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에게는 궁금증을 안겨다 주는 사람이지만 선수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경기 전 선수들의 두뇌 발달에 좋다며 초콜릿을 챙겨주고 마시고 싶은 음료수를 사다 주며 장비 세팅에 맵 선택까지 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은 없다.
카트리그에 청춘을 바친 이 사람은 바로 오존게이밍(전 AN게이밍) 안한샘 감독이다. 선수들에게는 무서운 감독이자 친근한 친형과도 같은 존재인 안 감독은 19살 때부터 감독 일을 시작해 6년 동안 카트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는 카트리그 레전드로 꼽혔던 유일한 여성 프로게이머 안한별의 오빠다. 안한별이 카트리그에 데뷔해 남성 선수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그랜드파이널에 진출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안한샘 감도 덕분이다. 그때부터 감독 일에 흥미를 느낀 안한샘 감독은 지금까지 감독 일을 이어오고 있다.
카트리그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안한샘 감독. 누구보다 스포츠맨십을 중요하게 여기는 안 감독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들어보자.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 때까지 안한샘 감독은 전교 1, 2등을 다투는 모범생이었다. 집도 부유한 측에 속했던 안 감독은 그야말로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행복했던 안 감독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갑작스럽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지며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공부를 계속하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서 예고로 갔거든요. 그런데 고등하교 때 집안 형편이 갑자기 안 좋아졌고 도저히 예고 등록금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 당시에는 예고에서 전학을 가려면 상고나 공고로 갈 수밖에 없었거든요. 공부를 못했던 것도 아닌데 집안 형편 때문에 상고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앞길이 막막했죠. 설상가상으로 집안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나니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안한샘 감독은 지금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편의점, PC방, 커피숍, 식당 등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모두 해봤다. 갑작스럽게 돈을 벌어 가족을 건사하고 스스로의 인생을 설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안한샘 감독의 나이 18살이었다.
"어렸죠. 하지만 책임감이 생기고 나니 18살이 갑자기 28살이 된 것 같았어요. 지금도 애늙은이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가장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때는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힘든 청소년기를 거친 안한샘 감독은 이미 19살 또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기 시작했고 더 넓은 세계를 보는 눈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카트 리그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휴대전화 판매왕과 감독 사이에서
안한샘 감독은 평소 온게임넷을 즐겨 보던 시정자 중 한 명이었다. 그 당시 e스포츠 국산 종목이 활기를 띠고 있었고 안 감독은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e스포츠라는 문화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처음 카트리그를 접했을 때는 전율이었어요. 단순한 레이싱 게임도 스포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까지 했어요. 한번 출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부모님이 엄청 반대하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동생인 (안)한별이에게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봤는데 흔쾌히 좋다고 했어요. 이상하게 부모님도 (안)한별이를 시켜보겠다고 하니 허락하시더라고요(웃음).”
안한샘이라는 이름 뒤에 감독이 붙게 된 것도 바로 동생 안한별을 지도하면서부터다. 안 감독은 그때부터 선수들의 VOD를 보며 빌드를 연구하고 혹독하게 동생을 훈련 시켰다. 다행히도 안한별의 게임 센스가 남달랐고 결국 남자 선수들을 제치고 그랜드파이널 직행이라는 신화를 이뤄냈다.
"남자 선수들도 하기 힘든 그랜드파이널 진출을 여자 선수가 해냈으니 그 당시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겠어요. 아마 서지수 선수가 스타리그 본선에 진출한 것과 비슷한 파급효과였을 거에요. 제가 지도했던 (안)한별이가 잘되고 난 뒤 선수를 지도하는 것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어요. 카트리그에 참가했던 선수들도 (안)한별이를 보면서 저에게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안 감독은 자신에게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선수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의 감독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집안 형편도 어려운 상황에서 선수들이 연습할 수 있는 장소부터 구하기 쉽지 않았다. 감독일 이외에도 다른 일을 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이때였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장비 세팅까지 손수 하는 안한샘 감독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좋은 연습 환경이 필요해요. 그것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는데 그 당시 AN게이밍을 지원해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죠. 스스로 벌어야 했어요. 그것도 많은 돈을요. 고민하다 휴대전화 판매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열심히 한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유독 자존심이 강했던 안 감독이었지만 휴대전화를 판매할 때에는 모든 자존심을 버렸다고 한다. 그 당시 구리시 사거리에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휴대전화를 판매하기를 한 달, 그는 월 500만원을 받는 우수 사원이 됐고 본사에서 그 달의 판매왕으로 뽑히기도 했다.
"게임단 유지 비용으로 한 달에 300만원 정도 들어요. 다행히 제가 판매에 소질이 있더라고요(웃음). 휴대전화 판매해 번 월급으로 팀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때는 정말 힘들었는데 이번 시즌 펄펄 날아 다니는 선수들을 보니 제가 다 뿌듯하네요”
◆카트리그는 나의 운명
안 감독도 감독 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돈을 벌어 게임단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남자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군대라는 장벽 때문에 더 이상 감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카트리그와 안 감독의 인연은 질겼다. 안 감독이 100일 휴가를 나왔을 때 AN게이밍 소속 유영혁이 우승을 차지했고 군입대 하는 기간 동안 거짓말처럼 카트리그가 휴지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안 감독이 전역하자 마자 카트리그가 연간으로 다시 시작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군입대를 계기로 감독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딱딱 들어 맞다 보니 이건 운명이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열정을 불태우고 있죠.”
안 감독은 군 제대 후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선수들과 함께 연습에 몰두했다. 선수들과 머리를 맞대고 빌드를 연구하고 맵을 정하는 방법, 카트 바디 강화에 대해 토론했다.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할 때도 있어 AN게이밍 선수들은 연습을 열심히 안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오존게이밍 주장 박인재는 "감독님의 열정을 보면서 선수들이 열심히 안 할 수가 없다”며 "카트리그에 가장 큰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주저 없이 안한샘 감독님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의 열정이 필요한 때
안한샘 감독은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신으로 ‘스포츠맨십’을 꼽는다. e스포츠가 스포츠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안 감독의 생각이다. 그래서 오존게이밍 선수들은 연습만큼 프로선수로서의 마인드에 대한 교육을 철저하게 받는다
"선수들이 바뀌어야 리그가 살아날 수 있어요. 아무리 게임이 재미있고 좋은 콘텐츠로 가득 차 있어도 선수들의 의식이 제대로 돼있지 않으면 팬들에게 사랑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리그에 참가했으면 좋겠어요.”
이번 시즌 돌풍을 일으킬 준비가 돼 있다는 안한샘 감독. 소속 선수들을 누구보다 혹독하게 그리고 사랑으로 가르치는 안 감독의 열정은 앞으로도 카트리그 활성화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해 마지 않는다.
"청춘을 마친 카트리그인데 당연히 잘 돼야죠(웃음). 앞으로 카트리그과 관련된 PC방 사업도 진행할 예정이니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카트리그 파이팅!."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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