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입니다.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하고 감상할 때 핵심이 되는 유닛이나 스킬에 대해 알아보는 핀포인트를 네이트 스포츠Pub을 통해 연재하고 있는데요. 지난 칼럼을 통해 테란의 벙커와 드롭십, 저그의 뮤탈리스크 뭉치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스타크래프트에는 테란과 저그 이외에도 프로토스라는 종족도 존재하는데요. 이번 칼럼을 통해서는 프로토스의 아비터(Arbiter)에 대해 글을 써보려 합니다.
◆아비터란 무엇인가
아비터는 중재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설정을 보면 아비터는 법관(하이템플러나 다크 템플러)들이 타고 다니는 성소입니다. 템플러 계열의 유닛이 정신력으로 지배하는 공중 유닛 가운데 하나인데요. 특성도 비슷합니다. 하이 템플러는 물리 공격력이 없는 대신 사이오닉 스톰, 할루시네이션 등의 마법을 주로 사용하고 다크 템플러는 공격력이 강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아비터 아래에 들어가면 유닛이 투명해진다. 클로킹 필드라고 부르며 자신에게는 투명하게 보이지만 상대에게는 화면이 어그러지면서 보이지 않는다.
아비터는 이 두 가지 특성이 합쳐진 공중 유닛입니다. 공격력이 있긴 하지만 미미한 수준이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비터의 아래에 자신의 유닛이 들어가 있으면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광역 클로킹 기능을 갖고 있고 상대 유닛을 얼리는 스테이시스 필드, 대규모 병력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리콜 등의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유닛을 생산할 때 테크트리라는 것이 존재하는데요. 아비터는 시타델 오브 아둔과 템플러 아카이브라는 건물을 지은 뒤 스타게이트와 아비터 트리뷰널을 지어야만 생산됩니다.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 유닛인 만큼 경기의 후반부에나 등장합니다.
아비터는 생산 단가가 매우 비싼 유닛입니다. 미네랄은 100밖에 들어가지 않지만 개스가 350이나 사용됩니다. 대량 학살이 가능한 사이오닉 스톰을 쓸 수 있는 하이 템플러가 개스 150이 소비되는 것을 감안해 보면 아비터 한 기에는 하이 템플러 2기 이상의 개스가 소모됩니다. 따라서 프로토스가 자원을 엄청나게 가져간 상황이 아니면 감히 생산하지 못할 유닛입니다.
◆천대받았던 유닛
스타크래프트 초창기 아비터는 거의 쓰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프로게이머들과의 경기에서 모습을 보기가 어려웠죠. 공식 대회에서 프로토스 선수가 아비터를 뽑았다라고 한다면 상황이 너무나 좋았기에 상대 선수를 '관광(유린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스타크래프트 용어)'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받아들여질 정도였죠.
왜 쓰이지 않았을까요? 아비터의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아비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시타델 오브 아둔, 템플러 아카이브, 스타게이트, 아비터 트리뷰널로 진행되는 테크트리를 진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테크트리는 기본적으로 개스를 상당히 많이 필요로 합니다. 또 프로토스의 유닛 자체도 개스를 많이 요구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진행하기 위해서는 장기전을 치러야 합니다. 장기전 양상으로 치달을 경우 프로토스가 자원을 압도적으로 많이 가져갈 수도 있지만 상대 종족에게도 자원을 허용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경기가 뒤집힐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 경기에서 보여진 적도 있습니다. 2002년 KPGA(MSL의 전신) 투어 8강 B조 2세트 경기에서 프로토스 이재훈과 테란 이윤열이 대결을 펼쳤습니다. 이재훈이 초반부터 이윤열을 압박했고 확장 기지를 대거 늘렸죠. 이윤열의 스타팅 포인트를 제외한 3/4 지역을 이재훈이 차지했고 게이트웨이가 50개까지 늘어나면서 누가 봐도 이재훈이 압승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재훈은 아비터를 생산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클로킹 필드 기능을 앞세워 이윤열을 꺾겠다는 심산이었죠. 이재훈의 마음 속에는 0대1로 뒤진 상황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여 3세트에서 심리적인 우위를 점하겠다는 마음도 있었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방의 항복을 권유하기 위해 아비터가 활용됐다. 아비터의 특수 기능보다는 기본 기능인 클로킹 필드만 활용했다. (이재훈과 이윤열의 경기 장면 캡처)
그러나 이재훈은 아비터의 클로킹 필드만 활용했습니다. 지상군 위에 아비터가 떠다니면서 보이지 않도록 환경을 제공했지만 이윤열이 탱크를 배치한 뒤 스캔을 활용하며 모두 잡아냈죠. 중장기전으로 치달았을 때 테란 또한 스캔을 계속 쓸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입니다.
결국 주력 병력을 모두 잃은 이재훈은 공격력이 보잘 것 없는 아비터만 남았고 이후 교전에서 계속 패하면서 희대의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비터에 대한 연구
이재훈의 경기를 본 프로토스 프로게이머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아비터는 쓰레기다'라는 회의론과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는 긍정론으로 갈렸습니다. 회의론자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큰 효용을 보지 못하는 아비터를 생산하느니 캐리어를 모으면서 테란을 괴롭히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지상군만으로 경기를 끝내는 것이 가장 좋고 그러한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캐리어를 여러 기 생산해 지상과 공중을 모두 장악하는 것이 승률을 높이는 방법이라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프로토스는 테란과의 경기에서 아비터보다는 캐리어를 선호했습니다. 초반에 리버나 다크 템플러 등으로 테란을 수비적으로 운용하도록 몰아 넣으면 프로토스는 확장 기지를 여럿 가져가며 자원을 모으죠. 그리고는 스타게이트를 늘리고 플리트 비콘을 지어 캐리어를 확보합니다. 지상군 중심으로 병력을 꾸린 테란이 프로토스를 압박하러 오는 타이밍에 캐리어가 생산되어 있으면 테란은 다시 수비를 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형성됩니다.
◇아비터의 활용도에 대해 연구했던 전 프로게이머 김동수.
긍정론자들 가운데 김동수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프로토스 종족의 선구자라고 평가되는 '가림토(garimto)'라는 아이디를 쓰는 선수였는데요. 프리챌 스타리그에서 저그 봉준구를 상대로 2게이트웨이 질럿 러시를 성공시켜 3대0 완승을 거두기도 했고 임요환의 스타리그 3회 연속 우승을 저지하면서 프로토스의 아버지라고 불렸죠.
김동수는 아비터를 활용할 경우 테란전을 수행하기가 쉽다고 여러 차례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 꿈에서나 나올 법한 플레이라고 비판했지만 김동수는 실제로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했죠.
2002년 11월에 열린 파나소닉 스타리그 16강 B조 경기에서 아비터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경기가 나옵니다. 전략을 사용한 주인공은 김동수였고 상대는 임요환이었죠. 반섬맵인 '네오포비든존'이라는 맵에서 김동수는 아비터를 일찌감치 뽑는 테크트리를 구상합니다. 임요환이 드롭십을 잘 쓴다고는 하지만 프로토스가 본진에서 방어 위주로 경기를 풀어간다면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김동수는 본진에서 병력을 생산하지 않고 스카우트를 생산합니다. 임요환에게 캐리어를 쓰겠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함이었죠.
◇파나소닉 스타리그 16강 임요환과의 경기에서 패스트 리콜 전략을 사용한 김동수. (김동수와 임요환의 경기 장면 캡처)
스카우트로 임요환을 흔든 뒤 김동수는 템플러 아카이브를 올리면서 아비터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나서 리콜을 개발하죠. 3개의 게이트웨이에서 질럿을 주력을 생산한 김동수는 아비터의 리콜을 통해 임요환의 본진과 앞마당을 계속 공략합니다. 스타팅 포인트가 섬 지역이기 때문에 임요환이 공격하러 오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고 기껏해야 질럿 4기 또는 드라군 2기밖에 실을 수 없는 셔틀을 쓰기 보다는 대량으로 유닛을 이동할 수 있는 아비터의 리콜 기능을 사용하면서 경기를 마무리짓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임요환이 파이어뱃과 머린, 메딕, 탱크 등을 조합하면서 기적처럼 막아내며 김동수가 패하긴 했지만 아비터를 초반부터 활용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프로토스 선수들을 자극하기 충분했습니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낸 강민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본격적으로 열린지 4년 쯤 되던 해 강민이라는 독특한 성향을 가진 선수가 등장했습니다. 입으로만, 머리 속으로만 생각되는 플레이를 현실로 만든 주인공이기도 한데요. 강민 또한 김동수와 비슷한 성향을 보여줍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플레이를 선보였다는 점이지요.
◇'몽상가'라 불리며 특이한 경기를 자주 펼친 전 프로게이머 강민.
강민과 김동수의 차이점이 있다면 강민은 이기는 경기를 펼치며 인지도를 높였다는 사실입니다. 2004년 스프리스 MSL에서 강민은 아비터의 리콜 기능과 하이 템플러의 할루시네이션(거짓 유닛을 만들어내면서 상대방을 혼동시키는 기능)을 조합한 플레이를 펼칩니다.
'패럴렐라인즈3'라는 섬맵에서 강민은 꿈의 플레이를 실현합니다. 작전은 김동수가 임요환을 상대했을 때와 비슷합니다. 확장기지를 일찍 가져가기 보다는 테크트리를 올린 강민은 하이템플러를 생산해 셔틀을 활용한 견제를 떠날 것이라 이병민에게 거짓 정보를 줍니다. 사이오닉 스톰을 개발하지 않고 할루시네이션을 개발한 강민은 아비터를 생산하면서 리콜을 준비합니다.
아비터를 한 기만 보여줬을 때 테란은 터렛이나 골리앗을 통해 일점사하면서 방어를 할 수 있습니다. 아비터의 리콜 기능이라는 것이 상대방의 지역으로 아비터가 진입하고 나서야 사용되기 때문에 이동 경로를 안다면 사전에 차단하기 쉽다는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강민은 이러한 단점을 할루시네이션을 사용하면서 극복했습니다. 아비터의 환영을 만들어 이병민으로 하여금 어떠한 유닛이 진짜인지 알지 못하게 만든 것이지요.
◇이병민과의 경기에서 강민이 선보인 아비터의 리콜 기능. 5기 가량의 아비터가 보이고 있지만 이 가운데 1기만이 진짜다. 나머지는 하이 템플러의 할루시네이션 기능으로 환영을 만든 것.
터렛이 잔뜩 지어져 있고 골리앗까지 확보된 상황이었지만 강민은 할루시네이션으로 만들어낸 그림자 유닛을 통해 실제로 리콜을 사용할 수 있는 아비터를 이병민의 영역에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나서 리콜을 시전하죠. 당황한 이병민은 공격가던 드롭십을 퇴각시켜 방어에 나섰지만 한 번 무너진 방어진을 다시 구축하기에는 피해가 너무나 컸습니다. 이후 강민은 리콜 연타를 적중시키면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아비터에 대한 선구자적 연구를 시도한 김동수와 바통을 이어받아 승리를 만들어낸 강민 덕에 아비터에 대한 인식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2탄에서는 섬맵이 아닌 지상맵에서 아비터가 전술적으로 활용되는 사례와 전술을 만들게 된 배경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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