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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카트계 레전드 안한별 "e스포츠 역사 다시 쓰겠다"

[피플] 카트계 레전드 안한별 "e스포츠 역사 다시 쓰겠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e스포츠 역사상 여성 선수가 남성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제'라 불리는 서지수도 남성 선수들의 벽에 부딪혀야 했고 다른 종목은 아예 여성 선수들이 본선에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팀플레를 위주로 하는 스페셜포스나 던전앤파이터 등에 남성 선수들과 한 팀을 이뤄 출전하는 여성 선수가 간혹 있었지만 남성 선수들과 1대1 대결을 당당히 즐기고 성적을 내는 일은 e스포츠에서 불가능한 일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을 해낸 여성 선수가 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성 선수들과 겨뤄 결승전까지 진출했던 카트라이더(이하 카트)의 살아있는 레전드 안한별이 그 주인공이다. 그 당시 카트리그가 주목 받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안한별이 해낸 일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성 선수들조차 해내기 힘든 카트리그 그랜드파이널에 진출한 유일한 여성 선수로 기록돼 e스포츠 역사를 다시 썼던 선수다.

당연히 조명 받았어야 할 일이었지만 e스포츠 전문가들 역시 이런 대단한 업적을 이룬 안한별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그가 그랜드파이널에 진출해 역사를 다시 쓰고 난 뒤 카트리그는 1년 6개월의 휴지기에 들어가 버렸다.

e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업적을 남겼다가 돌연 사라졌던 안한별. 그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리고 그는 왜 다시 e스포츠로 돌아올 생각을 했을까? 사연 많은 안한별을 만나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사연을 들어봤다.

◆e스포츠 역사를 다시 쓰다

"다들 안될 거라 말하더라고요. 어떻게 여자 선수가 남자 선수들과 겨뤄 결승전에 진출하냐고. 선수들뿐만 아니라 팬들도 비웃었어요. 제 도전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고개를 내저었죠. 사실 저 역시도 해낼 수 있을지 의심했던 도전이고요."

안한별은 그저 여성 선수들이 참가하는 '퀸 오브 카트리그' 정도 출전하겠다는 마음으로 카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친오빠이자 현 오존게임단 감독 안한샘의 독려와 지고는 못사는 안한별의 강한 승부욕 때문에 '퀸 오브 카트'에만 만족할 수 없었다고 한다.

모두들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도전이었지만 안한별은 꿈을 현실로 실현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6차 리그부터 꾸준히 도전했던 안한별은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줬고 결국 여성 선수는 정복하지 못할 것이라 여겨졌던 카트리그 결승전인 그랜드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처음에는 그의 도전을 비웃던 사람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그렇게 안한별은 카트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남성 선수들의 비아냥거림, 팬들의 시선 등을 의식했다면 아마 계속 도전하기 힘들었을 거에요. 하지만 제 옆에는 든든한 가족들이 있었어요. 가족들은 항상 '너는 할 수 있다'며 저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줬어요. 만약 가족들이 아니었다면 주변 시선과 악플에 일어나지 못할 충격에 지금까지 헤매고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카트계의 전설이 된 안한별은 이제 더 높이 멀리 올라갈 일만 남겨두고 설레는 다음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견디기 힘들었던 시련

그랜드파이널에 진출하긴 했지만 안한별은 만족하지 못했다. 최종 목표인 우승을 달성하기 위해 안한별은 연습의 강도를 더 올렸다. 다음 리그에서는 반드시 3위 안에 입상하겠다는 각오로 연습에 매진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안한별에게 시련이 닥쳤다. 카트리그가 12차 리그를 끝으로 개최소식이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초조한 마음으로 계속 리그가 열리기만을 기다렸지만 5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계속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안한별에게는 천청벽력과도 같았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자신을 지탱해 주던 친오빠 안한샘 감독 마저 군대에 입대하게 됐다.

[피플] 카트계 레전드 안한별 "e스포츠 역사 다시 쓰겠다"


"아마 오빠가 이야기 해서 다들 아실 테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어요. 언제까지 리그가 열리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죠. 게다가 가장이었던 오빠가 군대에 입대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더라고요. 고민 끝에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지금까지 청춘을 다 바쳤던 카트리그를 이제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안한별이 남성 선수들과 당당히 겨룰 수 있었던 것은 남모를 엄청난 노력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했다. 안한별은 하루에 연습 시간이 평균 14시간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한번 컴퓨터 앞에 앉아서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고 9시간 동안 집중해 연습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몇 년을 그렇게 모든 것을 바쳤던 카트리그. 그러나 리그 중단으로 안한별은 모든 꿈을 접어야 했다.

"사실 연습하면서도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나는 안 되는 것인가 생각하면서 좌절하기도 했고요. 그랜드파이널에 진출하기 전인 6차 리그부터 11차 리그까지 수많은 비판을 받으면서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하지만 가족을 위해 그리고 꿈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는데 그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이 저에게는 견딜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그 당시 안한별의 실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주행만큼은 문호준도 따라잡지 못한다는 전대웅과 타임어택 기록을 주고 받으며 경쟁을 펼쳤던 안한별. 결국 전대웅을 제치고 리그에서 쓰이던 10개 트랙 가운데 9개 트랙에서 타임어택 기록 1위를 가지고 있던 사실만으로도 안한별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소유했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차기 시즌 정말 잘할 자신이 있었던 안한별이 상황 때문에 게임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을 때 그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 모든 것을 바쳐 하루에 14시간씩 무엇인가에 매달려본 경험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좌절을 느꼈던 안한별. 그렇게 그의 꿈은 끝이 나는 듯 보였다.

◆끝나지 않은 안한별의 도전

긍정적인 성격을 지난 매력적인 소녀 안한별. 언제까지 좌절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안한별은 일을 시작하면서 카트라는 게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가지게 됐다.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은 카트리그를 머리 속에서 아예 지우기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한창 예민할 시기인 사춘기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거든요. 사실 그때 엇나갈 수 있었지만 저에게는 카트리그가 있었고 그 덕에 사춘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오히려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이 카트에요. 단순히 게임이 아닌 내 인생을 바르게 만들어 준 고마운 존재죠. 만약 카트리그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엇나갔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잖아요."

게다가 밝고 긍정적인 성격은 아니었던 안한별은 카트리그를 통해 발랄한 10대 소녀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팬들과 만나면서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렇게 카트리그는 안한별에게 힘든 일을 극복하게 해주고 인생을 더 멋지게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존재였던 것이다.

[피플] 카트계 레전드 안한별 "e스포츠 역사 다시 쓰겠다"


"일을 하면서 카트리그가 다시 시작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설레더라고요. 하지만 쉽게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에요.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있고 2년 정도 게임을 쉰 상태에서 잘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카트리그는 제 인생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어려운 집안 형편에 도움이 되고자 시작했던 카트리그. '퀸 오브 카트리그'에서 우승상금으로 가족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도전했던 효녀였던 안한별은 이제 자신을 위해 다시 한번 카트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물론 예전처럼 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냥 도전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이번 도전이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곳에서 다시 한번 열정과 즐거움 그리고 행복을 얻기 위한 도전인 것이다.

"예전처럼 무조건 우승해야겠다는 생각도, 남들 시선을 의식해 무조건 이겨야겠다는 생각도 버렸어요. 그저 내 인생을 바꿔 놓은 카트리그에 다시 한번 제 열정을 쏟고 싶어요. 이번 도전을 즐길 겁니다."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다는 안한별. 차기 시즌에 도전하기 위해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팬카페에 다시 들어갔던 안한별은 아직도 자신을 기억해 주는 팬들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

"기다려 주신 분들 그리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게요. 당장 차기 시즌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계속 나아지는 모습 보여주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습니다. e스포츠 역사를 다시 써내려 가는 저의 도전 지켜봐 주세요."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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