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프로게이머들이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크래프트) 최고의 사기 유닛으로 꼽은 벌처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난 주 내용을 보셨다면 벌처가 왜 사기인지는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벌처 자체만으로는 사기 유닛이라 볼 수 없지만 팩토리에서 개발을 마친 이후 벌처가 장착하게 되는 마인이 바로 문제였는데요. 프로게이머들은 "벌처가 마인을 심을 때마다 미네랄이 들어가도록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마인의 '사기성'은 심각했습니다.
저도 이 말에 무척 동의합니다. 가끔 배틀넷에서 저그로 테란을 상대하다 보면 벌처에 드론이 죽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저그가 테란을 상대할 때는 성큰 콜로니라는 방어 건물을 필수적으로 건설하게 마련인데 벌처는 이런 수비 건물에 무척 약한 유닛이라 별로 위협적인 유닛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그 유닛이 이동하다 매설된 마인에 병력이 폭사하게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솟습니다. 다들 경험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주 댓글을 보면서 한참을 웃었던 내용이 있는데요. '다른 사람이 하면 사기, 내가 하면 그저 그런 유닛'이라는 글이었는데 이 말에도 적극 동의합니다. 프로게이머들이나 팬들은 저그 디파일러가 사기라고 하지만 막상 저그를 플레이 하는 사람들은 '제발 디파일러를 생산할 수 있을 때까지 경기가 지속이나 됐으면 좋겠다'거나 '디파일러를 생산해도 프로게이머들처럼 사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니 사기 유닛이라 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고요. 그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상대편 유닛은 다 사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벌처 역시 사실 무척 다루기 힘든 유닛인 것은 맞습니다. 속도가 빠르다고 하지만 컨트롤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견제를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일반 이용자들도 벌처의 마인은 사기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마인은 특별한 컨트롤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그저 한 곳에 매설만 하면 되는 손쉽게 다룰 수 있는 '폭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벌처를 사기 유닛으로 만든 마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임요환법 만든 얼라이 마인
마인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은 지난 주에도 했는데요. 마인은 우리 말로 바꾸면 지뢰이죠. 벌처가 지역에 매설한 지뢰입니다. 지뢰도 사람이 밟아야 터지는 것이 있고 작은 동물이 건드릴 때는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처럼 마인 역시 반응하는 유닛이 따로 있습니다.
테란의 경우 마린, 메딕, 파이어뱃, 탱크, 골리앗 등이 마인에 반응합니다. 프로토스에서는 질럿, 드라군, 하이템플러, 다크템플러, 리버가 반응하고요. 저그는 저글링, 히드라, 울트라리스크, 디파일러, 럴커, 에그 등이 반응하게 되죠. 이렇게 나열해 놓고 보니 반응하지 않는 유닛이 별로 없네요.
각 종족의 일꾼이나 공중 유닛은 반응을 하지 않으며 프로토스의 아콘, 다크아콘, 테란의 벌처가 반응하지 않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설정상 일꾼은 공중에 떠다닌다는 컨셉트로 제작됐기 때문입니다. 아콘류도 그렇고 테란의 벌처는 호버크래프트 형대로 설정되어 있기에 마인 위를 지나다녀도 마인이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응하는 것과 데미지를 입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일꾼이 마인을 밟아도 마인이 터지지는 않지만 만약 저글링이 마인을 밟았고 그 주변에 일꾼이 있다면 폭발 데미지를 고스란히 입게 됩니다. 즉 반응만 안할뿐 공중 유닛을 제외한 모든 유닛이 상처 입을 수 있는 존재가 마로 마인입니다.
◇파란색 동그라미 안에 있는 베르트랑의 탱크가 사정거리 안에 있는데도 빨간색 동그라미 안에 있는 임요환의 마인은 반응하지 않는다(위). 탱크가 다수 내려오자 그때서야 마인의 얼라이를 풀어 상대 탱크에 마인이 반응하게 만든 임요환(아래).
이런 마인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한 선수가 바로 임요환입니다. 임요환이 사용한 특이한 전략은 공식전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임요환은 예전부터 머리를 쓰는 전략으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데 천재였죠. 바로 '얼라이 마인 전략' 역시 임요환이기 때문에 만들어 낼 수 있는 특이한 전략이었습니다. 테란에게는 최고의 전략이 될 수 있었지만 공개되자마자 금지된 전략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얼라이 마인 전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예전 스타크래프트 팀플레이를 할 때 옵저버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4명의 선수가 '밀리'로 한 줄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난 뒤 선수들은 자기 편에 얼라이와 비전을 맺어 '너는 우리편이기 때문에 나를 공격하면 안 된다'는 협정을 맺어야 팀플레이를 할 수 있었죠. 즉 얼라이라는 것은 '너는 우리 편'이라는 일종의 게임 안에서의 협정과 같은 것입니다. 서로 얼라이를 맺게 되면 상대 유닛을 만나게 되도 공격을 하지 않습니다.
임요환은 이 점을 착안해 얼라이 마인 전략을 만들었습니다. 상대가 마인을 볼 수 있는 유닛을 대동하지 않고 중앙 지역을 지날 것을 대비해 중앙 지역에 마인을 잔뜩 매설해 놓은 뒤 창을 띄워 얼라이를 맺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인에 반응하는 유닛이 마인 위로 지나가도 마인은 터지지 않습니다.
기다리다가 상대의 병력이 마인 위를 지나갈 때 설정창을 띄워 얼라이를 풀어버리게 되면 순간 마인은 상대를 적으로 인식해 터져버리는데요. 상대는 난데 없이 터지는 마인에 의해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 위력은 핵폭탄 급에 가깝다 볼 수 있습니다.
임요환은 스카이 스타리그 2002 베르트랑과 맞대결을 펼친 4강전에서 이 전략을 선보였습니다. 이미 방송 경기에서는 얼라이 마인이 금지 전략이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선수들에게 제대로 공지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재경기에 돌입됐고 이 사건으로 얼라이 마인은 영원히 공식전에서 사용될 수 없는, 금지 전략으로 알려지게 됐습니다.
얼라이 마인 전략이 금지된 이유는 e스포츠 룰이 게임 외적인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을 반칙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요환이 사용한 얼라이 마인 전략은 선수가 설정창을 열어 동맹 관계를 형성했다가 해제하는 것이기게 게임 외적인 시스템을 조작하는 것이죠.
이 사건 이후로 '이게 다 임요환 때문이다'라는 유행어가 생겨나기도 했죠. 한 전략을 방송 금지 전략으로 만들어 버리는 임요환의 위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당시 장면을 보면 얼라이 마인이 얼마나 무섭고 파괴력이 높은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종족을 플레이 하는 프로게이머들이 이 장면을 본다면 얼라이 마인이 방송 금지 전략이 된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쉴 지도 모르겠네요.
◆멘탈 붕괴의 주범 마인 대박
스타크래프트 명장면 모음 동영상을 보게 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마인 대박인데요. 말 그대로 마인으로 상대 유닛을 몰살시키면 '마인 대박'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어떤 유닛보다도 일꾼을 마인에 다수 잃었을 때 프로게이머들은 소위 말하는 '멘붕(멘탈 붕괴의 약자로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정신력이 혼미해지고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대를 의미함)' 상태가 되곤 합니다.
통상적으로 원래 마인은 일꾼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만약 일꾼 주변에서 마인이 터지게 되면 체력이 적은 일꾼들은 그대로 즉사하게 됩니다. 그 점을 활용해 테란들은 일부러 마인을 일꾼 주변이나 일꾼이 대피할만한 통로에 매설하곤 합니다.
◇희대의 일꾼 마인 대박이 발생한 KT 김대엽과 CJ 신상문의 경기.
최근에 일어난 유명한 마인 대박 장면은 CJ 신상문과 KT 김대엽 경기에서 나왔습니다. 신상문은 드롭십에 벌처를 태워 김대엽의 본진을 괴롭힙니다. 통상적으로 프로토스는 테란을 상대할 때 초반에는 드라군을 입구 지역에 배치합니다. 벌처 난입을 막기 위해서인데요. 신상문은 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드롭십이라는 무기를 사용해 벌처를 본진에 난입시킨 것이죠.
프로토스는 본진에 벌처가 드롭되더라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입구 지역에 있던 드라군을 본진으로 보내 수비합니다. 벌처는 드라군에 워낙 약하기 때문에 드라군 두 기만으로도 벌처 4기 드롭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테란들은 이 때문에 벌처를 드롭한 뒤 마인을 매설하는 작업을 먼저 시행합니다. 일꾼 주변이나 일꾼이 대피하는 통로에 마인을 심은 뒤 드라군을 유인하죠. 드라군은 벌처를 제거하기 위해 추격전을 펼쳐야 하고 드라군이 마인을 밟는 순간 벌처를 피해 대피하던 다수 일꾼이 주변에서 드라군과 함께 폭발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김대엽은 신상문의 전략에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습니다. 일꾼 두 부대 가량을 마인 한기에 모두 잃고 말았고 이후 김대엽은 '멘붕' 상태에 빠져 경기를 제대로 치르지도 못하고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마인이 얼마나 무서운 유닛인지 아마 이 장면 하나로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네랄이 전혀 소비되지 않지만 일꾼을 두 부대 넘게 잡아낼 수 있는 무시무시한 마인. 개발만 마치면 벌처에 마인이 무료로 3개 들어있는 한 아마도 스타크래프트 최고의 사기 유닛이 벌처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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