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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의 핀포인트] 드롭십으로 완성한 '815 대첩'

[이소라의 핀포인트] 드롭십으로 완성한 '815 대첩'
희대의 명경기로 남은 임요환과 도진광의 대전

드롭십 없었다면 대역전이 나왔을까?


지난 주에는 임요환을 지금의 위치로 올려 놓았던 드롭십 전략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드롭십 플레이를 통해 한빛 스타리그와 코카콜라 스타리그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던 임요환. 하지만 임요환은 스타리그를 2회 연속 우승했다는 이유만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닙니다.

포기할 줄 모르는 근성,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경기도 어떻게든 역전하려고 하는 끈기 때문에 팬들은 그에게 열광했던 것인데요. 임요환의 역전 경기에는 항상 드롭십이 함께 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진광이라는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타리그 우승은커녕 4강 진출도 해본 적이 없으며 그렇다고 프로리그에서 주전으로 나섰던 선수도 아니었던 도진광이 유명세를 탄 것은 임요환 때문입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2003년 8월15일 마이큐브 스타리그 16강 섬 맵인 ‘패러독스’에서 펼쳐진 경기 덕이지요. 이른바 '815 대첩'에서 임요환은 도진광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역전극을 일궈냈습니다.

임요환이 그 경기를 역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드롭십 덕분입니다. 만약 도진광이 셔틀 한 기만 보유했다면 임요환이 이길 수 없는 경기였습니다. 도진광은 캐리어를 과도하게 믿은 나머지 셔틀 관리에 소홀했고 임요환은 어떻게든 끈질기게 드롭십을 지켜낸 끝에 경기를 역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경기는 임요환에게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2001년 두 번의 우승 이후 2년 동안 임요환의 성적은 계속 하락세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프로토스를 상대로 좋지 않은 승률을 보여주면서 '임요환 위기설'이 등장한 시점이었죠. 게다가 프로토스를 만나면 힘을 쓰지 못하는 한계에도 봉착한 시점이었죠.

이미 1패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임요환은 도진광과 경기에서 패하면 16강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임요환 입장에서는 절대 질 수 없는 경기였죠. 그래서인지 이 경기에서 임요환은 항복을 선언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순간을 맞이하고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회자되는 '815 대첩'에서 과연 임요환은 어떻게 드롭십 플레이를 펼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섬 맵 필수 유닛 드롭십
'홀 오브 발랄라'라는 섬 맵에서 자신의 장기인 드롭십 플레이를 선보였던 임요환은 이로써 정상의 자리에 두 번이나 올랐습니다. 드롭십을 워낙 좋아하는 임요환은 당연히 섬 맵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겠죠. 마이큐브 스타리그에서 '패러독스'라는 섬 맵이 생겼을 때 전문가들은 '임요환의 맵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소라의 핀포인트] 드롭십으로 완성한 '815 대첩'

◇맵 패러독스

그만큼 '패러독스'는 드롭십 등 수송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맵이었습니다. 프로토스의 경우 캐리어라는 강력한 공중 병력을 보유한 상황이었지만 테란은 체력이 약한 레이스와 자원 소모가 극심한 배틀 크루저를 생산하기 힘든 맵이었죠. 따라서 테란은 프로토스를 상대로 지상 병력과 드롭십 운영으로 이 맵에서 승부를 봐야 했습니다.

드롭십 플레이에 일가견이 있는 임요환 입장에서는 이 맵의 합류가 반가웠을지도 모릅니다. 과감한 드롭십 전략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임요환이 빨리 '패러독스'에서 경기를 하게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날따라 관중석은 팬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그의 멋진 드롭십 플레이를 보기 위해 많은 팬들이 찾은 것이죠.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경기 초반부터 임요환은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드롭십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대를 정신 없이 만들던 임요환의 플레이는 나오지 않았죠. 임요환 입장에서는 1패만 해도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안정적으로 경기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나 봅니다.

[이소라의 핀포인트] 드롭십으로 완성한 '815 대첩'

◇드롭십이 방황하는 모습

임요환은 드롭십을 8기까지 모으면서 한 번의 드롭으로 프로토스를 초토화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도진광의 본진으로 향하지 않고 주위를 배회하던 드롭십을 보던 팬들은 답답할 수밖에 없었죠. 드롭십으로 화려한 플레이를 자주 선보이며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던 임요환의 드롭십 움직임이 둔해지면서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 나왔습니다.

임요환은 8기 드롭십에 태운 골리앗을 도진광의 본진에 내렸습니다. 그러나 임요환의 드롭십 플레이가 너무나 뻔했던 탓일까요? 도진광은 마치 대비하고 있었다는 듯 사이오닉 스톰과 캐리어 몇 기로 이를 방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드롭십 플레이가 아닌 뻔히 보이는 드롭십 플레이로 임요환은 일대 위기를 맞게 됩니다.

드롭십 한 기에는 골리앗 4기가 탑승할 수 있는데요. 8개 드롭십에 골리앗이 꽉 차있었으니 골리앗 32기가 순식간에 사라진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섬 맵이 아니었다면 벌써 항복을 선언하고도 남았죠. 테란과 프로토스전에서 테란이 세 부대 가량의 병력을 한번에 잃게 되면 역전하기 쉽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도진광은 캐리어를 차근차근 모은 뒤 아비터까지 생산한 상황. 아비터 리콜로 임요환의 본진에 지상 병력을 드롭해 팩토리를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임요환은 이를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번의 공격 실패가 패배로 이어질 것 같았던 순간이었습니다.

◆지상 병력에 날개를 달아준 근성의 드롭십
하지만 임요환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드롭십이라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섬 맵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상대 운송 수단과 공중 병력을 제압하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임요환은 그 때부터 신출귀몰하는 드롭십 플레이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위축됐던 임요환의 드롭십이 갑자기 활기를 되찾은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임요환은 도진광이 9시 지역으로 공격해 오자 드롭십에 일꾼을 태워 대피시켰습니다. 드롭십 한 기도 소홀히 쓰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는데요. 쓸모 없는 움직임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임요환은 추후 자원전을 펼칠 것에 대비해 일꾼을 대피시켜 놓는 센스를 발휘했습니다.

게다가 프로토스의 마지막 확장 기지인 3시 지역에 끊임없이 벌처를 드롭해 프로브를 집요하게 잡기 시작했습니다. 물방울이 쌓여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 있듯 임요환의 드롭십 견제는 도진광에게 조금씩 피해를 입혔고 경기는 차츰 균형을 잡아갔습니다. 불리하게만 보였던 임요환에게도 희망이 드리운 시점이었죠.

임요환은 도진광의 셔틀을 떨구는데 주력했습니다. 도진광이 캐리어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임요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롭십에 골리앗을 태워 도진광이 보유하고 있는 셔틀을 모두 떨궜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보루인 캐리어를 노렸죠.

[이소라의 핀포인트] 드롭십으로 완성한 '815 대첩'

◇드롭십에 골리앗을 태워 도망가는 캐리어를 계속 쫓아가는 임요환

어느 순간 셔틀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도진광은 캐리어라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임요환의 드롭십은 골리앗에 마치 날개를 달아준 듯 움직였습니다. 캐리어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드롭십으로 골리앗을 언덕 지역에 하나씩 떨구며 결국 남은 캐리어 한 기를 잡아내는 장면은 영화 같았습니다.

날개가 없는 지상 병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드롭십. 결국 임요환은 기가 막힌 드롭십 플레이로 희대의 역전극을 만들어냈습니다. 도진광은 본진에 질럿과 하이템플러가 있었지만 셔틀이 없어 교전을 펼치지 못했고 임요환은 커맨드 센터를 띄운 뒤 드롭십에 대피시켜 놨던 일꾼을 데려와 자원을 채취할 수 있었죠. 본진과 3시 지역의 미네랄이 모두 떨어진 상황에서 도진광은 셔틀 생산에 필요한 200이라는 미네랄을 모으지 못했고 결국 확장 기지를 늘릴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캐리어가 아무리 많다 해도 프로브가 자원을 채취하지 못한다면 인터셉터도 채우기 어렵게 되어 버리죠.

싸울 능력이 없었던 도진광은 통한의 항복을 선언하게 됩니다. 만약 도진광이 임요환만큼 수송선인 셔틀을 사랑(?)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역전 드라마였습니다.

임요환의 드롭십은 이처럼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유닛이었습니다. '815 대첩'에서 막판 임요환의 지상 병력은 마치 날개를 단 것과 같이 움직였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플레이죠. 임요환의 부지런함과 근성이 드롭십과 만나 e스포츠 역사상 가장 멋있고 아름다운 경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드롭십의 후예는?
임요환만이 할 수 있는 멋진 드롭십 플레이는 이후 몇 명의 선수들에 의해 더욱 발전됩니다. 같은 SK텔레콤 소속이었던 정명훈과 지금은 8게임단에 있는 전태양 정도가 임요환의 후예라고 볼 수 있는데요. 특히 전태양의 경우 임요환의 드롭십 플레이를 연상케 하는 동시다발적인 드롭 공격을 자주 선보이곤 합니다.

임요환은 드롭십을 두 가지 용도로 주로 사용했습니다. 하나는 지상 병력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한 것과 또 하나는 상대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용도로 드롭십을 이용했죠. 정명훈과 전태양은 임요환의 두 가지 방법을 각각 물려 받은 플레이를 자주 사용합니다.

[이소라의 핀포인트] 드롭십으로 완성한 '815 대첩'

◇SK텔레콤 정명훈

정명훈은 벌처를 워낙 좋아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토스나 저그가 테란의 진출로을 막아 버리면 벌처 플레이가 제한되게 됩니다. 따라서 정명훈은 벌처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한 드롭십 운영에 중점을 둡니다.

이에 비해 전태양의 경우 임요환의 신출귀몰한 드롭십 흔들기를 연상시키는 플레이를 펼칩니다. 전태양은 동시다발적인 드롭으로 상대가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즉 경기의 속도감을 높이는데 드롭십을 사용하죠. 손이 빨라 멀티 태스킹에 워낙 자신이 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플레이인데요. 가끔 전태양의 드롭십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임요환의 전성기 시절 '홍길동 드롭십'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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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전극을 일궈낸 후 감격하는 임요환

같은 유닛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기능을 하기도 하는데요. 임요환이라는 주인을 만난 드롭십은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임요환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스카우트처럼 뒷방 늙은이 신세였을지도 모르니까요.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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