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입니다.
스타크래프트가 10년 이상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바로 프로게이머들이 만들어내는 참신한 전략이 존재하고 이 전략들이 계속 돌고 돌면서 또 다른 해법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데일리e스포츠는 스타크래프트에 존재했던 전략의 역사와 최신 트렌드 등을 전달하는 코너를 새롭게 선보입니다. 과거에도 '핀포인트'라는 코너가 존재했지만 한 플레이어의, 한 전략을 고찰하는데 주력했다면 이번부터는 한 전략의 통시적인 흐름들을 알아 볼 수 있도록 새롭게 꾸려 보려 합니다.
첫 번째 칼럼에서 알아볼 전략은 바로 벙커링입니다. 테란의 건물 가운데 방어용을 건설하는 핵심이 바로 벙커입니다. 미네랄 100이 소요되는 건물로, 상대방의 가열찬 공격을 막을 때 유용하게 사용되죠.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를 기획할 때 프로토스에게는 포톤 캐논, 저그에게는 성큰 콜로니, 테란에게는 벙커를 제공했죠.
◇중앙 우측에 보이는 사각형 건물이 바로 벙커입니다.
◆벙커에 대한 이해
사실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있어 포톤 캐논과 성큰 콜로니, 벙커는 수비를 위해 기획된 건물입니다. 유닛만으로 방어를 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서 방어에 특화된 건물들을 제공했는데요.
일단 벙커의 특징부터 알아보죠. 벙커를 건설하는 데에는 미네랄 100이 투입됩니다. SCV를 비롯해 머린, 메딕, 파이어뱃, 고스트 등 바이오닉 유닛이 안에 들어갈 수 있고 공격 유닛들이 들어갔을 때에는 사정거리가 1 가량 늘어납니다. 머린이 벙커에 들어가 있으면 프로토스 드라군의 사정거리가 업그레이드되기 전까지는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머린의 사정거리가 늘어나면서 같아지기 때문에 서로 공격을 당하게 되죠.
벙커의 특징은 수리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수리 기능을 갖고 있는 SCV가 달라 붙으면 건물의 체력을 곧바로 회복시키는데요. 벙커의 기본 체력은 350으로 꽤나 단단한 축에 듭니다. 여기에다 수리까지 진행된다면 초반에는 어지간해서 뚫어내기 어렵지요.
◆벙커는 공격용!
수비용으로 제공된 건물 가운데 벙커가 전략적으로 활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벙커는 아무 곳에나 단독으로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테란 건물의 특징과 궤를 같이 합니다.
프로토스의 포톤 캐논은 파일런이라는 건물에 의존을 해야 합니다. 캐논의 건설 비용이 150인데, 파일런까지 항상 따라다녀야 하니까 실제로는 250의 비용이 들어가는 거죠. 초반 전략으로 사용하기에는 매우 비싼 비용입니다. 또 저그의 성큰 콜로니는 저그가 건물을 지을 수 있는 크립이 퍼져 있어야 하기에 저그와 경기하지 않는다면 초반에 자기 기지 근처밖에 짓지 못합니다.
그러나 벙커는 다릅니다. 테란은 맵의 제한 구역이 아닌 모든 곳에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프로토스도 그러하지만 파일런이 필요한 반면 테란은 자유롭게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벙커는 누구의 기지든 지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 안에 머린이나 파이어뱃 등 공격 유닛만 들어간다면 공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벙커를 활용한 공격법을 만들어낸 임요환. 임요환의 벙커링을 줄여서 '임요벙'이라 부르기도 했죠.
◆벙커링의 창시자, 임요환
벙커를 전략적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공격적으로 활용한 선수는 '테란의 황제' 임요환입니다. 이전까지 벙커는 방어용 건물이라는 생각이 강했지만 임요환은 공격에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참신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벙커링이 첫 선을 보인 것은-물론 이전에도 사용되긴 했습니다만, 가장 극적으로 사용된 경기를 말합니다-EVER 스타리그 2004 4강전이었습니다. 임요환과 홍진호라는 스타크래프트가 만들어진 이래 가장 많은 상대 전적을 보유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을 때였죠.
임요환이 상대 전적에서 한참 앞서 있었지만 홍진호가 서서히 따라잡으면서 임요환이 긴장감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EVER 스타리그 2004 4강전 홍진호와의 1세트에서 임요환이 처음으로 선보인 벙커링 전략. 홍진호는 이 전략을 당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임요환은 4강전에서 벙커링을 핵심 전략으로 들고 나왔습니다. 1세트부터 과감하게 벙커링을 시도했는데요. 배럭을 건설한 이후 머린을 2기까지 뽑은 뒤 SCV 5기를 이끌고 홍진호의 진영으로 치고 들어간 것이지요. 앞마당 지역에 해처리를 짓고 있던 홍진호는 임요환의 특이한 움직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 상황에서 저그의 일꾼인 드론을 이끌고 방어하러 나옵니다.
임요환은 저그의 앞마당 지역에 대놓고 벙커를 짓기 시작합니다. 벙커가 완성되기 전까지 SCV 4기와 머린 2기가 드론을 줄여주고 벙커가 완성되면 머린이 벙커에 들어가면서 앞마당 해처리를 취소시키든지, 깨뜨리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임요환의 전략은 홍진호를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5전3선승제로 진행되는 스타리그 4강전에서 세 번 연속으로 성공했기 때문이죠. 1세트에서 벙커링을 시도하면서 홍진호의 앞마당 해처리를 취소하게 만든 임요환은 2차전에서 완성된 해처리를 벙커로 파괴했고 3차전에서도 또 사용하면서 홍진호와 팬들을 기함하게 만들었습니다.
세 번의 벙커링이 모두 성공했고 그 결과 EVER 스타리그 4강전은 세 세트를 모두 합해도 경기 시간이 30분이 넘지 않는 초유의 대회로 기록됐습니다. 임요환이 결승에 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4강전 2, 3세트에서도 임요환은 홍진호를 상대로 또 다시 벙커링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는 세 경기 통틀어 30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3대0으로 완승을 거뒀죠.
◆임요환은 왜 벙커를 공격적으로 사용했나
당시 경기가 끝난 뒤 임요환은 인터뷰를 통해 벙커링을 공격적으로 사용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저그에게 앞마당 확장 기지를 주지 않겠다는 단순한 의도였습니다.
임요환의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당시 테란과 저그의 플레이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데요. 테란이 저그를 상대할 때 본진 자원으로 플레이하면서 배럭을 늘려야만 치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주된 개념이었습니다. 테란은 자원을 확보하기가 어렵지만 저그는 무난하게 앞마당에 해처리를 펼치면서 2개의 개스를 채취한 것을 바탕으로 럴커와 뮤탈리스크를 모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중앙 지역에서 백병전을 치렀을 때 테란이 유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 임요환은 초반 벙커링을 통해 저그가 앞마당 확장 기지를 가져가지 않는다면 균형이 맞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저그가 앞마당 해처리를 건설한 이후 병력을 생산하는 기초 건물인 스포닝풀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임요환은 이를 역으로 파고든 것이지요.
벙커링을 시도하고 초반에 드론이 수비에 동원되도록 강제만 하더라도 테란으로서는 이익이 된다는 개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저그와 테란전의 맥을 바꾸는 신개념 전략이었습니다.
홍진호와의 스타리그 4강전에서 임요환이 초반 벙커링을 선보이면서 당분간 저그와 테란의 경기에서는 무조건 벙커링을 시도하는 것이 들불처럼 유행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벙커링의 진화 과정과 저그의 수비 전략에 대해서는 2편에서 소개드리겠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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