.
그동안 모아 놓은 드라군을 앞세운 허영무는 중앙 지역으로 진격했다. 옵저버가 나오기를 기다렸던 허영무는 정명훈의 마인을 치워가며 테란의 앞마당을 급습했다. 정명훈의 전 병력이 프로토스의 앞마당을 타격하기 위해 3시 지역에 모여 있었던 타이밍이었기에 허영무의 공격은 파괴력이 있었다.
이 판단은 허영무에게 우승을 가져다 줬다. 한 부대가 채 되지 않은 드라군의 공격이었지만 정명훈은 본진에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기에 허를 찔렸다. 3시 지역에 배치된 골리앗과 벌처, 탱크가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회군해야 했다. 본진에서 생산된 병력과 함께 막아내려 했지만 질럿 2기를 안으로 던져 넣고 드라군의 피해를 전혀 받지 않은 허영무의 컨트롤로 인해 정명훈의 방어선이 무너졌다.
드라군이 빠져 나가 정명훈의 앞마당을 두드리는 사이 허영무는 캐리어로 정명훈이 조이기 라인에 배치해 놓은 탱크만 잡아냈다. 안정적으로 자원을 채취하게 되자 허영무는 급속도로 인구수 격차를 좁혔다. 드라군이 시간을 끌고 있는 사이 캐리어까지 공격에 동원됐고 언덕을 넘나들며 정명훈의 팩토리와 서플라이 디폿, 골리앗 등을 잡아냈다.
◆삽시간에 역전
드라군 공격이 시작된지 3분이 채 되지 않아 허영무와 정명훈의 인구수가 같아졌다. 한 차례 정면 공격 이후 캐리어와 드라군을 조합한 허영무는 경기 시작 17분 즈음에 중앙에서 대규모 교전을 펼쳤다. 허영무의 주력 병력은 드라군과 캐리어였고 정명훈은 골리앗과 탱크였다. 허영무가 위쪽 넓은 지역에 드라군을 배치해서 캐리어와 함께 공격을 시도했고 정명훈은 세로 방향으로 탱크와 골리앗을 놓아둔 상황에서 교전이 펼쳐졌다.
허영무가 압승을 거뒀다. 정명훈이 다급한 나머지 탱크의 사정거리가 닿지 않는 지역에서 골리앗만으로 드라군을 상대하늘 바람에 허영무가 엄청난 이익을 거뒀다. 탱크의 타격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드라군으로 골리앗의 체력을 빼놓았고 병력이 줄어들자 캐리어로 탱크를 치워낸 허영무는 완승을 거뒀다.
120에 달하던 정명훈의 인구수는 이후 2분여 만에 60까지 떨어졌고 80대를 유지하던 허영무의 인구수는 70대 후반으로 유지됐다. 한 번의 전투로 인해 불리해지자 정명훈은 미네랄과 개스를 모두 1000 이상 남기는 등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7시 지역 미네랄 확장 기지도 잃으며 힘이 빠졌다.
◆정명훈의 두 가지 실책
허영무가 과감하게 드라군을 이동시켜 시선을 빼앗았고 유리한 전장에서 전투를 펼친 것은 분명히 달라진 점이다. 결단력이 나아졌다고 충분히 평가해도 좋은 대목이다.
그러나 정명훈이 크나큰 실책을 범했다. 한 가지는 본진에서 탱크를 생산할 수 있는 애드온 된 팩토리가 하나 뿐이었다는 사실이다. 경기 내내 정명훈은 하나의 팩토리에서 탱크를 뽑았다. 드롭십을 생산해서 휘둘러야 했고 시야 확보를 위해 레이스를 쓰기도 해야 했지만 중반까지 애드온이 하나였다는 점은 패배의 요인이다.
탱크를 생산할 수 있는 팩토리가 하나라는 점은 두 번째 교전에서 정명훈의 힘을 빼놓는 요소가 됐다. 25분 정도 경기가 흐른 시점에 정명훈은 본진 수비를 포기하고 역러시를 감행했다. 허영무의 드라군과 캐리어가 공격을 위해 우회한 사이 중앙 지역을 가로 질러 프로토스의 앞마당으로 진격한 정명훈은 과감하게 탱크를 운영하지 못했다. 프로토스의 앞마당에 이어 2시 지역 넥서스까지 깨뜨릴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명훈은 2시를 남겨두고 마지막 전투를 택해야 했다. 만약 탱크 숫자가 충분했다면 앞마당을 두드리는 동안 한두기만 따로 편성해 2시 넥서스를 깨뜨릴 수 있었지만 언제 다가올 지 모르는 프로토스의 병력에 대한 압박을 느낀 정명훈은 센스 있는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또 하나의 실책은 레이스의 선택이다. 캐리어가 많이 모여 있었고 팩토리가 하나씩 깨져 나가는 상황이었기에 정명훈은 일발 역전을 위해 레이스를 택했다. 그렇지만 이미 허영무가 캐리어로 한 차례 앞마당과 본진을 훑고 지나간 뒤였기에 정명훈의 선택은 너무 늦었다. 허영무가 캐리어를 공격에 처음 동원했을 때부터 레이스를 모았다면-이 때 정명훈의 자원은 미네랄과 개스가 1000 이상 남아 돌았다-프로토스의 지상군과 캐리어가 따로 운영될 때 캐리어를 잡아내면서 반전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허영무가 더 잘했다
결승전을 5세트까지 모두 지켜본 박태민 온게임넷 해설 위원은 "정명훈이 못했다기 보다 허영무가 더 잘했다"고 평가했다. 1세트에서 패스트 캐리어 전략에 무너졌던 정명훈은 어쩔 수 없이 초반부터 흔들기 위해 1팩토리 1스타포트 체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예상한 박 해설 위원은 허영무가 대놓고 더블 넥서스를 했고 캐리어를 일찌감치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드롭십 견제에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막았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했다.
정명훈이 3시 지역을 조이는 데 신경 쓰는 동안 드라군으로 빈집 털이를 시도한 허영무의 판단이 매우 좋았다고 칭찬한 박 해설 위원은 정명훈의 자원이 남았던 것에 대해 "누가 테란으로 플레이를 하든, 정명훈과 같은 운영법을 택했다면 자원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드롭십으로 병력을 떨구면서 레이스로 시야를 확보해야 하고 게다가 터렛을 지으며 탱크를 조금씩 이동시켜야 하는 멀티 태스킹을 하는 상황이라면 테란은 자원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명훈의 손놀림은 정확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빠르기를 중시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태민 해설 위원은 "허영무가 캐리어를 사용하는 전략을 수도 없이 연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두 번 사용해 본 운영법이 아니라는 뜻이다. 테란이 A라는 카드를 꺼내면 이렇게 대응하고, B로 나오면 또 다른 방식으로 무너뜨리는 등 피하는 방법과 치는 방법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박 해설 위원은 "1세트와 똑같은 전략이었지만 운영하는 세부 사항이 달랐기에 정명훈의 기습적인 조이기도 무위로 돌아간 것 같다"며 "정명훈도 우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잘했지만 허영무가 정명훈보다 판단력과 결단력에서 한 발 앞섰고 준비한 전략을 잘 운영했기에 스타리그 우승컵을 안았다"고 분석했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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