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그라피' 이제동의 1편에서 파격적인 데뷔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르까프 오즈로 출범한 이후 조정웅 감독은 이제동을 스타 플레이어로 만들기 위한 지원을 아까지 않았고 이제동 또한 감독의 의지에 화답이라도 하듯, 2006년 전기리그 신인왕과 후기리그 다승왕을 따냈습니다.
2007년 이제동은 물 오른 활약을 펼치면서 오영종과 함께 투톱 체제를 형성했습니다. 두 명의 에이스가 존재하며 화승은 프로리그 전기리그 광안리 결승전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당시 화승은 단계적 성장론을 주창했는데요. 프로리그에서 매 시즌을 거치면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삼성전자와 치른 결승전에서 화승은 고배를 마십니다. 7전4선승제로 치러진 당시 결승전에서 화승은 이제동을 써보지도 못하고 0대4로 완패를 당했습니다. 송병구와 허영무가 개인전을 맡고 팀플레이에서 이창훈, 박성훈 등 강력한 조합을 갖춘 삼성전자에게 역부족이었지요.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우승팀이 최종 우승자 타이틀을 걸고 일합을 펼치는 통합 챔피언전에서 화승은 삼성전자에게 앙갚음을 하면서 2007 시즌을 가져갑니다. 그러나 이제동은 김동건에게 패하면서 우승의 참맛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이 때부터 프로리그 결승전에 약하다는 좋지 않은 이미지가 생기기도 했지요.
◆개인리그 강자로 도약
이제동의 활약은 프로리그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프로리그를 통해 숱한 경험을 쌓으면서 성장한 이제동은 스타리그와 MSL 본선에 진출하면서 낭중지추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립니다. 인상적이었던 대회는 EVER 스타리그 2007이었습니다. 데뷔 2년만에 스타리그 본선에 진출한 이제동은 16강에서 스타리그 골든 마우스에 빛나는 이윤열을 제압하며 파란을 일으킵니다. 8강과 4강에서 이재호, 신희승 등 비슷한 시점에 데뷔한 라이벌들을 연파한 이제동은 삼성전자 송병구를 결승전에서 만납니다. 1세트를 패한 뒤 세 세트를 내리 따낸 이제동은 처음으로 출전한 스타리그 무대에서 우승까지 달성하며 '로열로더' 타이틀을 거머쥡니다.
스타리그를 제패한 이제동은 마치 액셀러레이트가 고장난 듯한 자동차처럼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개인리그의 양대 산맥이었던 MSL로 무대를 옮긴 이제동은 곰TV MSL 시즌4 32강에서 김택용과 박성준을 꺾었고 16강에서 박찬수, 8강에서 이영호를 제압했습니다. 4강에서는 지난 시즌 우승자인 박성균을 3대1로 꺾은 이제동은 결승전에서 프로토스 김구현을 3대1로 격파하며 양대 개인리그 우승자로 이름을 올립니다.
◆잊고 싶은 2008년
EVER 스타리그 2007에서 우승한 이후 이제동은 스타리그만 존재하는 '우승자 징크스'에 발목을 잡히며 저조한 성적을 냈습니다. 우승자에 대한 선수들의 견제가 심해지기 때문에 연속 우승을 하지 못한다는 징크스인데요. 실제로 이제동은 이후 두 대회에서 8강과 24강에 만족해야 했고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에서는 36강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MSL에서는 그나마 꾸준한 성적을 냈습니다. 곰TV MSL 시즌4에서 우승한 뒤 아레나 MSL에서는 결승에 진출했죠. 당시 화승에서 한솥밥을 먹던 테란 박지수와 결승전에서 맞대결했던 이제동은 충격의 0대3 패배를 당합니다. 박지수가 이제동에 대한 연구를 치밀하게 해왔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이제동은 일격을 당합니다. 이후 클럽데이 온라인 MSL 16강, 로스트사가 MSL 32강으로 부진했던 이제동은 아발론 MSL 4강에 오르면서 다시 일어섰습니다.
프로리그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전후기 방식에서 단일 시즌으로 변경된 2008년 시즌 이제동과 화승은 동반 하락세를 경험합니다. 이제동과 함께 투톱 체제를 형성했던 오영종이 공군에 입대하면서 이제동에게 주어진 짐이 무거웠던 탓일까요. 이제동은 11승7패로 저조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지금까지 이제동이 7년째 프로리그에 출전하면서 두 자리 다승 랭킹을 기록한 것은 이 때가 유일합니다.
스타리그에서 지속된 부진과 MSL 준우승 이후의 하락세, 프로리그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는 이제동이 와신상담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결승전 앞두고 발생한 FA 협상 결렬
이제동은 2009년 권토중래합니다. EVER 스타리그 2007 우승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스타리그에서 이제동은 울분을 터뜨리듯 연승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2009년 첫 대회였던 바투 스타리그에서 이제동은 SK텔레콤 정명훈을 상대로 리버스 스윕을 달성하면서 두 번째 스타리그 우승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렸던 결승전에서 정명훈의 전략적인 플레이에 휘둘리면서 두 세트를 내준 이제동은 집중력을 되살렸고 세 세트를 연이어 따내면서 드라마틱한 우승을 따냈습니다.
박명수와의 박카스 스타리그 결승전이 열리던 시기에 이제동은 큰 시련을 안고 있었습니다. e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FA(Free Agent 자유계약)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제동은 원소속 게임단인 화승과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협상이 결렬됐습니다. 회사측과 연봉을 놓고 협상을 벌였지만 조건이 달랐던 것이지요. 화승은 연봉 1억4,000만원과 옵션 6,000만원을 제시했지만 이제동은 1억8,000만원을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승전을 준비해야 하는 이제동은 소속팀과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2009년 8월20일 FA를 선언했습니다. 다른 팀의 제안을 이제동이 받아들일 경우 화승 소속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조정웅 감독은 이제동이 다른 팀으로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연습을 화승 숙소에서 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박카스 스타리그 2009를 치르는 내내 화승 소속을 뛰었던 이제동이 화승과의 1차 협상이 결렬됐다고 해서 대회를 포기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제동은 화승의 유니폼을 입고 8월22일 열린 박카스 스타리그 결승전에 출전했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다른 게임단으로부터 연봉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이적 요청을 받지 못한 이제동은 재협상 끝에 화승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화승의 해체
2009년 화승과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프랜차이즈 스타로서의 입지를 다진 이제동은 2010년 정들었던 스승과의 이별을 경험합니다. 조정웅 감독이 09-10 시즌을 마치고 화승의 사령탑 자리에서 물러났는데요. 데뷔 첫 경기를 치르는 이제동을 에이스 결정전까지 출전시키는 등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조 감독의 사퇴는 이제동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코치로 모셨던 한상용 감독이 화승의 사령탑을 잡으면서 이제동은 팀을 이끄는 실질적 지주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다른 팀들을 상대할 때에는 에이스로 출전해야 했고 동료들의 분위기가 흐트러질 때면 화승의 최고참으로서 리더 역할까지 맡아야 했죠. 취임 첫 해를 맞는 한 감독까지 보좌하는 주장이었으니 어깨의 짐이 더욱 무거웠습니다. 다행히도 오영종이 화승으로 복귀하면서 이제동은 주장 완장을 넘기며 조금은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러나 시즌을 마치자마자 좋지 않은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화승이 더 이상 프로게임단을 운영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지요. 그동안 기업이 프로게임단을 운영하지 않을 때에는 기업의 경영난으로 인한 워크아웃이나 M&A 등 굵직한 이슈가 있었습니다. 팬택앤큐리텔, 한빛 소프트 등은 기업의 운영난으로 인해 게임단 운영을 그만하겠다고 밝혔죠. 화승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온라인 스포츠라 할 수 있는 e스포츠에 대해 투자 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했기에 업계에도 충격을 줬습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화승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이제동은 박준오, 한상용 감독(현 코치)와 함께 한국e스포츠협회가 운영하는 8게임단으로 적을 옮기게 됩니다.
만약 2009년 자유롭게 팀을 결정할 수 있는 FA 자격을 얻었을 때 이제동이 화승을 떠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화승이 더 빨리 팀을 해체했을까요? 아니면 반대의 상황이 연출됐을까요? 미래에 가정은 없다지만 궁금해지는 대목인 것은 확실합니다.
3편에서는 이제동의 징크스와 인생 최대의 라이벌, 그리고 향후 과제에 대해 고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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