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겨우 6월밖에 안 됐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더우면 앞으로 다가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지 무척 걱정이 됩니다. 제가 좋은 여름 피서법 하나 알려 드릴까요? e스포츠 현장에 친구들과 또는 연인들과 함께 놀러 오세요. 그 어떤 곳보다 시원하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홍진호 감독과의 즐거운 데이트를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 드렸습니다. e스포츠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선수였던 만큼 그 관심도 대단했는데요. 홍진호 감독이 선수였을 때의 에피소드와 지금의 에피소드를 모두 들을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 예전에 e스포츠에서 일어났던 재미있는 일들을 잘 알지 못해 더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홍진호 감독 인터뷰 후 누구를 다음 인터뷰 대상으로 삼아야 할지 무척 고민이 됐는데요. 지난 19일 스타리그를 보며 그런 고민이 싹 사라졌습니다. 재미있게도 그날 경기를 치른 강민 해설 위원과 서지훈보다도 오히려 그날 친구들을 응원하기 위해 관중석에 앉아 있던 박태민 해설 위원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미 12일 스타리그 레전드매치에서 김정민 해설 위원과 일방적인(?) 경기 끝에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는 박태민 해설 위원은 두 선수와의 친분 때문에 현장에 찾아와 선수석에 앉은 그들을 응원했다고 하는데요. 요즘 개그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박태민 해설 위원과 인터뷰를 나누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뷰는 역시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선수 시절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던 박태민 해설 위원. 이번 주에는 그가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로 꾸며보려 합니다. 박태민 해설 위원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 속으로 지금부터 함께 들어가 보시죠.
◆까칠 대마왕
서연지=만날 경기장이나 프로그램에서 보다가 이렇게 인터뷰로 보게 되니 반갑네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박태민=얼마 전까지도 스타리그 현장에서 보고 안부 인사하는 것은 좀 어색해(웃음). 뭐 알다시피 스타크래프트2:자유의날개(이하 스타2)와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해설을 병행하면서 열심히 해설자의 길을 걷고 있지.
사실 중계가 없는 날에도 중계 준비에 여념이 없거든. VOD만 챙겨봐도 하루가 다 가버려. 게다가 프로리그만 보는 것이 아니라 GSL이나 GSTL 등 국내에서 열리는 스타2 리그와 드림핵, MLG, 팀리퀴드 스타리그 등 해외에서 열리고 있는 스타2 스타리그 모두 챙겨보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야.
서연지=개인적인 시간은 거의 못 보내고 있는 상황이네요.
박태민=사생활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운동을 좋아해 헬스나 축구를 예전에 정말 많이 했는데 지금은 시간이 나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 요즘 약속 거절하느라 힘들어 죽겠다니까. 워낙 인기가 많아서 말이지(웃음).
서연지=저는 박태민 해설 위원이 해설을 할 때만 거의 봤기 때문인지 선수 시절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 홍진호 감독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박태민 해설 위원의 선수 시절 이야기가 잠깐 나왔어요.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무척 놀랐어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였거든요.
홍진호 감독이 3연벙 충격 이후 프리미어 리그에서 박태민 해설 위원을 만나 5드론을 했는데 인터뷰로 존경하던 선수와 재미있는 경기를 하고 싶었는데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했다면세요.
박태민=나도 인터뷰 봤어(웃음). 그 이야기를 여기에서도 하다니. 사실 내가 군대에 입대했을 때 나를 붙잡고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웃음). 원해 (홍)진호형이 진짜 뒤끝이 없는 스타일인데 아직까지도 그걸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진호형에게 3연벙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새삼 깨닫게 됐지.
사실 내가 꾸준히 프로게이머를 했던 것은 아니야. 중간에 잠시 쉬었다가 복귀를 했거든. 그 당시에는 프로게이머를 다시 시작하고 성공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무척 힘들었어. 적응 안 되고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때 나에게 가장 많이 영향을 줬던 선수가 (홍)진호형이었거든. 오죽하면 부대지정까지 다 따라 했을까. 그런 선수와 붙게 되니 얼마나 영광이었겠어. 그런데 상대가 5드론을 하니 내가 맥이 빠졌지.
물론 인터뷰에서 내가 굳이 실망이었다고 할 필요는 없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선수 시절 좀 까칠 대마왕이었거든(웃음).
서연지=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이 잘 안 되는데 박태민 해설 위원의 선수 시절 모습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까칠했다고 기억하더라고요. 왜 그랬던 거에요?
박태민=이건 내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다(웃음). 내가 봐도 까칠했고 그렇게 불릴 만 했어. 아마 관계자들도 나 엄청 싫어했을 거야. 사가지 없다고(웃음).
경기장에 왔을 때 대기실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눈 감고 있었어. 누군가에게 '말 시키지 말라'는 포스를 내뿜었지. 그래도 나름 이유가 있었어. 나는 프로게이머 시절 그 누구보다도 연습을 많이 했다고 자부했거든. 연습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는데 어떤 다른 외적인 요소로 인해 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대기실에서도 사소한 것조차 참지 못하고 다 말하는 편이었어. 경기장에서는 눈 감고 게임 생각만 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하고. 예전에는 나도 대기실에서 떠들고 놀았지. 그런데 나는 그러면 안 되는 스타일이더라고. 말을 하는 순간 정신줄을 놓게 돼(웃음). 지금 해설자의 모습이 진짜 내 성격이야. 즉 성격은 좀 밝고 가벼운데 경기는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 그래서 말을 하지 않았던 것뿐이야. 스스로 컨트롤을 좀 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
누가 말을 걸어도 대답을 거의 하지 않았고 말을 해도 단답형으로만 했어. 그때는 수십 명이 대기실을 하나로 썼지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었거든. 전성기 때 이런 까칠함이 더 심했던 것 같아. 특히 개인리그는 더 심했지. 경기장에 갔을 때 포스가 있어야 기선을 제압할 수 있고 나는 그걸 믿었어. 사실 효과도 많이 봤고.
SK텔레콤으로 이적하고 나서는 많이 달라졌어. 개인리그 때는 여전히 그랬지만 프로리그 즉 팀 단위 리그에서는 그러면 안 되거든. 최대한 파이팅 하는 분위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지. SK텔레콤 시절의 나는 무척 쾌활했다고 자부할 수 있지(웃음).
서연지=나름 프로로서 이유가 있는 까칠함이었네요. 아마 그것을 알기 때문에 동료 프로게이머들도 그런 박태민 해설 위원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박태민=그럴까(웃음)? 아직까지 그래도 프로게이머로서 친했던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그걸 뒷받침해 주는 증거가 될 수는 있을 것 같기도 해(웃음). 나 왕따는 아니었어(웃음).
서연지=그 까칠함 때문에 조용호 선수의 인사를 받아 주지 않았던 건가요(웃음)? 그 사건도 유명하던데(웃음).
박태민=까칠함이라기 보다는 선수로서의 자존심이었어. 사실 멘탈붕괴 상태였기도 했고. 오죽하면 99%나 완성된 스포닝풀을 취소하는 실수를 했겠어. 그런 선수가 무슨 정신이 있었겠어. 조용호 선수가 인사하러 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때 당시에는 웃으며 악수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 스스로 화가 많이 났고 프로가 이런 경기를 보여줘 놓고 뻔뻔하게 상대와 손을 잡는 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그 일을 어떻게 말한다 해도 나는 나중에 같은 일이 벌어지면 같은 행동을 할거야. 프로게이머로서 자신의 경기에 대한 실망감이 가득한 상황에서 웃고 싶지는 않거든.
◆'세팅'의 달인
서연지=해설 위원이 되고 나서도 박태민을 계속 따라다니는 단어가 하나 있어요. 바로 세팅인데요. 얼마 전에 스타리그 레전드 매치에서 박태민 해설 위원이 세팅을 하니 전용준 캐스터가 김정민 해설 위원에게 잡지를 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정말 오래 세팅을 했나 싶었죠.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누구도 그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요.
박태민=지금의 세팅 룰을 만든 것도 나잖아(웃음). 그거 하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물론 조금 아쉬워. 그 룰에 내 이름을 붙여 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어. 박태민조항 같은 것(웃음).
서연지=그런데 선수 시절 까칠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들으니 왜 세팅을 오래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박태민=내가 까칠했던 이유와 세팅을 오래 했던 이유는 같아. 연습을 많이 했는데 외부 요인으로 인해 패하면 너무나 억울했어. 그래서 세팅도 오래 했던 편이야. 고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남들보다 더 완벽하길 바랐던 마음이 커서 그런 것 같아.
물론 악플이 정말 많았지. 그런데 선수 시절에는 인터넷을 거의 하지 않았어. 즉 악플도 보지 않았던 것이지. 내가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완벽하게 세팅하는 것을 누군가가 욕한다고 바꾸고 싶지는 않았거든. 욕먹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 같아.
그런데 그때는 컴퓨터가 공인 PC도 아니었고 컴퓨터에 대한 점검도 잘 되지 않았을 때였어. 하드웨어적인 문제도 많았고. 그걸 신경 안 쓰고 그냥 게임하는 선수도 물론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거든. 100% 실력이 나오지 않는 환경이라면 굳이 그런 좋지 않은 환경에서 게임할 필요가 없잖아. 1패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더 싫었을 뿐이야.
개인적으로는 상대가 세팅을 빨리 하면 기분이 좋긴 했어. 그렇게 짧게 준비하고서는 제대로 된 경기를 펼칠 수가 없거든. 연습실 환경과는 책상 높이와 그에 따른 마우스 감도가 다른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세팅을 마칠 수 있겠어. 마치 축구 선수에게 인조잔디와 천연잔디가 다르듯 세팅은 프로게이머가 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드는 일이야.
심지어는 컴퓨터 본체가 모니터를 기준으로 왼쪽이냐 오른쪽이냐에 따라 마우스 선 길이의 팽팽함의 정도가 달랐단 말이야. 요즘 (이)영호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세팅을 오래 하고 자로 정확하게 재는 등 꼼꼼한 편이잖아. 난 그 마음 백 번 이해해.
서연지=세팅으로 가장 크게 비난을 받았을 때가 프로리그 에이스 결정전 이윤열 선수와의 경기였다고 들었어요. 그때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박태민=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해. 그때 (이)윤열이는 4세트 경기를 치렀기에 손이 풀린 상태였고 나는 첫 경기를 해야 했거든. 손이 풀린 상태와 경기를 하는데 나는 손이 굳은 상태에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게다가 이제 와 할 수 있는 이야기였는데 그 경기를 패할 경우 전원 삭발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어. 너무나 중요한 경기였기 때문에 다른 날보다 더 신중하게 세팅을 할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허무하게 패하고 나서 엄청난 비난이 시작됐지. 웹 검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주위에서 들려오는 말이 있잖아. 그래도 사정을 알고 있던 동료들은 나의 행동에 대해 이해해 줬기 때문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어. 남들의 시선 의식해 프로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최악은 없다고 생각하거든.
물론 그 경기를 패하고 삭발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내가 앉았던 경기석은 위에 돌 덩이 몇 개를 얹고 있는 것과 같더라고. 난 이유 없이 상대를 기만하기 위해 세팅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그리고 내가 할 플레이를 위해 그리고 나를 믿고 내보내준 팀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 후회하지 않아.
서연지=박태민 해설 위원의 선수 시절은 정말 무섭다 못해 완벽주의를 추구했을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네요.
박태민=세상에서 후회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거든. 지금도 후회하느니 지금 더 시간을 투자해 준비하자는 생각이 강해.
서연지=선수 시절 가장 싫었던 선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박태민=응. 나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줬던 선수가 있어.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웅진 이재호야(웃음). 상대 전적이 지금 1승6패일 텐데 가장 최근에 치른 경기에서는 내가 이겼지만 그 전 6연패를 당했을 때 이재호만 만나면 정말 멘탈이 붕괴됐어(웃음). 오버로드 두 마리를 내주고 시작하는 것은 기본이고 아무것도 못하고 패하기 일쑤였어. 나중에는 이재호라는 이름만 봐도 벌벌 떨리더라. 게임 실력과 상관 없이 그냥 이름만 듣고도 패하는 선수가 이재호였어. 내 인생의 트라우마라니까(웃음).
서연지=그럼 해설 할 때 이재호 선수 해설을 일부러 막 못하기도 하겠네요? 복수로?
박태민=나를 그렇게 속 좁은 사람으로 보는 거야(웃음)? 절대 그렇지 않다고! 지금은 이재호 선수를 무척 좋아해(웃음).
정리=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사진=데일리e스포츠 박운성 기자 photo@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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